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을 둘러싸고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와 함께 뜨거운 주제가 있다. 바로 상법 개정이다.
주식시장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주장과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반박이 맞서고 있다. 상법 개정을 요구하는 일반주주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다. 국회에는 다수의 상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비상이 걸린 재계는 연일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정부에서는 부처 간 이음이 나오면서 혼선을 빚고 있다. 상법 개정 논란, 왜 이렇게 뜨거울까.
이사는 누구에 충실해야 하는가
논란의 상법 조항은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이다. 이 조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이사는 누구인가? 주식회사 이사란 회사를 대표해 사무를 처리하는 이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주식회사 주인은 주주다. 이사가 회사를 위해 내리는 결정은 모든 주주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상법 개정 찬성론자들의 시각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분할, 합병과 같은 자본적 거래가 그렇다. 분할 또는 합병 시 실질적으로 변동되는 것은 주주 구성과 그들의 주식 가치다. 즉 분할, 합병 과정에서 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 대부분은 지배주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특히 국내 합병의 90%는 계열사 간 합병이다. 따라서 이사가 지배주주에 유리하고 일반주주에 불리한 방향으로 분할이나 합병을 결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상법 개정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분할이나 합병 때마다 일반주주들이 피해를 봤다고 볼멘 목소리를 내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일반주주나 학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꾸준히 상법 개정 요구가 이어져 왔다.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런 요구가 본격화된 계기는 2020년 LG화학의 분할이다. LG화학은 2차전지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한 후 상장했다. 물적분할 이후 LG화학 주가가 떨어지자 소액주주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됐다며 반발했다.
최근 들어서는 두산그룹이 분할, 합병 등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상법 개정 논의에 불이 붙었다. ‘알짜기업’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에 붙이는 것이 골자였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한 합병비율 때문에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고, 총수 일가의 두산밥캣 지배력이 높아진다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은 합병을 무산시키기 위해 집단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 봇물···재계는 반발
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도 가세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 이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상법 개정안이 15건 발의됐다. 골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금투세 문제로 내놓을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상법 개정에 대해서는 증시 밸류업의 지름길이라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분할이나 합병을 통해 주주의 지분가치 등이 변동되지만 현행법상 이사는 그런 주주에게 충실할 의무가 없다. 분할, 합병 방식이나 주식 교환비율에 불만을 가진 일반주주들이 이사회 결정에 문제를 제기할 제도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현재 유일한 방법은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하는 것뿐이다.
재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주식시장 침체의 원흉 중 하나로 기업 지배구조가 지목되면서 어느 때보다 상법 개정 요구가 주목을 받고 있고, 정부 내에서도 여기에 동조하는 기류가 생겼기 때문이다.
경제단체들의 반대 논리는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이사는 회사와 법적인 위임 계약을 맺을 뿐 주주와는 직접적인 위임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주주들이 개정된 조항을 근거로 이사회에 대해 배임죄 고발 등을 남발하면서 사법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때문에 기업의 신속한 경영 판단이 지연되면서 경쟁력이 악화되면 일반주주에게도 손해라는 주장이다. 또 기업이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는 해외 사모펀드 등 경영권 공격 세력의 먹잇감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내놓는다.
재계는 상법과 국내 주식시장의 지지부진은 무관하다고 본다. 경제 8단체는 지난 11일 낸 공동성명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내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통한 대규모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유도, 상속세 등 불합리한 과세체계 개편, 기업 성장과 미래 신성장 동력 촉진 등을 통해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 매력도를 근원적으로 높여나가는 정책 지원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관건은 정부 입장
결국 상법 개정 여부의 관건은 정부다. 현 정부는 상법 개정에 미온적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주식시장 저평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밸류업을 추진하면서 기류가 달라지는 듯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2일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있게 반영하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여러 차례 상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이 개정 찬성은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기업의 경영 환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있어서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같은 날 “대주주의 이익도 침해하면 안 되고, 소액주주의 이익도 침해하면 안 된다. 결국 중장기적인 작업”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밝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상법 개정안에 대해선 기관별로 의견이 다 다르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며 “정부 내에서 논의하고 있는 사안인데 개별적으로 의견을 드리는 건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최상목 장관은 지난 9일 “조만간 정부 입장을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석 연휴 후 상법 개정 논란은 정치권, 재계,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