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론 대세 속 주말 사이 폐지론 고개
금투세법은 민주당 정부에서 여야 합의 통과
‘일관성·정체성 외면 유불리만 계산’ 비판
폐지 시 “윤 정부 부자감세 비판할 수 있나”
“앞으로 개혁 명분이나 동력 얻을 수 있나”
더불어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관련 입장 정리를 앞두고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지도부 사이에서 유예론이 대세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다시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당 정부 시절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금투세법의 유예를 넘어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당내에선 지도부가 당 정체성이나 일관성은 뒷전이고 정치적 유불리만 계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은 오는 4일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금투세 논의를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의총에서 논의를 거친 뒤 최종 결정은 지도부에 위임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당초 민주당 내에선 시행 유예론과 시행론이 엇갈리고 지도부는 유예론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공개 토론회에서도 두 주장을 두고 토론이 이뤄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29일 MBN에서 “다른 나라에 금투세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금은 하면 안 된다는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유예론에 무게를 실었다. 김민석·이언주 최고위원도 유예를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지도부 논의를 거친 후 폐지론이 불거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2일 통화에서 “폐지까지도 고민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최고위원들이 있고 당내에서도 폐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 대해 지난 주말 점검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여러 주장을 경청했다고 한다. 금투세 폐지 입장인 한 지도부 인사는 “이 대표에게 개인적으로 의견을 전달했다”면서도 “(어떤 방향이든) 대표가 결단하는 모양새가 좋다”고 말했다.
폐지론자들은 금투세 시행이나 유예가 주식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친이재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정성호 의원은 지난달 25일 MBC 라디오에서 “처음에는 유예 입장이었는데 최근 이 상황을 보니까 오히려 유예가 시장의 불안정성을 더 심화시키는 게 아닌가(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경에는 ‘개미 투자자’들의 반발이란 현실적 이유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투세 관련 정책 토론 후 김영환 의원의 ‘인버스(주식가치가 떨어질수록 이득이 나는 방식) 투자 권유’ 발언 논란 등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대표의 대선 도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 인사는 통화에서 “금투세가 ‘재명세’로 규정이 되고 앞으로 주식시장이 침체가 되면 그 모든 게 다 민주당 책임으로 오게 될 텐데 그거에 대한 부담도 우리가 솔직히 생각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 유예를 하면 추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금투세 이슈가 재점화할 수 있어 이참에 아예 폐지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여야 합의로 국회 문턱을 넘었고, 금투세를 낼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상위 1% 안팎의 고액투자자들이어서 폐지 시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당의 일관성과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금투세 설계자인 최운열 전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금투세 폐지를 하려면 오랜 기간 동안의 연구와 검토, 성찰 등이 선행돼야 한다”며 “그런데 그런 과정이 전혀 없다. 정책의 불확실성만 키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만든 제도”라며 “실망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는 ‘보완 후 시행’ 등으로 금투세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기재위원들의 컨센서스는 ‘보완 후 시행’”이라며 “기재위 입장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또다른 기재위 관계자는 “금투세를 폐지하면 앞으로 민주당이 어떻게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를 비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부겸 전 총리는 CBS 라디오에서 “‘유예해 놓으면 또 유예 끝 무렵에 또 여야가 이런 싸움을 하게 될 거니까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그건 너무 성급하다”고 지적하며 “유예하며 보완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무엇보다도 금투세를 도입 했을 때 여야가 합의했다”며 “(폐지되면) 가장 큰 덕을 볼 사람들은 큰손들”이라고 주장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더 큰 이해관계의 반발에 부닥칠 일이 많을 텐데 (금투세) 유예를 넘어 폐지까지 갈 경우에 과연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안이건 간에 그 개혁의 명분이나 동력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과 지도부 말의 일관성, 신뢰는 확보될 수 있겠느냐”며 “그게 이 대표의 대권 전략에도 과연 도움이 되느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