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예고된 기후위기…비용 따지는 사이, 여름은 점점 더워진다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1994년 7월9일, TV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그해 여름 유난했던 찜통더위다. 1994년 7월은 한 달 중 20일이나 폭염이 지속됐고, 에어컨 가동으로 전력난이 일어난 해다. 바로 그때부터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에어컨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해 3월에는 기후변화협약도 발효됐다. 기후변화가 외부 요인이 아닌 인간에서 비롯됨을 인정하고, 파국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약속이었다. 30년이 지난 2024년 7월, 뉴스를 보면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일상이 되었다. 세계 곳곳은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매해 맞고 있다.

1988년 미국 의회에서 기후학자 제임스 핸슨이 온실효과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란 단어가 우리 삶에 처음 들어온 순간이다. 동시에 핸슨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파국을 막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1.5도 상한선’을 제시했다.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 대비 1.5도를 넘어서면서 빙하가 녹으면 빠른 속도로 기후 생태계가 붕괴될 거란 경고였다. 우리는 30년 전에 알았고 예방할 수 있었던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렸다. 하지만 분위기는 탄소중립 정책에 우호적이지 않다. 친환경 정책으로 구리와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그로 인한 그린인플레이션 경험은 극단적 탄소 저감정책을 대한 거부감을 키워왔다. 화석연료 발전의 대체재로서 태양광·풍력의 원가는 결코 싸지 않다.

6월27일 미국 대선 후보인 바이든·트럼프의 첫 TV 토론이 있었다. 트럼프가 우세를 보였다는 토론 결과가 나오면서 태양광·풍력 등 대체에너지 기업 주가는 급락했고 석유 기업 주가는 올랐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공공연하게 기후위기 음모론을 내비쳤다. 미국은 에너지 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저탄소 정책은 인기가 없다. 기후협약을 주도해 온 유럽연합(EU)의 정치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우파의 약진은 친환경 정책의 조정을 의미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집중해온 기존 정책의 전환이다. 2035년부터 시작될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정책도 재검토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늦어도 21세기 말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전기차, 대체에너지, 탄소 포집 등 다양한 기후변화 관련 기술이 상용화돼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2015년 11월 파리기후회의에 앞서, 당시 영국 중앙은행 총재였던 마카 카니는 기온이 2도 낮은 세상을 만들려다 석유·천연가스 기업들의 가치가 폭락하거나 파산해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석유나 천연가스 기업은 건재하다. 증기기관이 도입된 19세기에도 일반인들의 주된 연료는 석탄이 아닌 장작이었다고 한다. 에너지 전환 속에서 전통 에너지와의 병존이 불가피하다. 아직 재생에너지의 기술·인프라 수준이 화석연료를 대체하기에 부족한 과도기적 상황임을 고려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을 향한 행보가 멈추지 않겠지만 정치적 지형에 따라 속도는 늦춰질 수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과 원자재 공급난, 전쟁 등을 경험하면서 ESG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은 커져왔다. 미 공화당은 연기금과 운용사가 ESG 요소를 반영해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노동부 규칙을 개정하려 했지만, 바이든이 첫 거부권 행사로 이를 막았다. 정량적 등급의 모호함으로 신뢰도 문제가 제기되면서 S&P글로벌은 ESG 등급 평가를 중단했다.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에 따라 투자 방침을 결정하겠다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랠리 핑크의 입장도 달라졌다. 기업의 ESG에 대한 비재무적 요소를 투자 판단에 적용하겠지만, 지나치게 정치화된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파리기후협정이 어렵게 성사됐지만, 트럼프는 협정 발효 9개월 뒤 탈퇴했다. 바이든은 취임과 동시에 협정에 재가입했다. 2024년 11월 미국의 대선은 어떻게 될까? 현재까지 지지율을 보면 트럼프가 우세하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파리협정에서 다시 탈퇴할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는 기후위기를 경고했고, 우리는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었다. 노력했다면 기후위기의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은 인류의 모두는 이제 뜨거운 결과와 맞닿아 있다. 7월의 폭염이 두려울 뿐이다.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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