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된 갯벌, ‘블루카본’ 인정받으려면읽음

안광호 기자

해양생태계의 위기 (2)

IPCC서 탄소흡수·저장력 승인 땐

‘2050 탄소중립 목표’에 포함 가능

[주간경향] 갯벌은 풍요의 상징이다. 바다와 육지가 접경한 땅이자 다양한 생물이 살아 숨 쉬는 수산자원의 보고(寶庫)다. 연안 침식이나 재해 피해를 줄이면서 바다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역할도 한다. 국내 갯벌은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면적은 줄었지만, 최근 들어 갯벌의 가치와 의미를 살리기 위한 민·관의 다양한 노력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블루카본’에 포함되도록 하는 것이다. 갯벌은 월등한 탄소흡수(저장) 능력이 국내 연구진을 통해 입증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국제적인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고 있다. 갯벌의 블루카본 인정은 효율적인 ‘탄소감축원 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양수산부와 해양환경공단이 올해 실시한 ‘갯벌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충남 서산 ‘가로림만의 일몰’(김홍열). 해양수산부 제공

해양수산부와 해양환경공단이 올해 실시한 ‘갯벌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충남 서산 ‘가로림만의 일몰’(김홍열). 해양수산부 제공

한국 갯벌의 우수성

한국 갯벌의 총면적은 국토 대비 2.5%인 2482㎢다. 유럽 북해, 미국 동해, 캐나다 동해, 아마존 하구 등과 함께 세계 5대 갯벌에 속한다. 갯벌은 식물이 살지 않는 갯벌(비식생)과 갈대와 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사는 갯벌(염습지)로 구분되는데, 한국 갯벌의 98%는 비식생 갯벌이다.

국내 갯벌에는 모두 1000여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한다. 세계자연유산인 유럽 북해 와덴해 갯벌(400여종)보다 생물다양성이 우수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7월 서천, 고창, 신안, 보성-순천 갯벌 등 한국 서남해의 4개 갯벌을 국내 15번째 세계유산이자, 2번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2007년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14년 만이다. 생물다양성 보전과 서식,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 등 보편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경제적 가치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합동으로 조사한 갯벌의 공급(조개·굴·낙지 등), 조절(오염정화 등), 문화(갯벌체험 등) 등 인간이 갯벌 생태계로부터 얻는 서비스 가치(혜택)는 연간 17조8121억원(2020년 기준)에 달했다. 예컨대 조절서비스 가치는 오염정화(14조원)와 재해저감(2조1414억원) 등 16조3786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산정됐다. 다만 면적은 과거 대규모 간척 등으로 인해 크게 줄었다. 국내 갯벌 면적은 1987년 3204㎢에서 2018년 2482㎢로 30년 사이에 약 23% 감소했다.

갯벌은 특히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인 탄소흡수원으로 주목받는다. 지난해 서울대 김종성 교수 연구팀이 조사·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내 갯벌은 약 1300만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으며, 연간 최소 26만t에서 최대 49만t(연간 최대 자동차 20만대 분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최대치 기준으로 30년 된 소나무 약 7340만그루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과 비슷하다.

하지만 갯벌은 (온실가스 배출·흡수량의 국제적 기준이 되는) 현행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지침에서 해양 부문 탄소흡수원으로 인정하는 블루카본에 포함돼 있지 않다. 블루카본은 맹그로브숲(열대나 아열대 지역의 갯벌이나 하구의 소금기 있는 짠물에서 자라는 식물집단), 염습지, 잘피림(바닷물에서 꽃을 피우는 거머리말과 새우말 등 현화식물의 군락지) 등 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의미한다. 열대우림과 침엽수림 같은 그린카본에 비해 면적은 작지만 조성 비용이 적게 들고 탄소 흡수량은 5배, 흡수 속도는 50배가량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IPCC가 공식적인 탄소 감축원으로 인정했다.

IPCC는 해당 흡수원이 탄소를 흡수 또는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과학적으로 규명됐는지에 따라 블루카본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염습지의 경우 국제적으로 2000년대 초 관련 연구결과가 공개된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0년 IPCC 전문가회의 안건으로 채택된 데 이어 2011년부터 염습지의 블루카본 인정을 위한 IPCC TF팀이 운영됐고, 2013년 10월 최종적으로 승인받았다. 해수부 관계자는 “맹그로브와 염습지, 잘피림의 탄소흡수력에 관한 국제사회의 연구결과가 활발하고 의제화가 충분히 진행되면서 2013년 IPCC의 연안습지 보충지침 개정 당시 블루카본으로 최종 인정받게 됐다. 반면 비식생 갯벌은 2013년 지침 개정 당시 탄소흡수력에 대한 과학적 증명, 연구자료 축적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블루카본 탄소흡수 모식도. 염습지·맹그로브·잘피림은 IPCC가 규정한 탄소흡수계수를 표시한 것이며, 비식생 갯벌은 국내 연구팀이 분석한 탄소흡수계수를 표시한 것이다. 염습지는 면적 1ha당 연간 0.91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비식생 갯벌은 같은 기준 0.20~0.54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해양수산부 제공

주요 블루카본 탄소흡수 모식도. 염습지·맹그로브·잘피림은 IPCC가 규정한 탄소흡수계수를 표시한 것이며, 비식생 갯벌은 국내 연구팀이 분석한 탄소흡수계수를 표시한 것이다. 염습지는 면적 1ha당 연간 0.91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비식생 갯벌은 같은 기준 0.20~0.54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해양수산부 제공

‘블루카본’ 인정받으면

갯벌이 블루카본으로 인정받으면 달라지는 것은 뭘까. 우선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탄소흡수원을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유엔(UN)에 제출하는 ‘국가 온실가스 통계(인벤토리) 활용 감축 수단’으로 갯벌을 추가할 수 있다는 게 해수부의 설명이다.

