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류세 감면 폭 OECD 국가 1위, “기후위기·무역적자 부추겨”

박상영 기자
지난 2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 설치된 유가정보판에 휘발유 가격이 표시돼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 설치된 유가정보판에 휘발유 가격이 표시돼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해 세수가 9조원이나 덜 걷혔지만 이에 따른 혜택이 고소득층에 집중되고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겨 온실가스 배출만 늘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유가 부담이 더 큰 취약계층에게 선별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란 국제기구 권고와도 배치된다. 환경을 해치고, 세수를 줄이며 무역적자는 악화시키는 유류세 인하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5일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류세를 가장 큰 폭으로 인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9월 3째주 기준 고급휘발유 세금 부담은 626원으로 2021년 2분기 평균(887원)에 비해 29.4%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경유는 651원에서 504원으로 22.6% 유류세 부담이 감소했다.

고유가에도 ‘유류세 인하’로 석유 소비량은 2.9% 늘어

이같은 세금 감면 폭은 매주 석유 판매가격을 공개하는 OECD 23개 회원국 중 가장 크다고 장 의원은 지적했다. 같은 기간 조사 대상국의 고급휘발유 세금 감면 폭은 평균 3.6%에 그쳤다. 경유는 오히려 세 부담이 6.7% 늘어났다. 조사 대상국 중 10% 넘게 휘발유 세 부담을 낮춘 나라는 7개국, 경유는 4개국에 불과했다. 되레 휘발유 세 부담이 늘어난 국가는 11개국, 경유는 13개국에 달했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세 부담도 함께 올랐기 때문이다.

유류세 부담을 대폭 낮추자 국제 석유가격의 가파른 인상에도 올 상반기 국내 석유 소비량은 늘었다. 한국석유공사의 자료을 보면 올 1~8월 총 석유 소비량은 전년 대비 2.9% 증가했다. 올 들어 원유 수입액도 매달 100억 달러 내외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고유가에도 석유제품 소비는 늘어나면서 무역적자 폭은 확대됐다. 지난달 원유 수입액은 전년 대비 33억1000만달러 늘었는데 이는 무역적자 규모(37억7000만달러)와 맞먹는 규모다.

석유제품 소비 증가는 탄소배출 확대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가가 오르면 경차나 전기차에 대한 선호현상이 커질 수 있는데 유류세 인하로 이같은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는 경차보다는 중대형차 선호도가 높은데 유류세 인하가 이런 추세를 부채질한다.

국제기구도 유류세 인하 혜택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OECD는 ‘2022 한국경제 보고서’를 통해 “유류세 인하 혜택은 고소득층에게 집중되고 에너지 과소비를 유발하며 기후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정부에 유류세 인하 정책 축소를 권고했다.

고소득층에 혜택 큰 유류세 인하···취약계층 지원은 부족

일괄적인 유류세 인하가 초래하는 ‘조세의 역진성’도 문제다. 유류세 인하로 고소득층이 더 큰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 분석 결과, 2018년 유류세를 15% 낮췄을 당시에 소득 1분위(하위 10%) 가구는 연평균 1만5000원의 세 부담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득 10분위(상위 10%) 가구에서는 15만8000원 세 부담이 줄어 소득 상위 가구일수록 유류세 인하 혜택이 돌아갔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도 6월 “유류세 인하보다는 유류세를 거둬서 저소득층 지원을 확대하라”고 제안했다. 현재 적용 중인 유류세 인하 폭 37%를 연말까지 유지할 경우 유류세 인하를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세수 감소 폭은 8조9000억원이나 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취약계층 지원 대책은 경유 가격이 기준금액을 초과하는 경우 화물차·버스·택시에 비용을 지원하는 ‘경유 유가연동보조금’이 있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특히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492억원이 삭감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에는 에너지바우처 지원대상을 기초생활수급자 중 생계·의료급여 수급자에서 주거·교육급여수급자로 확대했는데 내년 예산안에는 이 부분이 반영되지 않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장 의원은 “유류세 인하는 고소득층에 대한 일방적 혜택과 무역적자·탄소배출 증가로 이어졌다”며 “국제기구 권고에 따라 유류세 인하를 재고하고 유류세 세수로 국민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