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내부인사 선택…주주들의 선택은읽음

주영재 기자

여권 관련 정·관계 인사들 탈락

국민연금·현대차는 반대 유력

소액주주들은 찬성 가능성 높아

[주간경향] 대표이사 선임을 둘러싸고 여권·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었던 KT가 오는 3월 3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 선임 안건을 의결한다. 강충구·여은정·표현명 등 현직 사외이사 3인의 재선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목적 사업 추가를 포함한 정관 일부 변경 등도 함께 의결한다. 윤 대표이사 후보와 사외이사 후보 중 현직 이사들은 여권이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판했던 인물들이다. KT가 윤 후보를 택하면서 여당과 대통령실에 반기를 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KT의 최고경영자(CEO) 선출은 3개월째 안개 속을 걷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KT 이사회는 정관에 없는 연임우선심사 제도를 통해 구현모 사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비자금 조성과 ‘쪼개기 후원’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75억원의 과징금을 받으면서 CEO 리스크가 불거진 구현모 사장의 연임이 결정되자 비판 여론이 거셌다. 특히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론의 압박에 이사회는 지난 2월 9일 대표 선임 절차를 공개경쟁 방식으로 재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진행된 대표이사 공모에서 사외 인사 18명을 포함해 모두 34명이 지원했다. 지원자 심사 중이던 2월 23일 구 대표는 지원을 철회했다. 2월 28일 이사회가 추린 최종 후보자는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을 포함해 4명으로, 모두 KT의 전·현직 임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인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 여권이 밀던 정·관계 출신 인사들은 모두 탈락했다.

3월 말 예정된 KT 정기 주주총회에서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의 차기 대표이사 확정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3월 말 예정된 KT 정기 주주총회에서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의 차기 대표이사 확정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주주총회 통과 가능성이 좀더 높아

여권과 대통령실의 언사가 거칠어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3월 2일 기자회견을 열어 “구현모 대표는 자신의 ‘아바타’ 윤경림 후보를 세웠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이는 내부 특정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은 “그것(공정·투명한 거버넌스)이 안 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우리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민연금도 정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의중을 시사했다.

KT는 주주가치를 확대할 수 있는 최고 적임자라는 판단이 윤 후보를 택한 가장 큰 이유라는 입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윤경림 사장은 미디어(CJ), 자동차(현대차) 등 국가 주력 사업에서 사업 전략을 담당한 바 있는 융합형 경영인으로, KT의 미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KT는 이권 카르텔 논란에는 지배구조 개선으로 대응하고 있다.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의 요청으로 ‘지배구조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대표이사 선임 절차와 사외이사 등 이사회 구성과 ESG 모범규준 등 최근 지적받은 사항을 중심으로 지배구조 강화 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가 마지막 관문인 주총을 넘어설지는 아직 미지수다. KT 규정에 따르면 주총에서 안건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 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민연금은 주주명부 폐쇄일인 지난해 12월 27일 기준 지분 10.13%를 보유 중이다. 약 8%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인 현대차그룹은 최근 KT에 대주주 의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사실상 국민연금과 의견을 같이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3대 주주인 신한은행(약 5%) 역시 현대차그룹과 비슷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결국 비교적 지분율이 큰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의 움직임에 따라 결과가 정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윤 후보가 재임 기간 KT 주가를 끌어올린 구현모 대표의 ‘디지코’ 전략을 계승할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우호적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관련해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글래스루이스는 지난 3월 14일 주요 KT 주주들에게 보낸 의견서에서 “주주들이 우려할 만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며 KT 차기 경영진 구성과 관련해 윤 후보와 사외이사 후보 전체에 대해서 찬성을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글래스루이스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에 이은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기관으로 꼽힌다. 각국 연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 1300여 곳에 의결권 행사 자문을 제공하고 있어 외국인 주주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선 ISS도 찬성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승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10년간의 KT 주총을 보면 국민연금은 항상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국민연금과 현대차를 제외하면 가장 비중이 큰 외국인의 의결권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이들은 보통 의결권 자문기관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의결권 자문기관에서 찬성 의견을 냈는데 대부분의 외인 기관투자자가 이를 따른다면 일단 윤 후보자의 대표이사 선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경제개혁연대 부소장)는 “국내 소액주주도 해외의 의결권 자문기관 의견을 많이 따르기 때문에 표 대결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면서 “정권이 일방적으로 찍어내려고 해도 (부결시키기가) 쉽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엔 입 닫는 ‘스튜어드십 코드’

구현모 대표는 KT가 2014년 5월에서 2017년 10월까지 회사 자금으로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상품권깡’을 해 11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중 4억3790만원을 당시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한 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구 대표는 판결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해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구현모 대표가 연임에 나서면서 권력이 개입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크다.

