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김진태 지사 탓은 아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주간경향] 오늘은 ‘레고랜드 사태’로 회자되고 있는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 발표를 둘러싼 금융권의 공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가 론스타 문제와 국정감사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10월 중하순부터 심심치 않게 레고랜드 사태니, 보증채무 불이행 선언이니 하는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강원도가 채권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설익은 말들을 쏟아내 채권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급기야 정부가 채권시장을 살리기 위해 국민 혈세 ‘50조원+알파’를 퍼붓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주장도 나왔다.

레고랜드 사태의 진실은 무엇일까? 정확한 것은 공사의 정관과 내부 회의록 그리고 지난 10월 초에 부도 처리된 자산유동화증권(ABCP)의 약관 및 기타 유관기관 간 약정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알 수 있다. 그러나 몇몇 단편적 사실관계를 차분하게 재조합해도 어느 정도 진실에 접근할 수는 있다. 한번 해보자.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전경. | 한수빈 기자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전경. | 한수빈 기자

레고랜드 사태의 ‘여섯가지 팩트’

필자가 언론, 인터넷 등을 통해 파악한 팩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 9월 28일 강원도가 지분 44%를 보유해 대주주로 있는 공사의 회생신청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배포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원도, 강원중도개발공사(GJC) 회생신청 하기로”라는 문건(이 문건의 일시 중 27일은 28일의 오기로 보인다)에 따르면 회생신청의 목적은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가 BNK투자증권에 빌린 2050억원을 대신 갚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모호한 표현이 이후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둘째, 공사의 2021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공사는 특수목적법인인 ‘아이원제일차’로부터 2050억원의 차입금이 있고, 대출 약정일은 지난해 11월 29일, 금리는 4.8%, 대출 만기는 지난 9월 29일이었다(일부 언론은 지난해 11월에 약정된 대출의 만기는 채무자의 요청에 따라 2023년 11월 28일까지 여러차례 연장할 수 있다는 특약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셋째, 아이원제일차는 위 대출자산을 담보로 BNK투자증권을 통해 동액의 ABCP를 발행했고, 금융감독원이 양정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개 법인 고객이 증권사 10곳과 자산운용사 1곳을 통해 투자했다.

넷째, BNK투자증권 또는 아이원제일차는 회생절차 신청 발표 이후 공사에 대해 부도 사유 발생을 이유로 기한이익상실 선언을 하고, 그에 따라 위 ABCP 역시 지난 10월 5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다섯째, 채권단과 강원도는 지난 10월 11일 채권단 회의를 가지고 향후 보증채무 이행과 관련한 내용을 논의했다.

여섯째,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 10월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보증채무를 내년 1월 29일까지 전액 상환할 예정임을 밝혔고, 지난 10월 27일에는 이 보증채무를 올해 12월 15일까지 상환하겠다고 했다.

‘안 갚겠다? 말해도 보증채무 그대로

이제 이 최소한의 팩트에 근거해 몇가지 주장의 진위를 살펴보자.

현재 가장 뜨거운 논란은 강원도가 지난 9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보증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는지 여부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도 ‘강원도가 시쳇말로 배째라 하면서 보증채무 이행을 거부해 이 난리가 났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필자의 판단은 ‘그렇지 않다’이다. 왜? 김진태 지사가 예뻐서? 아니다. 그냥 ‘쿨’한 법리가 그렇다.

회생신청을 하게 되면 법원은 보전처분을 내린다. 즉 관리인의 허락 없이는 회사 재산의 임의 사용이나 채무변제가 모두 동결된다. 이 경우 주채무자인 공사가 채무를 적시에 변제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이를 담보로 발행한 ABCP 역시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된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보증채무자인 강원도를 상대로 보증채무 이행을 청구하게 된다. 만일 강원도가 보증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강원도청의 재산에 대한 압류와 경매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면 된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강원도가 이 보증채무를 없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말로 ‘안 갚겠다’고 해봐야 압류와 경매를 막을 수 없다. 강원도가 보증채무를 없애거나 동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원도청 자체가 법원에 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는 것인데 이것은 상정 불가능하다. 돈놀이가 주업인 법인투자자들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법률가 출신인 김진태 지사가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결국 지난 9월 28일의 발표는 “강원중도개발공사는 회생절차 신청하고, 그에 따른 보증채무는 강원도가 이행한다”는 뜻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강원도와 김 지사는 지난 9월 말 이후 줄곧 이렇게 주장해왔다. 이에 반하는 팩트는 안 보인다.

그럼 왜 강원도는 보증채무를 즉각 갚지 않고 내년 1월까지 갚겠다고 한 것일까?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4개월치 이자 선납과 관련되지 않았나 싶다. 공사는 지난 8월 BNK투자증권과 대출 연장 협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4개월치 이자를 선납했다(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공사는 대출이 내년 1월까지 연장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즉 보증채무자의 입장에서는 주채무자의 대출기간은 아직 만료되지 않았다. 따라서 부도도 없으며, 보증채무는 내년 1월에 가서야 발생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이 부분은 실제 대출계약서와 기타 이면 약정서를 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강원도 또는 김 지사가 찬 ‘똥볼’이 채권시장의 ‘돈맥경화’를 야기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불과 2000억원짜리 보증부 채권이 부도 처리됐다고 채권시장이 돈맥경화를 일으킨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일부 공기업 채권이나 회사채 발행이 10월 중에 원활하지 않은 점은 있으나 그 이유는 전반적인 유동성 고갈에서 찾는 것이 더 적절해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이은 자이언트 스텝에 따라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12일 기준금리를 또다시 0.5%포인트 인상했다. 채권시장의 돈맥경화는 레고랜드 사태가 아니라 한은의 통화 긴축에 의해 촉발됐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금리 인상이란 채권값 하락을 의미한다. 금리 급등기에는 채권값이 폭락한다. 채권이 소화 안 되는 이유는 유동성 부족 탓도 있지만, 채권을 너무 비싸게 팔려고 한 때문일 수도 있다.

지난 11월 2일 연준은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한은은 곧 금리를 올릴 것이고, 채권은 또 폭락할 것이다. 독자들은 알아야 한다. 이런 폭락이 레고랜드 사태 때문은 아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진실을 마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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