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과 테크노필리아
작품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는 작품이 있다. 이런 작품들은 일개 작품을 넘어 한 장르의 원형이 된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딱 그런 소설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캐릭터가 스토리고 스토리가 곧 캐릭터다. 인간이 만든 괴물,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과학자라는 캐릭터도 <프랑켄슈타인>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때문에 1818년 초판 발행된 <프랑켄슈타인>은 최초의 영문학 SF소설로 불린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여성인 메리 셸리가 18세에 쓰기 시작해 21세에 완성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분위기가 팽배하던 때라 초판 발행 당시 저자 이름을 밝히지도 못했다. 서문은 남편인 퍼시 셸리가 썼다. 1831년 수정판에 가서야 메리 셸리는 초판에서 쓰지못했던 서문을 실명으로 썼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오해도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다. 그래서 메리 셸리의 초판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남자를 만든 신이다. 그러니까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이 남자(괴물)을 만든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1831년 수정판에서 <프랑켄슈타인>으로 제목이 축약됐고, 1910년부터 영화화되며 무수히 재창조되는 과정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력의 녹색 괴물 그자체로 변했다.
소설은 3명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월턴 선장,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괴물이다. 북극의 새로운 항로를 찾아 항해 중이던 월턴 선장은 우연히 빙하 속에 표류하던 한 남자를 구출한다. 피로와 배고픔에 처참한 몰골을 한 그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이 월턴 선장에게 전한 얘기는 실로 놀라웠다.
제네바 출신의 유력가문 출신인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에 흠뻑 매료됐다. 그는 2년간의 연구끝에 발생과 생명의 원인의 밝혀내는 데 성공한다.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1월의 어느 음산한 밤. 그는 키 2m40cm의 괴물을 창조해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해냈다는 기쁨은 잠시 곧 창조물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했던 바람과 달리 창조물은 섬뜩하고 괴기스럽고 끔찍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물을 ‘괴물’이라 부르며 외면한다. 버림 받은 괴물은 인간들에게 사랑과 이해를 받고 싶어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워 하며 도망간다. 극심한 배신감과 분노에 괴물은 자신을 만든 프랑슈타인의 지인을 한명씩 살해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에 대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괴물의 빠른 학습능력이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달의 존재조차 몰랐던 괴물은 노숙자들이 남겨놓은 모닥불에서 불의 사용법을 터득한다. 불은 열과 빚이나고 불로 음식을 구워먹으면 훨씬 맛나다는 것을 관찰과 경험을 통해 습득한다.
사람들을 피해 숨어들어간 오두막 우리에서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언어를 습득한다. 불, 우유, 빵, 땔감 같은 단어를 먼저 배우고 이어 아주좋은, 사랑하는, 불행한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도 습득한다.
괴물은 이어 우연히 습득한 <실낙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을 읽으며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체득한다.
괴물에서 나는 ‘AI’의 향기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 AI가 생각 나는 것은 이때문이다. 괴물이 경험을 축적하고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AI의 ‘딥러닝’과 닮았다. 딥러닝이란 컴퓨터가 스스로 외부데이터를 조합하고 분석해 학습하는 기술이다. 많은 데이터를 분류해서 같은 집합끼리 묶고 상하의 관계를 파악한다. 학습자료의 양이 많으면 많을 수록 학습단계가 세분화될 수록 성능이 좋아진다.
1996년 체스세계챔피언을 이겼던 딥블루는 프로그래밍에 명문화된 규칙에 따라 작동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을 이긴 딥마인드의 알파고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학습함으로써 바둑 세계챔피언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23년 3월 오픈 AI가 챗GPT 3.0을 세상에 내놨고 1년 반도 안된 2024년 5월 챗GPT 4.O가 출시됐다.
소설<프랑켄슈타인>
급속한 A.I기술의 진보에 세계는 두머와 부머로 나뉘고 있다.
두머(doomer)란 ‘불행할 결말’이라는 뜻의 둠(doom)에서 파생된 용어로 부정론자를 뜻한다. 두머는 AI기술개발의 속도조절과 빠른 규제책 마련을 요구한다. 대표적이 두머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있다. 그는 2014년 한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AI와 함께 악마를 소환하고 있다”고 했고, 2024년 또다른 심포지움에서는 “AI가 인류를 파괴할 가능성이 10~20%정도”라고 경고했다.
두머는 ‘종이클립이론’으로 AI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닉 보스트롬 옥스퍼드대 교수는 논문을 통해 ‘종이클립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라’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프로그래밍된 AI는 효율 극대화만 생각하다가 이를 위해 인간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이클립으로 만든 오픈 AI로고는 챗GPT에 대한 경고 밈으로 회자됐다.
반면 부머(boomer)는 ‘호황’을 뜻하는 붐(boom)에서 파생된 용어로 낙관론자를 의미한다. 부머는 기술개발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는 사람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도구로 인류에 번영과 부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칫 기술 개발을 늦추면 경쟁사와 경쟁국가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경고도 한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부머쪽에 서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AI뿐 아니다. 정보통신 기술(ICT)의 빠른 발전은 공포감과 적대감, 예찬과 낙관으로 나뉘어왔다. 전자는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라고 부르는데 기술을 뜻하는 테크노와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의 합성어다. 여기서 파생돼 기술을 혐오하는 사람을 테크노포브(technophobe)라고 한다. 후자는 테크노필리아(technophilia)다. 기술을 뜻하는 테크노에 철학,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philos)를 합쳤다. 신기술에 열광하는 사람을 테크노파일(technophile)라 부른다.
프랑켄슈타인은 테크노필리아를 추종하는 테크노파일이었다. 하지만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창조물을 외면하고 창조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창조물은 괴물로 변해갔다.
프랑켄슈타인의 독백이 던지는 질문
“인류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능력을 썩히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자질을 통합해서 인간의 창조를 꿈꿨고 그걸 실행에 옮겼어. 내 연구성과를 생각하며 기쁨에 타올랐지.하지만 지금 나는 얼마나 몰락했는가”
프랑켄슈타인의 독백은 무분별한 테크노필리아에 대한 경종으로 들린다. 기술은 개발도 중요하지만 운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은 비록 그 자체로는 선했을 지라도 자칫 한눈파는 사이 통제의 범위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일지 모른다.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라고 말했다.
정해진 미래인 AI시대, 그 주인공은 기술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일 수 있다. 1818년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은 200여년이 지나 AI시대를 맞이하는 2024년의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