잠시 주춤한 물가 고점일까…속단 대신 다가올 경기침체 대비해야

이창준 기자

고물가 ‘그 이후’도 고민할 때

잠시 주춤한 물가 고점일까…속단 대신 다가올 경기침체 대비해야

국제유가 하락이 상승세 눌렀지만
석유류 제외 땐 전월보다 0.2% 올라
전문가들 “향후 고물가 유지될 듯”
고금리에 내수 위축 가능성도 커져

끝 모르고 치솟을 것 같던 물가가 지난달 잠시 주춤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물가가 소위 ‘고점’을 찍었으며 4분기부터는 상승세 둔화 양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향후 물가 수준이 더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물가가 고점에 도달했다 해도 고물가가 유지돼 소비 침체나 무역수지 악화 등 어려운 경기 상황이 예상되는 점은 정부의 여전한 고민거리다.

■ 21개월 만에 주춤한 물가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7%로 집계되며 전달인 7월(6.3%)에 비해 0.6%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6월(6.0%) 상승률보다도 낮다. 소비자물가는 올해 1월 전년 동월 대비 3.6% 상승한 이후 매월 상승폭이 커져왔는데 7개월 만에 주춤한 것이다. 전월 대비(-0.1%)로는 2020년 11월(-0.1%) 이후 1년9개월 만에 하락했다.

국제유가가 큰 폭 하락하면서 석유류 등 공업제품 가격이 떨어진 것이 상승세 둔화의 주된 원인이다. 지난달 석유류 가격은 전월 대비 10% 하락해 같은 기간 공업제품 가격을 1.4%가량 낮췄다. 지난 7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1.94달러까지 떨어져 지난 1월11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럽발 경기 침체가 중국 등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향후 전 세계적으로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가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올해 가파르게 치솟았던 물가가 적어도 상승세 측면에서는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일 “그동안 주된 인플레이션 파급 경로였던 국제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생산자물가 상승→소비자물가 상승의 흐름이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소비자물가는 9월 중 고점을 찍고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 상승세가 본격 높아졌던 점이 기저효과로 작용한다는 점도 향후 물가 안정세를 가늠케 하는 요인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2일 “지난해 4분기 높은 물가에 따른 기저효과를 고려하면 7월(6.3%) 물가를 정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물가 ‘고점’ 맞을까…전문가들 “더 많은 물가 고점 증거 필요”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은 다소 비관적이다. 석유류 가격이 떨어진 것은 맞지만 기름값을 빼면 다른 물가는 여전히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2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식품 및 에너지 제외 물가가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4.0% 상승해 물가의 피크아웃(정점)을 확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석유류와 농산물 등은 일시적 충격에 따라 물가 변동폭이 크기 때문에 통계청은 이를 제외해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지수(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를 따로 산출한다. 이 수치는 전월 대비 0.2% 올랐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내고 “근원물가의 상승률이 2010년 이후 평균인 0.14%를 2배가량 상회하고 있고 상승 품목 비중도 속도는 약해졌으나 상승세는 유지하고 있어 인플레 압력이 해소됐다고 보기는 이르다”고 분석했다.

다시 국제유가가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8월 한국 물가, 둔화되고 있다는 더 확실한 증거 필요’라는 이름의 보고서에서 “국제유가 추이, 기상 여건 등 공급 측 요인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물가 추세의 뚜렷한 둔화 없이는 물가 상승폭이 재차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태풍과 폭우 등의 영향, 명절 수요 등으로 9월 농산물 가격은 8월(10.4%)에 이어 높은 상승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월 예정된 전기·가스 요금 인상도 물가 안정에는 악조건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7일 “(대외) 상황이 악화하지 않는 한 9월, 10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오름세가 수그러들 것”이라고 말했다.

■ 물가 안정되면 무역수지 진단부터”

전문가들은 마치 고원 형태처럼 물가 정점 수준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정점을 지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향후 물가 상황을 낙관적으로 평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다은 연구원은 “물가가 7월에 정점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서비스물가의 하방 경직성을 감안할 때 연말까지 5~6%대 상승폭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설령 물가 상승세가 잡힌다 해도 경제 정상화로 곧바로 이어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경기 침체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당장 물가 안정을 위해 통화당국이 내건 고금리 기조가 내수 경기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수요 축소가 가시화된 만큼 물가 상승 이후 최대 관심사는 경기 침체 우려”라고 분석했다.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든다면 악화일로인 무역수지에 대한 정부의 기민한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원일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무역 적자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에 기인하는 만큼 가격 조건의 변화로 무역수지의 빠른 개선 역시 기대할 수 있다”며 “물가 이후 무역수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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