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가면 꼭 들르는 커피가게가 있다. 지금이야 서울에서도 맛볼 수 있는 커피브랜드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강릉 한구석인 연곡에 가야 맛볼 수 있었다. 커피 장인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맛을 접한 후부터 커피가 내 삶에 들어왔고, 이제 카페인 수혈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처음 접했던 커피 원두는 ‘파나마 게이샤’. 설탕과 프림이 커피와 범벅이 된 믹스 커피와 다른 향과 산미가 가득했다. 너무 독특한 맛에 반해, 당시 바리스타 장인에게 물었다. 일본에 있다 오셔서 ‘게이샤’라는 명칭을 붙이신 건가요? 답변은 뜻밖이었다. ‘게이샤’는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 게이샤라는 마을에서 1930년대 발견된 야생종이고, 이 게이샤가 파나마로 넘어와 재배됐고, 그 원두가 ‘파나마 게이샤’다.
에티오피아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게이샤가 파나마에서 완성되었듯이, 커피 재배지는 에티오피아에서 나와 아라비아로, 파나마와 브라질로, 그리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로 퍼져 나갔다. 그중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70%에 육박하는 커피가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카다. 브라질은 아라비카 커피의 주된 생산국으로, 2024년 들어 브라질 가뭄이 심각해지자 아라비카 커피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가뭄으로 브라질의 커피콩 가격이 급등하자, 스타벅스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커피콩 가격이 오른 만큼 스타벅스의 이윤 폭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피터 나바로의 베스트셀러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와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커피만이 아니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선물가격은 1년 만에 3배로 급등했다. 엘니뇨 현상으로 글로벌 카카오 공급이 급감한 결과다. 국내산 사과값도 금값이다. 사과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대로, “금리로 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가 가져온 농산물 가격 급등, 바로 기후인플레이션은 전 세계적이며 구조적이다.
유가도 불안한다. 달러가 강하면 유가는 약하다. 달러로 원유를 결제하는 ‘페트로 달러 시스템’에서 달러와 유가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달러 강세와 유가 강세가 동시에 오면 중동지역의 전쟁불안이 커지거나 글로벌 경제 어느 한구석에 문제가 드러날 때이다. 달러가 강해지며 원화 약세의 부작용이 온전히 드러나는 시기다. 원화약세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은 내수 경기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낮추면 원화가 더 약해지니, 기준금리를 낮추지도 못한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과 자영업 붕괴를 고려하면, 금리를 낮춰야 하는데 한국은행이 행동에 나서기 힘들다. 한국은행은 정부에는 독립적일 수 있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정책결정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끈적끈적한 인플레이션 위협이 재소환되면서 미국 연준의 연내 3~5차례 금리 인하 전망은 급격히 힘을 잃고 있다. 경기침체 없이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면서 연준이 금리를 내릴 거란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 오히려 과거 연준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급하게 내렸던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는 이가 늘고 있다. 결국 경기가 흔들리면 금리가 내려오는 시나리오다.
문제는 비용이다. 커피도 사과도 비싸고, 금리는 더더욱 가계와 기업을 압박한다. 수출이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지만 내수 부진은 갈수록 나락이다. 대기업들은 비상경영에 나서고 유통업체들의 정리해고 뉴스도 지면을 장식한다. 전 세계 성장을 이끌고 있는 미국 소비 수요는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속 여부는 확신하기 힘들다. 약한 고리도 눈에 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의 공실률 증가에서 드러나듯이 상업용 부동산 침체는 이제 구조적이다. 코로나19 이후 바뀐 오피스 근무 환경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해법은 높은 금리가 낮아지거나 금리 이상의 성장이 지속되면 된다. 강한 성장만이 인플레이션 비용 압박을 이겨낼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변화를 이끌 거란 기대가 M7으로 대표되는 미국 성장주 상승으로 연결되어 왔다. 작년 하반기에 확산된 2024년 3~5차례의 금리 인하 기대도 힘을 보탰다. 아쉽게도 AI로 대표되는 신산업이 성장을 이끌 거란 기대는 이미 주가에 상당 폭 반영되어 왔다.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다면, 성장주들의 높은 밸류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 주식의 위험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주식 투자매력은 크게 감소했다. “달콤한 파티와 숙취는 고통스러운 두통을 낳는다”는 월가의 오래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파티는 끝나가고 있고, 이제 시장은 우리에게 청구서를 내놓고 있는 듯하다. 파티와 숙취에도 우리는 개운한 아침을 기대했지만 두통은 이제 시작이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산미가 강한 커피 한 잔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