그렇다고 정부 지분이 0%인 민간기업의 CEO 선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여권의 행태가 정당성을 얻을 수는 없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동원하는 정부·여당의 시도가 적절한지를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금융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소유분산 기업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유분산기업은 확고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으로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경우가 많다. 금융지주와 KT, 포스코 등이 대표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의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는 자율지침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애초에 스튜어드십 코드에 포함될 수 없고, 기금운용 원칙이나 수탁자책임 원칙에도 명백히 위반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3월 10일 논평에서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재벌 등 가족 지배기업에 대해서는 정부나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KT, 금융지주사와 같이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만을 거론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창민 교수는 “경제개혁연대는 쪼개기 후원과 SEC의 과징금 부과 등 처벌 전력 등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명확한 기준을 두고 구현모 대표의 연임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했다”면서 “국민연금은 이런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언급은 없고 지배구조가 이상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선진 기업들도 내부에서 차기 CEO를 뽑는 경우가 많고, 이는 투명한 경쟁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사실 문제 삼을 게 별로 없다”면서 “결국 기업가치 훼손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돼야 하는데 이는 다른 재벌기업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하긴 싫기 때문에 (내부에서 후보를 뽑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끄집어내면서 입장이 꼬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월 7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월 7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자신의 ‘지배구조’ 돌아봐야

국민연금이 정부의 인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들고나오면서 본래의 취지를 왜곡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지배주주의 위법하고 부당한 행위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다가, 급작스레 KT를 비롯한 소유분산기업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발동을 거는 이상한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국민연금이 정부의 영향에서 독립해야 한다. 최근의 움직임은 그러나 오히려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7일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운영규정을 바꿔 가입자단체의 추천을 받아 위촉하는 비상근 위원을 6명에서 3명으로 축소했다. 대신 전문가단체 등으로부터 추천받아 민간전문가단을 구성하고 그중 3명을 비상근 위원으로 위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가입자단체의 감시와 통제 역할이 약화되는 것이다. 수책위는 책임투자, 주주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에 관한 사항을 전문적으로 검토, 심의하는 기구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드러났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번 규정 변경으로 독립성을 위협받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전문가단을 추천하는 곳은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한국증권학회, 한국재무학회, 한국경영학회, 금융투자협회, 한국국제경영학회 등 금융자본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문가단체가 대부분이다. 이창민 교수는 “전문성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가입자단체가 추천하던 인사들도 모두 전문가였다”면서 “추천권이 있는 학회가 모두 재계에 포섭됐다고 할 순 없지만, 관련성이 크다는 점에서 독립성이 현격히 저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민연금 스스로가 지배구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상근전문위원으로 비전문가인 검찰 출신(한석훈 변호사)을 선임한 것은 최소한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인사라고 비판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의 투자기업 주주권을 자문하는 기구로, 주로 금융·회계 전문가가 맡아왔다. 이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용와대’의 입장을 받아서 전달하는 식이다. 한 위원은 보건복지부가 지시한다면, 따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현저한 독립성 저하가 우려된다. 이 정부에서 기재부가 국민연금을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이 경우 환율방어에 연금을 쌈짓돈 쓰듯 동원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국민연금 기금위에 참여하려면 전문성과 독립성, 대표성이라는 3개 요건을 다 갖춰야 한다. 특히 상근전문위원은 국민연금 기금위의 투자정책 전문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세 위원회에 모두 참여한다. 상근위원이라면 세 영역에서 두루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검사라면 의결권을 다루는 상법을 알 테니 수탁자책임 측면에서 전문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에선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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