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전기·수도 요금이 꺼져가던 물가 상승세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하락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 달 만에 반등해 5.2%를 기록했다. 정부는 연간 물가 상승률 전망치(3.5%) 달성에는 무리가 없다지만 물가 불안 요인은 산적해있다. 공공요금 인상은 시차를 두고 서비스와 상품가격에 전가된다. 하반기에는 서민들이 체감하는 자영업자의 서비스요금 인상이 뒤따를 수 있다는 의미다. 국제유가와 환율이 안정되더라도 고물가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달 물가 상승의 주범은 공공요금 인상이었다. 물가 상승률에서 전기·가스·수도의 기여도는 0.94%포인트로 지난해 물가 상승을 견인한 석유류(기여도 0.23%포인트)보다 높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수익성 개선을 요구하고 있어 가스·전기·수도요금 등은 추가적으로 오를 예정이다. 지방정부도 부채관리에 나서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이 20~30% 인상된다. 4월부터는 막걸리와 맥주 등에 붙는 주세도 인상된다. 맥주에 붙는 세금은 리터당 30.5원 올라 885.7원이 되고, 탁주에 붙는 세금은 1.5원 올라 44.4원이 된다. 통상 주류업체들은 주세 인상 직후 가격을 인상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정한 연간 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3.5%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3년 경제현안 분석에서 “유가·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 안정되더라도 하방 경직성 높은 서비스 가격은 상당 기간 높은 수준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정처는 4분기 이후에야 물가가 2.7%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그나마 이같은 전망은 국제 원자재가격이 안정되는 ‘베스트 시나리오’일 때다. 원유와 밀 등의 국제가격이 다시 오른다면 물가는 지난해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산되거나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수요가 폭증할 경우 하반기에도 고물가 악몽은 지속될 수 있다.
정부는 기존 물가 상승률 전망치 3.5% 달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예정된 전기·가스 요금 인상분을 전제로 전망했다”며 “올해 전체로 보면 3% 중반대 물가를 전망했는데 현재로서는 그 수치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반 물가 수준과 가스 요금이 많이 오른 부분하고 똑같이 보면 안된다”며 “가스요금도 물가 구성 품목 중 하나”라고 말했다.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더라도 458개 물가 구성 품목 중에는 상승하는 품목이 있을 수 있는데 이번 가스요금 인상도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서민들이 겪는 체감물가 고통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물가 상승으로 국가채무가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회 예정처에 따르면 당해년에는 인플레이션이 명목 국내총생산(GDP)를 높여 국가채무비율(GDP대비)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후에는 실질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국가채무비율이 증가한다. ‘인플레이션->금리상승·자원배분 왜곡->경제성장률 둔화->정부 지출 증가->국가채무비율 증가’ 절차를 밟게 된다는 분석이다. 예정처는 “인플레이션은 공적연금·사회보험·공공부조 등 복지 분야 의무지출을 높일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