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3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56살 CES가 묻기 시작했다

이재덕 기자
지멘스 직원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행사장에서 VR 기기를 이용해 지멘스의 디지털트윈 기술이 적용된 수중 온실을 체험하고 있다. 지멘스 제공. 사진 크게보기

지멘스 직원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행사장에서 VR 기기를 이용해 지멘스의 디지털트윈 기술이 적용된 수중 온실을 체험하고 있다. 지멘스 제공.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열린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 2023이 8일 막을 내렸다. 코로나 19, 기후변화, 우크라이나 전쟁, 경기침체 등 복합 위기 속에서 열린 이번 CES는 단지 ‘기술의 향연’에만 그치지 않았다. 올해 CES는 ‘모두를 위한 인류 안보(Human Security for All)’를 중요 의제로 삼았다. 인권 침해·식량 부족·환경 문제 등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각종 문제를 기술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주최 측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CES 첫날 개막행사에서 전세계가 직면한 큰 도전들을 해결할 기술을 소개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업체 지크립토가 개발한 투표 애플리케이션(앱) ‘zK보팅’이었다. 킨지 파브리지오 CTA 수석부사장은 “스마트폰으로 비밀투표가 가능하다”며 “이 기술이 선거에 관한한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앱마켓에서 zK보팅 앱을 내려받고 투표 자격을 인증받은 뒤, 여러 후보 중 한 명을 클릭해 선택하면 된다. 블록체인을 통해 투표자의 신원이 완벽히 감춰질 뿐 아니라, 투표자 개개인이 블록체인에 들어가서 자신의 표가 개표에 제대로 반영됐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암호 분야의 오현옥 한양대 교수(지크립토 대표이사)와 시스템공학자인 김지혜 국민대 교수(지크립토 최고기술이사)가 공동 개발한 서비스다.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퍼블릭 블록체인 안에서 신뢰도 높은 투표 시스템이 만들어진 건 처음이라는 게 지크립토와 CTA의 설명이다.

지크립토가 개발한 zK보팅. 지크립토 제공. 사진 크게보기

지크립토가 개발한 zK보팅. 지크립토 제공.

이같은 투표 방식은 주권자의 의견을 보다 쉽게 물을 수 있고 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오 대표는 “지난해 미국에선 대선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시위대가 의사당을 습격하는 사건이 있었다”며 “여러 나라에서 선거 시스템의 신뢰도를 높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CES에선 먹거리 생산을 늘리고, 환경 문제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기술도 소개됐다. 이탈리아의 스쿠버 다이빙 장비업체 오션리프그룹은 현재 지중해와 멕시코만 등에 수중 온실 ‘니모의 정원’을 만들어 채소, 담배 등 수백 가지 작물을 재배한다. 이는 기후 변화 등으로 경작지가 줄어든 것에 대한 대안 기술로 활용되고 향후 우주 기술 등에 이용될 수도 있다. 다만 수중 온실은 외부 환경과 작물 특성에 따라 수확량 등이 큰 차이를 보인다.

바다의 해류, 온도, 조도 등이 달라질 땐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까. 실제 경작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빠르고 쉽게 답을 알아낼 수는 없을까. 여기에 독일 지멘스의 ‘디지털 트윈’ 기술이 활용됐다.

수중 온실과 주변 바다의 데이터를 이용해 가상공간에 수중 온실을 그대로 옮겨놓는 기술이다. 특정 환경에서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볼 수 있다. 지멘스는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자사의 디지털트윈 기술이 적용된 수중 온실을 가상현실(VR) 기기를 이용해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이번 CES에서 재생플라스틱을 사용한 제품을 내놓거나 에너지절감 기술, 탄소절감 기술 등을 선보였다. 주요 이벤트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프레스컨퍼런스에서는 미세플라스틱 저감 세탁기를 함께 개발한 의류업체 파타고니아의 빈센트 스탠리 최고철학책임자가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3년만에 온전히 개최된 CES 2023은 174개국에서 3200여개 기업이 참가했다. 한국업체 참가 수는 500여곳으로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관람객 규모도 지난해(4만5000명)보다 크게 늘어 개막 이틀만에 11만2000명을 넘겼다.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 56년 역사의 CES가 비로소 근본 질문을 묻기 시작했다. 이번 CES는 기술 진보의 끝이 어디를, 누구를 향해야 할 것인지 되짚어보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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