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스태그플레이션, 긴축 속도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다시 스태그플레이션, 긴축 속도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

오랫동안 잊힌 단어가 글로벌 경제를 배회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 국면이었던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은 문헌으로만 만나볼 수 있었을 따름인데,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선행성 지표들을 중심으로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전반에 선행성을 가지는 한국 경기선행지수가 두 달째 내리막이고, 9월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을 하회하면서 향후 경기수축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반면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고공권인 상황에서 국내외 시장금리는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

경기둔화와 높은 물가 사이의 연결고리는 비교적 명확하다. 연방준비제도 파월 의장이 지난주 미국 의회에서 발언한 것처럼 공급망 교란에 따른 생산차질이 그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조업 중단이 공급망 교란의 주된 내용이었다면, 요즘은 에너지 수급과 관련한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전력난에 따른 공장 가동 중단은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난달 독일의 반도체 생산업체 인피니온의 정전 사태로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더욱 심화되기도 했다. 최근의 전력난은 탄소중립 사회로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치르고 있는 비용으로 볼 수도 있다.

경기 둔화와 높은 물가 사이의 인과관계는 공급 충격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틀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지만, 금리 상승은 좀 더 복잡한 이슈이다. 물가 상승을 반영해 금리가 올라야 한다는 논리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생길 때 금리도 상승하곤 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경우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수요에 있기 때문이다. 금리라는 건 돈의 가치인데, 경기가 좋을 때 돈에 대한 수요, 특히 기업의 투자 수요는 늘어나게 된다. 경기가 좋다는 건 실물경제에서도 수요가 왕성하다는 의미이고, 수요가 좋으니 물가(재화와 용역의 종합적인 가격)는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 또한 수요가 너무 강해 물가가 과도하게 오르면, 중앙은행은 과잉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된다.

반대로 스태그플레이션은 공급 충격에 따른 비용 증가로 물가가 상승한다. 수요 증가가 아닌 비용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줄어들면서 경기는 침체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금리가 올라갈 수 있을까? 중앙은행은 단지 물가가 높다는 이유로 긴축정책을 쓰는 게 타당할까?

1970년대의 하이퍼 인플레이션(경기침체가 동반된 스태그플레이션)에 종지부를 찍었던 건 연방준비제도의 강력한 긴축정책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1979년 연방준비제도 수장에 오른 폴 볼커는 미국의 기준금리를 20%까지 인상시키면서 고물가 시대를 종결시켰다. 외견상 스태그플레이션을 강력한 긴축으로 끝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1970년대와 요즘 상황은 다르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경험하면서 공급 측면에서의 비용 증가가 나타났다는 점은 요즘과 비슷한 1970년대의 특징이지만, 결정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률에서 차이가 크다. 1970년대는 대공황 이후 1960년대까지 이어졌던 ‘진보의 시대’의 연장선이었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존재했고,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률은 2차 대전 이후 최고치였다.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가져왔고, 이를 반영해 노동자들은 임금을 올리고, 이는 또다시 물가를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유가 급등이라는 비용 상승과 임금 상승이라는 수요 증대 요인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구성 조합이었다. 이 경우 긴축정책은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다.

최근 시장은 경기둔화와 긴축 우려 두 가지 리스크에 가위 눌렸다. 경기둔화에 대한 걱정은 타당해 보이지만, 동시에 긴축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났던 자산시장의 장기 강세는 저금리에 기인한 바가 크다. 중앙은행가들이 매파라는 오해가 불식되면서 주식시장도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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