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폭탄에 캐리어 끌고 천안서도 와요”…‘서민들의 성지’ 경동시장 가보니읽음

정유미 기자

“대형마트보다 채소 등 50~60%이상 저렴”

상추·깻잎 봉지당 1000원, 강남서도 찾아와

휘발유 ℓ당 500원 싸, 가득 주유 3만원 절약

지하철 무료승차 어르신, 천안서 매일 상경도

29일 서울 역삼동에 사는 주부 박모씨(55)는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한 푼을 아끼기 위해 아파트 이웃과 함께 청량리 경동시장으로 향했다.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시장을 둘러보던 박씨는 신선식품은 물론 휘발유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추와 깻잎 묶음은 봉지당(200~300g) 1000원이었고, 길거리에서 파는 오이(3개)는 2000원, 쪽파(1단)는 3000원에 불과했다. 강남 일대에서 ℓ당 2000원 하는 휘발유 가격은 1500원대로 500원 가량이나 쌌다.

박씨는 “자고 나면 온갖 먹거리에 기름값까지 안 오르는 게 없어 지갑을 열기가 무섭다”면서 “경동시장에서 채소를 실컷 사고 주유도 가득했는데 10만원 이상은 절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대 ‘서민들의 장바구니 성지’로 불리는 서울 청량리 경동시장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주민뿐만 아니라, 타지역에서 찾아오는 40~50대 주부들이 알뜰 장을 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서울 옥수동에서 왔다는 최모씨(48)는 “평일 일주일에 한번 차를 몰고 경동시장을 찾는데 고기와 나물류에 반찬과 떡까지 가격이 너무 싸다”면서 “주유도 가득 넣으면 한번에 3만원가량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청량리 경동시장 일대에서 파는 채소류 등 신선식품 가격은 대형마트와 비교할 때 ‘반값’에 가까웠다. 대형마트의 경우 오이(2개)가 3980원, 상추(150g) 2480원, 깻잎(1봉지) 2980원, 청양고추(2봉지)는 5960원 등이지만 경동시장에서는 오이를 개당 600원, 상추(200g)와 깻잎(4개 묶음)은 각각 1000원, 청양고추(2봉지)는 3000원에 팔고 있었다.

야채가게의 고추 홍보 팻말과 지폐. 문재원 기자

야채가게의 고추 홍보 팻말과 지폐. 문재원 기자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29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29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인근 식자재 마트도 가격이 싼 편이다.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인근 마트의 경우 돼지고기 찌용이 600g에 2750원 하는 등 소고기 양념 불고기, 생닭, 편육, 순대고기 등도 대형마트의 절반 수준이었다.

식자재 마트 관계자는 “입소문이 났는지 싸고 맛이 좋다며 멀리서 찾아오는 주부들이 부쩍 늘었다”며 “24시간 운영하는데 오후 5시가 되면 하루 준비물량이 동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식자재 마트에서 만난 강모씨(43·경기 의정부)는 “6개월 전 청량리에 사는 대학선배 집을 찾았다가 우연히 장을 봤는데 대형마트에 비해 모든 가격이 50% 이상 저렴했다”며 “요즘은 한달에 두 번 날짜를 정해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2번 출구는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시장을 찾는 어르신들이 줄을 이었다. 천안에 산다는 70대 할머니는 “고춧가루도 빻고, 참기름도 짜고, 떡도 사고, 가격이 싸서 장을 보는 재미가 있다”며 “무료로 지하철을 타고 벚꽃구경까지 할 수 있으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라고 웃었다.

29일 지하철 제기동역 2번 출구앞에서 캐리어 장바구를 끌고 야채를 사는 모습.  정유미기자

29일 지하철 제기동역 2번 출구앞에서 캐리어 장바구를 끌고 야채를 사는 모습. 정유미기자

최근 경동시장이 달라진 데는 젊은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것도 한몫했다. ‘경동시장’이라는 현대식 간판을 따라 광성상가 입구 건물로 올라가자 LG전자 금성전파사 앞은 인증샷을 찍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바로 옆 스타벅스경동 1960점에서는 한참을 기다려 커피를 주문했지만 빈자리가 나지 않아 결국 포장한 채로 돌아나와야 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매일 오전 11시 문을 여는데 아침 10시부터 오픈런이 벌어진다”면서 “오전 11시30분이 되면 좌석이 다 차는데 장을 보러나온 40~50대 주부들도 삼삼오오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이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경동시장 한켠에서 숨길을 돌리고 있었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경동시장 LG전자 금성전파사. 정유미기자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경동시장 LG전자 금성전파사. 정유미기자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스타벅스 경동 1960.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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