비식생 갯벌의 탄소흡수력 연구에서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는 점에서 향후 국제사회의 블루카본 관련 논의나 갯벌의 공동연구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서울대 김종성 교수 연구팀은 해수부와 해양환경공단의 지원을 받아 4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해 비식생 갯벌의 탄소흡수 메커니즘 및 흡수량 등을 세계 최초로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 조사연구결과는 지난해 7월 국제저명학술지인 ‘종합환경과학회지’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전국 연안에 형성된 갯벌 20곳에서 채취한 퇴적물을 대상으로 총유기탄소량과 유기탄소 침적률을 조사했다. 또 인공위성 촬영 자료를 활용한 원격탐사 기법을 통해 전국 연안습지 내 블루카본과 온실가스 흡수량도 평가했다. 연구는 그간 국제사회에서 연안습지 중 블루카본으로 주목받지 못한 갯벌의 이산화탄소 흡수 잠재량을 국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조사한 세계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해수부는 설명했다. 김종성 교수는 “염습지의 블루카본 인정 사례에 비춰 단기간에 비식생 갯벌이 블루카본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갯벌의 탄소흡수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연구활동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 연구자료 축적에 5~6년, IPCC 가이드라인 개정에 2~3년 등 7~9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블루카본으로 인정받기 위한 효율적인 방안을 찾고 당장 실행하는 것이 급선무다. 블루카본이 IPCC가 인정하는 지침 내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갯벌의 탄소흡수력에 대한 연구자료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블루카본 확대와 관련한 국제적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해수부 관계자는 “비식생 갯벌 등 신규 해양 탄소흡수원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탄소의 장기간 격리 여부와 규모에 대한 정확한 평가, 탄소흡수 프로세스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제학술지에 이러한 연구결과가 계속 발표될 수 있도록 하고, 매년 블루카본 국제포럼의 국내 개최를 지원하고 있다.

국제사회와의 공조도 필요하다. 갯벌 복원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와덴해를 참고할 만하다. 와덴해는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등 3개국에 걸쳐 분포된 해안으로, 한국 갯벌 면적의 약 3배인 7500㎢에 달한다. 이들 3개 국가는 1982년 와덴해 갯벌보전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이후 와덴해 전체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공동으로 관리해오고 있다. 현재 연간 생태관광객이 1000만명 안팎에 달하고. 관광수입만 7~8조원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우리 정부도 2009년 와덴해 3국과 갯벌보전 업무협약(MOU)을 맺는 등 공조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실질적인 교류는 부족했다”며 “와덴해의 사례처럼 우리도 남·북·중 등 3개 국가가 공유하는 서해(황해) 갯벌을 공동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권고에 따라 갯벌의 유산구역 확대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7월 한국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신안 갯벌 외에는 대규모의 지형학적·생태학적 과정을 나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범위가 넓지 못하다”는 의견과 함께 2025년까지 유산구역 확대와 연속 유산의 구성요소 간 통합관리체계 구축 등을 권고했다. 정부는 이에 2025년까지 9개 갯벌을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의 갯벌 2단계 확대’ 등재를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2단계 등재를 위한 기초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등재 신청서를 작성해 2023년까지 유네스코에 제출할 예정이다.

염습지 등 갯벌을 복원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올해부터 신규사업으로 추진하는 갯벌 식생 복원사업은 갈대, 칠면초 등 염생식물 군락지를 갯벌 상부에 복원해 갯벌의 생태적 기능을 회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해수부가 지원한 ‘블루카본 정보시스템 구축 및 평가관리기술 개발연구’(2017~2021)에 따르면 1㎢당 비식생 갯벌은 연간 약 198t, 염습지는 약 334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염생식물 군락 복원 시 갯벌의 탄소 흡수력이 식생 복원 이전 대비 70% 정도 향상되는 것이다. 올해 사업 대상지는 전남 신안군 북부권역,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충남 태안군 근소만, 충남 서산시 가로림만 등 4곳이다. 예컨대 전남 신안군 북부권역의 경우 서식이 유리한 해홍나물과 잘피 등을 식재한다. 사업 대상지 인근에 있는 염생식물 자생지에서 식재에 필요한 종자를 확보해 비용을 절감하고, 인근 방조제를 따라 어부림(수산자원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바다 인근의 나무숲)을 만들어 대상지를 찾는 관광객에게 생태친화적 탐방로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올해는 갯벌 생태·복원 전문가 자문을 통해 선정대상지별 특성을 고려한 기본·실시계획 수립 등을 우선 추진한다. 이번에 선정된 갯벌 식생 복원사업은 4년간 총 600억원(한곳당 1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이를 통해 2050년까지 660㎢의 갯벌 염생식물 군락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신규 블루카본으로 국제사회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해양 퇴적물, 해조류, 패각, 플랑크톤 등의 연구도 올해부터 시작했다. 아울러 국내 전체 갯벌의 환경·생태·오염현황 등에 대한 포괄적 실태조사를 5년 주기로 실시한다.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갯벌을 ‘최우수·우수·보통·주의·관리’의 5단계 등급으로 구분해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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