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 것이지만, 당신 것이 아니에요(I’m yours and I’m not yours).” 10년 전에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인공지능(AI) 영화 <그녀(Her)>의 한 장면이다.
AI ‘사만다’가 주인공 테오도르에게 한, 기계를 넘어서는 소름 돋는 그 대사이다. 주인공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 말하고 적응하고 진화하는 운영체제 속에 여성 정체성을 가진 AI 사만다를 만든 후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그녀(Her)는 인간과 같은 감성과 감정을 표출하면서 주인공만큼이나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그런 AI의 세상이 10년 전엔 영화 속 이야기였지만, 2022년 오픈AI에서 개발한 생성 AI ‘챗(Chat) GPT’가 세상에 나오면서 현실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얼마 전 어느 글로벌 컨설팅그룹이 전 세계 20개 이상 산업을 대표하는 107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CEO의 58%가 ‘생성형 AI’를 업무자동화 부문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성형 AI는 사용자의 요청에 대응해 텍스트, 이미지 등을 생성할 수 있는 AI로, 단순히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진화된 AI이다. 특히 CEO들이 생성형 AI 도입으로 기대하는 것은 효율성 및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이 56%로 가장 많았다. 또한 48%의 CEO들은 향후 생성형 AI를 도입할 계획을 밝혀 사실상 AI는 전 세계적으로 산업과 기업에 단순한 Her(그녀)가 아닌 새로운 Hero(영웅)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영화 <그녀(Her)>에서처럼 도덕적인 이슈도 걱정이지만, AI로 인해 발생할 산업과 기업에서의 업무상 변화다. 당장 사람을 대체하는 AI가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본격화되고 있다. 실제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의 한 증권회사에서 AI가 작성한 리포트가 발표되어 애널리스트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와 업무효율화라는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 사실 이번 AI가 작성한 리포트는 증권사 입장에서 아주 신중하게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내 기업이 아닌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분석사인 애널리스트의 감수, 즉 인간이 최종적으로 점검했다는 점도 밝혔다. 그리고 가장 주목할 것은 투자의견, 실적 추정, 목표주가와 같은 미래 예측적 견해는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AI모델이 초기 단계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AI의 등장으로 일자리 대체와 업무효율화 간의 논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AI리포트에서는 몇 가지 장점도 보인다. 우선 자료 작성에 5시간 정도 걸릴 일을 15분 만에 뚝딱 해냈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지지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여기에 데이터의 정밀도, 인간이 빠트릴 수 있는 참고자료 및 인용 등을 쉽고 빠르게 했다. 무엇보다 리포트의 질에 대한 평가를 떠나 애널리스트의 단순작업을 최소화시켜줄 수 있는 업무효율화의 가능성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많고 갈 길은 멀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장’이라는 거대한 인간심리의 집합체의 특성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존하는 호모사피엔스들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난제 중의 난제다. 과거 주식시장엔 시스템 트레이딩, 알고리즘 트레이딩 등 컴퓨터를 이용해 주가를 예측하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방식이어서 예측력이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다. 최근엔 대규모 데이터와 패턴을 학습하는, 딥러닝 방식의 ‘로보 어드바이저’(Robo Advisor)라는 진일보된 솔루션이 시장에 나왔지만 수익률 등에서 인간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계적인 업무가 아닌 변화무쌍한 인간의 심리가 깊게 내재된 주식시장, 채권시장, 금융시장에서 과연 그녀(Her)는 새로운 시대의 영웅(Hero)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