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외풍’, 윤경림도 날렸다

구교형 기자

“못 버티겠다” KT 대표 후보 사퇴

여권 ‘외풍’, 윤경림도 날렸다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사진)가 전방위적인 여권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내정 16일 만에 사퇴 수순을 밟게 됐다. 연임 확정 후 국민연금과 여권의 반대에 중도 포기한 구현모 현 대표에 이어 연이은 사퇴다. 이달 말 구 대표의 임기가 만료되는 상황에서 KT는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됐다.

23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윤 후보는 전날 KT 이사진과 가진 간담회 등을 통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면서 “내가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윤 후보 사퇴의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을 내정 단계부터 “구현모 아바타”라고 비판한 정부·여당의 외압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차기 대표를 선출할 31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내외 주주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윤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고 소액주주까지 지지하자 본인과 주변을 상대로 한 여권의 압박은 더 거세졌다. KT 관계자는 “후보 내정 단계 때는 기자회견이나 브리핑같이 장외에서 공개적인 방식으로 압박했다면, 최근에는 본인과 주변을 향해 은밀하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윤 후보가 거취를 고심 중이라는 얘기는 지난 21일부터 KT 안팎에서 돌기 시작했다.

여권 ‘외풍’, 윤경림도 날렸다

■‘대통령실 최후통첩설’까지…KT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위기’

KT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대통령실에서 윤 후보에게 최후통첩을 했다고 들었다”거나 “KT를 겨냥한 검찰 수사 등에 윤 후보가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무렵부터 회사 차원에서도 윤 후보의 사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표 부재 시 대행체제 운영 등에 대한 법적 검토를 시작했다고 한다.

여권과의 소통 창구로 염두에 둔 이들이 줄줄이 회사와 결별한 점도 적잖은 부담이 됐다. 윤석열 대선캠프 출신인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은 지난 8일 KT 사외이사 후보에 내정됐다가 이틀 만에 철회했다. 윤 대통령의 고교 선배인 윤정식 KT스카이라이프 대표 내정자 역시 정치권에서 구설이 나오자 돌연 대표직을 포기했다.

윤 후보는 본격화된 검찰 수사에도 압박을 느꼈다. 보수단체는 지난 7일 윤 후보와 구 대표가 KT 계열사인 KT텔레캅의 일감을 특정 시설관리업체에 몰아주고, 이사회를 장악하고자 사외이사들에게 부정한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며 검찰에 고발했다.

주총 표 대결 승리가 불투명한 점도 윤 후보의 거취 고민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다. 대다수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주주들에게 윤 후보 찬성표를 권고하면서 외국인과 소액주주들이 결집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하지만 KT 최대주주로 정부를 대변하는 국민연금(지난해 말 기준 지분 10.13%)이 윤 후보에 대한 반대 의사를 철회하지 않으면서 부담감이 컸다. 2·3대 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7.79%)과 신한은행(5.58%)의 행보도 미지수였다.

KT는 윤 후보 사퇴 시 올해 상반기 주요 사업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KT 관계자는 “각 부서장 지휘하에 기본 업무는 수행하겠지만 투자비 지출 등 굵직한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후보를 대표로 선출한 KT 이사회도 격랑에 빠지게 됐다. 주총일에 임기가 만료되는 강충구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여은정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표현명 전 KT렌탈 대표의 사외이사 임기를 1년 연장하는 안건부터 주총에서 통과될지 불투명하다.

민간기업인 KT 대표 후보가 연달아 여권 외풍에 쓰러졌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내에서는 “이번 기회에 사명을 ‘한국통신공사’로 다시 바꿔야 한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들끓는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사회를 무시하고 원하는 사람을 꽂을 때까지 압박하는 정부가 지배구조를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며 “약점을 잡아 주저앉힌 정보가 정부기관에서 나왔다면 국정농단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기간산업인 통신 영역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회사의 사장을 쫓아낸 구체적인 물증이 잡힌다면 국회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특검 도입을 통해 별도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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