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연구기관 공익허브 “자가용 수요 상당수 대중교통 전환 가능”
국회도 이소영·용혜인 의원 법안 발의…재원 5년간 6조 이상 필요
국토부 ‘난색’ 보이지만…“온실가스 감축·이동권 보장 측면 봐야”
서울시 구로구에 사는 5년 차 회사원 김준수씨(31·가명)는 승용차로 출퇴근을 한다. 경기 부천에 있는 회사까지 40~50분 걸리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7시30분에는 집에서 출발한다. 도로에서는 교통체증에 시달리다 회사에 도착하면 주차 자리를 찾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김씨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운전대를 잡는 내내 스트레스”라며 “긴 출퇴근 시간 때문에 개인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기로 마음먹고 지난 9월 입법연구기관 공익허브에서 진행하는 대중교통비 지원 프로그램, 이른바 ‘모두의 티켓’을 신청했다. 김씨를 포함한 참여자 8명은 대중교통비 5만원을 지원받아 45일간 버스·지하철 등을 자유롭게 이용했다. 참여자들의 만족도는 높았는데, 무엇보다 조건 없는 ‘선지급’ 효과가 컸다. 김씨는 “대중교통비로만 쓸 수 있는 돈을 받았는데 가능하면 한 번이라도 더 타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정책이 생기면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을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는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조건 없이 마일리지를 지급하는 모두의 티켓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승용차 통행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가 큰 정책이라는 의견과 재원 부담이 크다는 현실론이 엇갈린다.
■ “지원받으면 지하철 더 이용”
19일 한국정책리서치가 공익허브의 의뢰로 시행한 자가용 이용자 대상 설문조사(302명 응답) 결과를 보면 ‘대중교통 연 100회 무료 이용권이 제공되면 지금보다 대중교통을 더 자주 이용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8.5%가 ‘그렇다’고 답했다. 예상되는 대중교통 추가 이용 횟수는 ‘일주일 3.5회’라고 추정했다. 공익허브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대중교통 100회 무료 티켓이 자가용 수요를 대중교통으로 전환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나타낸다”며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는 생계비 부담 완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대중교통비 보편 지원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다. 전 국민에게 대중교통을 100회 이상 이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를 선지급해 1년간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공익허브가 제시한 모두의 티켓 정책이 개정안의 모태다.
모두의 티켓은 다른 대중교통 지원 정책과 달리 별도 발급 조건이 없다. 간단한 신청 절차만 거치면 평소 사용하는 체크·신용 카드에 1년간 대중교통비로 쓸 수 있는 마일리지가 충전된다. 한 달에 수십회 대중교통 이용 횟수를 채워야만 마일리지가 지급되는 K패스(국토교통부)와 The(더)경기패스(경기도) 등 다른 ‘조건형’ 지원책과는 다르다. 내년 7월 시행 예정인 K패스는 월 21~60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일반인·청년·저소득층에 따라 차등적 환급률로 교통비를 돌려받도록 설계됐다. 경기패스도 횟수 제한을 없앴다는 차이만 있을 뿐 K패스와 유사하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박진현씨(29·가명)는 “교통비를 나중에 캐시백해주는 정책들과 달리 이용하기 전에 먼저 교통비를 지급해주니까 심리적 부담이 확 덜어져서 좋았다”며 “선지급 방식 덕분에 교통비 지원이 확실히 체감됐다”고 말했다.
■ 정부 “막대한 재정 소요·혼잡 우려”
문제는 재원 확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대중교통 이용자에게 연 100회분 교통비(도시철도 기본 이용요금 기준)를 지원하는 경우 들어가는 비용을 따져봤더니 2024년 6717억원, 2028년 1조3329억원 등 향후 5년 동안 6조184억원(연평균 1조2037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번 추계는 향후 수요 증가, 행정 운영 비용, 대중교통 요금 인상 등 요인을 반영하지 않고 계산한 결과다. 추가 인상 요인을 감안하면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같은 대중교통비 지원 사업에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토부는 연간 1조2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재원 마련이 곤란하고, 대중교통 실수요 증가로 교통혼잡이 예상된다며 해당 법안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무리한 대중교통비 전면 무료화 요구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획재정부는 아직 별도 의견을 내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입장일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는 앞서 비슷한 취지의 ‘대중교통 3만원 프리패스’ 법안(통합할인정액권 사업·정의당 심상정 의원 대표발의)을 두고 “사업 시행 시 대규모 재원 소요가 전망되고 막대한 재정 부담이 우려되므로 투자 우선순위 고려가 필요하다”며 “오남용 및 교통혼잡 유발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반면 교통비 보편 지원을 추진하는 측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 효과를 감안하면 비용 대비 사회적 편익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에 따르면 승용차 이용자가 일주일 중 하루의 이동수단을 대중교통으로 바꾸면 1인당 469㎏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다. 1인당 연간 71그루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이동우 변호사(공익허브)는 “국민의 기본 이동권 보장 측면에서 대중교통비 지원은 중앙정부 책무”라며 “모두의 티켓은 모든 사람이 모든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차별 없는 정책이자 다른 정책들과 비교해 가장 효율성이 좋은 정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