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찾은 인천 송도국제캠핑장에서는 박스 형태에 커다란 눈과 더듬이를 장착한 귀여운 외형의 로봇이 캠핑장 곳곳을 다니고 있었다. 카라반이 줄지어 늘어선 야트막한 언덕을 가뿐히 올라가고 풀밭에서도 매끄럽게 주행했다. 흙길 위에 깐 야자매트를 지나갈 때는 고르지 않은 바닥 탓에 뒤뚱거리기도 했지만 곧 균형을 잡고 안정된 속도로 움직였다. 캠핑장에서 장작, 생수 등을 배달하는 실외 자율주행 로봇 ‘개미’다.
3만2000㎡(약 9680평) 규모의 이 캠핑장은 지난해 11월부터 개미 4대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용객이 캠핑장 내 부착된 QR코드를 통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생필품을 주문하면 개미가 배달하는 방식이다. 캠핑장 관계자는 “주말에는 로봇이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며 “로봇 도입으로 배송 서비스만을 위한 별도의 인력을 배치하지 않아도 되고, 로봇이 배달을 가니 손님들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차가운 도시의 배달 로봇, 캠핑장서 뜨거운 인기
캠핑장 관리사무소 1층 편의점 앞에는 개미 전용 충전 스테이션이 있다. 편의점 직원이 주문받은 장작 1망을 개미에 넣고 덮개를 닫자 “잠시 후에 로봇이 출발합니다”라는 음성과 함께 개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미의 상단 덮개를 열면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나는데 30㎏까지 적재할 수 있다고 한다.
최대 시속 15㎞에 사륜구동으로 움직이는 개미는 비포장도로나 야트막한 언덕을 안정적으로 주행하고, 멀리서 마주 오는 카트나 장애물이 보이면 방향을 틀어 피했다.
아이들이 “로봇이다”라고 외치며 달려오자 개미는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섰다. 가족과 자주 캠핑장을 찾는다는 김모씨는 “아이들이 다가가도 로봇이 피하거나 멈춰서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무거운 물이나 장작을 편하게 배달받을 수 있어 이곳에 올 때마다 이용한다”고 말했다.
개미는 로봇 전문기업 로보티즈가 개발한 실외 자율주행 로봇이다. 자율주행 로봇은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을 통해 스스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판단해 동작한다. 또 카메라와 초음파, 라이다(LiDAR) 등 센서를 통해 주변 장애물과 도로, 보행자 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분석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특히 실외 자율주행 로봇은 변화무쌍한 날씨와 지형, 교통 상황 등을 고려해 더 강력한 센서와 정교한 데이터 처리 능력, 내구성을 갖추고 있다.
로보티즈는 안전을 위해 개미가 카메라를 통해 보는 장면과 위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로보티즈 익스피리언스팀 이선영 팀장은 “실외에는 많은 변수가 있는데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로봇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안전을 위해 본사에 있는 관제부서에서 원격으로 제어한다”고 설명했다.
“놀라지 말아요” 법 개정 이후 거리로 나오는 로봇들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 등을 경험한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로봇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주행 로봇 시장 규모는 2022년 27억6000만달러(약 3조7384억원)에서 2027년 66억7000만달러(약 9조345억원), 2032년에는 197억8000만달러(약 26조7920억원)로 연평균 22.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실외 자율주행 로봇 활용처는 물류 및 배송, 청소, 보안, 방역, 농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실외 자율주행 로봇 업계는 지난해 11월 ‘지능형 로봇 개발 보급 촉진법’ 개정안 시행 이후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6개 업체 약 200대의 실외 자율주행 로봇이 로봇 보행 면허로 불리는 ‘실외이동로봇 운행안전인증’을 받았다. 그동안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실증 특례지구와 사유지에서만 한시적으로 볼 수 있었던 실외 자율주행 로봇을 앞으로는 다양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1월 국내 1호로 안전인증을 획득한 로보티즈는 5월부터 서울 강서구 마곡나루역 일대 카페·식당과 제휴해 개미를 활용한 무료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서울 양천구 내 공원에 재활용 자원 수거를 위한 개미 4대를 투입하는 시범사업도 연내 진행할 예정이다.
자율주행 로봇 서비스 기업 뉴빌리티는 이달 중 실외 자율주행 로봇 ‘뉴비’ 10대를 경기 성남시 판교역 인근과 서현동 일원에 투입해 로봇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자체 개발한 실외 자율주행 로봇 ‘딜리’를 배달의민족 앱과 연계해 낮은 비용의 로봇 배달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국내 실외 자율주행 로봇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정부는 지난 1월 실외 자율주행 로봇을 택배와 소화물 운송 수단에 포함하는 법령을 개정해 공포했지만, 관계부처와 업계에선 법령이 시행되는 내년 1월 전에 보다 구체적인 하위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4월 공원녹지법 시행령이 일부 개정돼 실외 자율주행 로봇의 공원 진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별 조례에 반영돼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공원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통행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실외 자율주행 로봇의 안전성과 관련된 보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안정인증을 받은 실외 자율주행 로봇은 손해배상 보험 가입이 의무화돼 있다. 보험 가입 주체는 제조사, 운영사 또는 사용 기업이 될 수 있지만, 여러 기업 간 계약으로 운영된다면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또 앞으로 거리에서 로봇을 자주 마주하게 될 시민들을 위해, 로봇에 대한 이해와 안전을 위한 교육 및 홍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실외 자율주행 로봇을 필요로 하는 업체에 정부 보조금 혜택이 있다면 초기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