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법칙’ ‘실리콘밸리의 주역’ 고든 무어 인텔 창립자, 잠들다

이재덕 기자
고든 무어 인텔 공동창립자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 인텔 제공.

고든 무어 인텔 공동창립자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 인텔 제공.

“회로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트랜지스터) 수가 증가하고 단가가 하락하면서 (10년 뒤인) 1975년에는 하나의 실리콘 칩에 최대 6만5000개의 부품을 집어넣게 될 겁니다.”

1965년 4월19일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 당시 페어차일드 반도체 공동창업자인 고든 무어의 글이 실렸다. ‘칩 하나에 부품 욱여넣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무어는 페어차일드의 칩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1962년에는 8~10개(약 2의 3제곱), 1963년에는 15~20개(약 2의 4제곱), 1964년 30개(약 2의 5제곱) 1965년에는 60개(약 2의 6제곱)로 늘어났다며 이런 속도라면 1975년에는 6만5000개(약 2의 16제곱)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도체의 트랜지스터 수가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만큼 성능도 약 2배 수준이 된다. 미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의 카버 미드 교수가 이를 ‘무어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로버트 노이스와 1968년 인텔을 공동창업한 무어는 1975년 반도체 내 트랜지스터 개수가 6만4000개 수준에 그치자 ‘반도체 집적도가 2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내용으로 법칙을 수정했다.

고든 무어가 1965년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 실린 ‘무어의 법칙’ 그래프(왼쪽). 반도체 집적도 추세에 따라 10년 뒤인 1975년에는 반도체 내 트랜지스터 수가 6만5000개(약 2의 16제곱)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 고든 무어가 1975년 수정 발표한 ‘무어의 법칙’ 그래프(오른쪽). 인텔 제공.

고든 무어가 1965년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 실린 ‘무어의 법칙’ 그래프(왼쪽). 반도체 집적도 추세에 따라 10년 뒤인 1975년에는 반도체 내 트랜지스터 수가 6만5000개(약 2의 16제곱)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 고든 무어가 1975년 수정 발표한 ‘무어의 법칙’ 그래프(오른쪽). 인텔 제공.

일종의 경험칙이었지만, 무어의 법칙은 어느새 반도체 업계가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됐다.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반도체 회로 선폭을 줄이는 미세공정이 도입됐다. 시장도 이런 혁신을 원했고 미 월가의 자금이 실리콘밸리로 흘러들었다.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이 만들어지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인텔은 굴지의 중앙처리장치(CPU) 생산 업체로 성장했다. 1971년 인텔의 첫 CPU인 ‘4004’는 선폭 10㎛(마이크로미터, 1㎛는 0.001㎜) 공정에서 트랜지스터 2300개가 들어갔다. 1995년 출시된 ‘펜티엄 프로’는 0.6㎛ 공정에서 550만개 트랜지스터를 집적해냈다. 당시 이사회 회장이었던 무어는 “아직까지는 이것(무어의 법칙)이 곧 멈추리라고 보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인텔의 공동창립자인 고든 무어(왼쪽)와 로버트 노이스(가운데). 창업 직후 합류한 직원 앤디 그로브(오른쪽). 앤디 그로브는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인텔의 CEO를 맡았다. 1978년 사진. 인텔 제공.

인텔의 공동창립자인 고든 무어(왼쪽)와 로버트 노이스(가운데). 창업 직후 합류한 직원 앤디 그로브(오른쪽). 앤디 그로브는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인텔의 CEO를 맡았다. 1978년 사진. 인텔 제공.

다만 인텔이 무어의 법칙에 집착하면서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인텔은 2010년까지 CPU의 집적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지만 초미세공정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무어의 법칙을 따라가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는 사이 애플의 ‘아이폰 혁명(2007년)’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CPU보다 전력소모가 적은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설계하는 영국 ARM이나 미국 퀄컴 등이 급성장했다.

고화질 게임과 암호화폐 등의 등장으로 간단한 계산을 병렬로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수요가 늘면서 엔비디아 등도 인텔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애플·퀄컴·엔비디아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대만의 TSMC는 초미세공정의 전문성을 높여나갔다.

반도체 업계의 ‘○○의 법칙’을 보면 반도체 기술 주도권이 어느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명실상부한 1위에 오른 2000년대 초에는 ‘황의 법칙’이 나왔다. 2002년 황창규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이 무어의 법칙에 빗대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늘어난다’며 황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지금 ‘황의 법칙’의 주인공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황은 ‘AI를 구동하는 반도체(GPU 등) 성능은 2년마다 2배 이상 향상된다’고 말한다.

고든 무어가 2015년 무어의 법칙 50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하는 모습. 인텔 제공.

고든 무어가 2015년 무어의 법칙 50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하는 모습. 인텔 제공.

무어는 지금의 실리콘밸리 문화를 만든 주역으로도 꼽힌다.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트랜지스터 개발로 노벨상을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쇼클리반도체연구소’에 취직했지만, 강압적인 연구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로버트 노이스 등 동료 7명과 함께 회사를 나왔다. ‘8인의 배신자’들이 벤처캐피털(VC) 펀딩을 받아 쇼클리반도체연구소 인근에 세운 회사가 바로 페어차일드 반도체다. 이들이 기존의 게르마늄이 아닌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를 만들면서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1929년 태어난 무어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94세. 인텔은 이날 고인이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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