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과 함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추진 중인 MBK파트너스(MBK)가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더 이상 올리지 않겠다고 9일 밝혔다. 과열 경쟁을 경고한 금융감독원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이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인상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또 다른 시세조종”이라며 “적대적 공개매수를 철회하라”고 밝혔다.
MBK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고려아연에 대한 주당 83만원 공개매수 가격은 적정가치 대비 충분히 높은 가격”이라며 “이미 기존 주주분들께 상당한 프리미엄을 제공해 드리는 가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MBK는 “추가적인 가격 경쟁으로 인해 고려아연의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고려아연 최 회장 측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 추가 인상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공개매수 가격은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려아연 측의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영풍·MBK는 고려아연 이사회가 자사주를 공개매수 형태로 매입하기로 한 것은 배임이기 때문에 이를 막아달라고 지난 2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날 영풍·MBK의 결정은 금감원의 경고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전날 과열 양상인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대해 엄정한 관리·감독과 불공정거래 조사 착수를 지시했다.
또한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 추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최 회장 측에 ‘가격 경쟁 포기’에 동참하라는 압박감을 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영풍·MBK와 고려아연 측의 공개매수 가격은 83만원으로 같지만 청약 종료 시점이 다르다. 영풍·MBK의 공개매수가 오는 14일 종료되는 반면 고려아연 측 자사주 공개매수는 오는 23일 끝난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가격을 추가로 올리지 않는다면 시간은 영풍·MBK 측에 유리하다.
고려아연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영풍·MBK의 발표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포기하지 않고 14일까지 공개매수를 유지해 투자자를 계속 유인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당사의 자사주 공개매수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이 14일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사정을 최대한 악용해 14일까지 MBK의 공개매수에 응하라는 유인 메시지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는 또 다른 시세조종 등 시장질서 교란 행위이며 회사의 적법하고 유효한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이번 사태를 촉발한 적대적 공개매수를 14일까지 유지할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적법하게 철회하라”며 “자사주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제기한 무의미한 가처분을 취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아연 측 입장에서는 오는 11일이 공개매수 기간 연장 없이 공개매수 가격을 변경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이날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가격 추가 인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양측의 연이은 공개매수 가격 상향으로 이번 경영권 분쟁은 투입 자금만 총 5조원이 넘는 머니게임으로 확전됐다. 시장에서는 영풍·MBK와 고려아연 중 어느 쪽이 이기든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