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맞대응으로 원전 등 ‘CF100’ 내세운 정부, 안방용 우려도읽음

박상영 기자

정부·대한상의, ‘무탄소 에너지’ 포럼 출범

재생에너지 중심 RE100에 원전+수소발전 포함

RE100 대안 자리잡기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경북 울진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1호기(왼쪽), 2호기(오른쪽)의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북 울진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1호기(왼쪽), 2호기(오른쪽)의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전기차 모터 부품을 생산하는 A사는 완성차 업체 볼보로부터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100%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A사는 이런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는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자, 결국 납품 계약은 최종 무산됐다.

코트라는 “볼보로부터 앞으로 유럽 시장에 납품하려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관련 목표 이행 계획서 제출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태양광 패널 설치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고 노력하지만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로만 100% 전력을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BMW와 볼보 등 해외 주요 기업의 RE100에 대한 이행 요구가 본격화하면서 국내 납품업체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대안으로, 재생에너지에다 원자력발전까지 포함한 ‘무탄소 에너지(CFE·Carbon Free Energy)’를 새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CFE가 RE100처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지 못한 채, 자칫 원전 중심 정책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기후 무역장벽 RE100 대안으로 CFE 밀고 있는 정부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CFE 포럼’ 출범식을 열었다. CFE는 탄소 배출이 없는 무탄소 에너지를 통해 전력을 공급한다는 의미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해야 하는 RE100과 달리 원자력발전, 수소,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 등도 포함한다. RE100에 대응해 ‘CF100’이라는 용어로도 널리 쓰인다.

일단 정부의 고민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국내 일조량과 바람이 부족한 데다, 이웃국가와 연결된 유럽·북미와 달리 전력망도 고립돼 재생에너지 확대에 한계가 있다. 재생에너지는 태양, 바람 등의 간헐적 특성 탓에 다른 에너지원과 보완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웃국과 그리드 연결망이 중요하다. 이에 정부는 이런 현실에서 RE100만 고집하기보다 원전을 포함한 CFE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산업부는 “비싼 전기를 사용하는 기업은 RE100을 이행하는데 비용부담이 커지고, 재생에너지 환경이 좋은 나라 기업보다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RE100이 민간의 자발적인 캠페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제적인 무역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포럼을 통해 국내 현실에 맞는 무탄소 에너지 인증체계를 미리 검토하고 향후 국제기준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역할을 한다는 계획이다. 연내 무탄소 에너지 인증제도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내년엔 시범사업도 진행키로 했다. 이날 포럼에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 포스코 등이 대거 참여한 것은 국내 주요 기업들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무탄소에너지(CFE) 포럼 출범식. 산업부 제공.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무탄소에너지(CFE) 포럼 출범식. 산업부 제공.

참여기업 확대 미지수···전문가 “RE100 대안 되기 어려워”

그러나 CFE가 RE100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RE100을 선언한 세계적 기업이 납품하는 국내 기업에게도 이를 요구할 때 대신 ‘CFE 달성’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안방용’에 그칠 수 있다는 뜻으로,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CFE 연대를 끌어내야가 관건이다.

CFE 참여기업이 70여 개로 RE100 참여기업(385개)보다 한참 밑도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권경락 플랜 1.5 활동가는 “애플이나 BMW 등 주요 기업들이 RE100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CFE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신산업본부장도 “CFE는 RE100을 대체하기보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CFE가 RE100보다 달성하기 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RE100의 경우, 화석연료를 통해 나온 전력을 사용했어도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나 녹색프리미엄 등의 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구매해 상쇄할 수 있다.

반면, CF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전력을 무탄소 에너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직접 공급받는 것이어서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일례로 구글은 데이터센터 등에서 소비되는 전력의 양은 물론, 전력 생산원과 탄소 배출량이 얼마인지 등을 시간별로 측정하고 있다. 이런 엄격한 기준 때문에 구글 등 RE100 기업이라 하더라도 시간대별로 보면, 68%만 무탄소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FE 논란은 크게 보면 원전 등을 녹색 분류체계인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킬지 문제와도 결부될 수 있다.

정부는 CFE 활성화를 위해 유인책 등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원전 등 무탄소 에너지를 사용한 것을 인증하는 제도를 신설하고 전용 요금제 도입도 검토하기로 했다. 기후환경단체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원전 일변도 정책의 강화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권 활동가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전 중심으로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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