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여러 기업이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나섰다. 현대차는 지난 1월26일 공시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자기주식 277만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공시 후 주식시장은 6%의 주가 상승으로 화답했다. 이어 KT와 여러 금융지주사가 자사주 매입과 소각 공시를 속속 올리며 주식시장 분위기를 훈훈하게 달구었다.
연초부터 들려오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 소식은 기분 좋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주주가치 제고와 기업가치 저평가를 해소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 1000만주를 발행해서 상장한 기업이 있다고 예를 들어보자. 연간 1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이 회사의 주가는 1주당 1만원이다. 100억원을 1000만주로 나누면 1주당 순이익(EPS·Earning Per Share)은 1000원으로 계산된다. 주당순이익 1000원 대비 주가가 10배이다. 우리는 이 10배를 가리켜서 주가수익비율(PER·Price Earning Ratio)이라고 한다. 주식투자자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지표이다.
이 회사는 발행된 주식 중 200만주를 자사주로 취득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주식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수는 800만주로 줄어든다. 그러면 1주당 순이익은 1250원이 된다. 주식시장에서 주가수익비율(PER) 10배가 적정치라면 주가는 자연스럽게 1만2500원으로 상승할 것이다. 즉 기업의 자사주 매입 결정은 주가 상승을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배당금 지급 외에 자사주 매입도 주주에 대한 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주주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주지는 않지만 주가 상승이라는 더 큰 선물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다소 냉정한 시각으로 올해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을 바라보자. 기업들이 자사주를 취득하고 소각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해외 기업들과 비교해서는 여전히 너무 소극적이다.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고 소각해봤자 발행 주식 수 대비 1% 내외인 경우가 부지기수고 아주 오랜만에 발표한 공시사항이라 이렇게 주식시장이 잠시 환호한 것뿐이다.
미국의 수많은 기업은 매년 자사주 취득에 수십조원의 돈을 쓴다. 애플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평균 18조원을 들여 자사주를 취득한다. 연간 벌어들인 순이익을 초과해서 자사주를 취득하는 해도 많다. 꾸준히 자사주를 사들인 홈디포, 맥도널드 같은 기업들은 발행 주식 수 대비 42%, 55%씩 취득했다. 자사주를 취득하느라 너무 많은 돈을 쓴 나머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버렸다.
철저히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을 하는 미국 기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부럽기 그지없다. 일관성 있게 매년 자사주를 취득해서 유통주식 수를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 열심히 해서 자본잠식에 빠질 정도니 실적이 조금 안 나와도 주가는 늘 일정 수준으로 유지가 된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주주가치 제고보다는 2세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 등 오너의 이익을 더 우선시해왔다. 그러다 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투자자들도 당연히 미국 주식에 관심을 더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을 한 해 반짝 이벤트가 아닌 매년 시행하는 정책으로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에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외국자본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다. 주주환원에 계속 소극적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절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