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슬리포노믹스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상점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달러구트가 운영하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다. 백화점은 화려하고 고풍스런 5층짜리 목조건물이다. 사실상 도시의 랜드마크. 안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본 곳이 없다는 이 곳에는 각기 다른 장르의 꿈들이 각층에 비치돼 있다.
사람들은 잠들면 이곳을 찾아와 자신에 맞는 꿈을 산다. ‘몰디브에서 3박4일 휴가보내는 꿈’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범고래가 되는 꿈’ ‘부모님으로 일주일간 살아보는 꿈’ ‘난임부부의 세쌍둥이 태몽’…컬러꿈과 흑백꿈, 예지몽과 악몽, 자각몽까지 온갖 꿈들이 구비돼 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꿈은 무엇인가.
한국판 <해리포터> 혹은 <찰리와 초콜릿공장>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해리포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 혹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떠오르는 판타지소설이다. 꿈을 파는 백화점부터 털이 복슬복슬한 커다란 앞발을 가진 녹틸루카, 하늘을 나는 신발을 만드는 레프라혼 요정, 만년설산 오두막에 사는 새하얀 턱수염의 니콜라스도 나온다. ‘우리는 왜 꿈을 꾸는 것일까’. 어제와 오늘 사이의 신비로운 틈새를 메꾸는 꿈에 대한 이같은 작가적 호기심이 한국판 호그와트를 만들어냈다. 2020년 출간된 이 책은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잠든 뒤 이 백화점에서 꿈을 사야 비로소 꿈을 꾼다. 만약 꿈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깊이 잠들더라도 꿈은 꾸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아침이되면 자신들이 이 백화점에서 꿈을 샀다는 것을 깡그리 잊어버린다.
청년들의 꿈의 직장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페니가 입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백화점의 대표인 달러구트는 꿈제작자들에게서 꿈을 공급받아 사람들에게 그 꿈을 판다. 1층은 특별히 귀한 꿈만 고가로 소량판매한다. 2층 평범한 일상의 소확행 같은 보편적인 꿈을 판다. 3층은 SF, 판타지물같은 획기적이고 액티비티한 꿈, 4층은 사람과 동물의 낮잠용 꿈이다. 5층은 1~4층에서 팔다 남은 꿈을 마감폭탄세일로 판매한다.
특이한 것은 후불제인 판매방식이다. 사람들은 꿈을 꿔본뒤 만족을 느끼면 그제서야 꿈값을 지불한다. 꿈값은 그 꿈에서 느낀 감정으로 지급된다. 설렘, 자신감, 자부심, 성취감, 호기심, 허무함, 무기력함 등이다. 꿈 백화점도 고민거리는 있다. 사람들의 노쇼다. 꿈을 예약해놓고 찾아가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면 백화점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백화점 경영이 어려워지면 꿈 제작자들에게 꿈값을 지불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꿈산업이 붕괴될 수 있다.
꿈산업, 슬리포노믹스
꿈산업을 이르는 말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는 용어가 있다. 슬리퍼노믹스는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로 ‘좋은 잠’, ‘숙면’을 돕기 위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시장 또는 산업을 말한다. 2007년 뉴욕타임즈에 처음 등장했다.
슬리포노믹스를 주목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수면부족은 특정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인 문제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과다한 업무, 많은 카페인섭취, 취침전 스마트폰 사용, 밝은 조명 등은 잘 잘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로 인한 도파민 중독도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잠이 부족하면 단순히 컨디션이 저하되는 것을 넘어서 고혈압, 심혈관 질환, 당뇨병 등 만성질환과 비만, 우울증 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 이때문에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현대인들의 ‘수면 부족’을 ‘공중 보건 유행병’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수면의학회(AASM)와 수면연구회(SRS)는 건강 유지를 위해 성인은 7시간 이상의 수면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하지만 CDC에 따르면 미국 성인 3명 중 1명은 수면시간이 하루평균 7시간에 미치지 못했다. 수면부족은 노동생산성을 낮추고 있다. 미국 심리학회 APA PsycNet에 실린 ‘수면부족의 비용’ 논문을 보면 피로나 졸음으로 발생한 생산성 저하는 4.5~6%로, 노동인구 1인당 연간 2516달러의 생산성 손실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은 수면부족국가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51분으로 OECD회원국 평균(8시간27분)보다 30분이상 적었다. 보험연구원의 <수면부족의 사회경제적 손실>보고서를 보면 수면부족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국내총생산(GDP)대비 0.85~2.92%에 이른다.
수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수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침대, 배개, 이불 등 침구류 외 침실온도, 공기, 조명 등 환경요건, 디카피인 음료 등 식음료가 다양하게 발달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테이터가 접목되면서 수면상태를 분석하고 최적의 수면환경을 조성해 숙면을 돕는 슬립테크(Sleeptech)는 새로운 먹을거리로 주목받는다. 실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4년 CES에서는 링, 헤어밴드, 마스크, 안대 등 30여종의 웨어러블 기기가 선보이기도 했다.
페니가 사는 도시는 먼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수면에 관련된 상품을 팔며 발달해온 도시다. 잠옷과 수면양말은 물론이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진정시럽’, ‘심신 안정용 쿠키’, 꿀잠을 자게 해주는 ‘숙면 사탕’도 있다. 골목에는 이들에게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의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양파우유를 파는 푸드트럭이 즐비하다. 서점에는 <후불로 치르는 꿈값의 경제학>이나 <꿈 팔아서 내집 마련>같은 경제서적이 인기다. 거의 매일 ‘전량매진’행진을 하고 있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지역경제의 중심이다. 꿈을 납품하는 꿈제작자, 자금을 예치하는 지역은행도 꿈백화점에 기댄다. 슬리포노믹스의 생태계가 완벽히 이뤄진 ‘슬립시티’라 부를 만 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꿈꾸기
국민건강보험 공단에 따르면 국내 수면 장애 환자는 2002년 110만명으로 2018년(86만명)보다 28.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진료비는 1526억원에서 2851억원으로 86% 늘어났다. 수면트러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모두들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꿈 꿉시다!”
꿈제작자인 니콜라스는 제작자 정기총회에서 이같은 건배사를 외친다. 이 건배사는 어쩌면 저자가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당부의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