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미뤄진 저축은행 건전성 규제…정부 대출 관리 ‘오락가락’

윤지원 기자

다중채무자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

단계적 상향으로…추가 대출 여력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대출을 조이기 위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저축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가 1년6개월 뒤로 돌연 미뤄졌다. 정부는 자영업자·소상공인·서민 등 금융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감안해 규제를 늦추기로 했다는 입장이지만, 당국의 고위험 대출 관리 방침에 일관성이 떨어져 시장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8일 저축은행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 상향 내용이 담긴 ‘상호저축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안을 변경 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5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고위험 대출을 줄이기 위해 저축은행 충당금 적립을 높이는 내용이다.

대손충당금이란 금융기관이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대출채권에 대비해 수익의 일부를 쌓아두는 것으로, 충당금 적립액이 커질수록 은행은 대출을 억제하거나 한도를 줄이게 된다. 당초 일정은 7월 대출분부터 시행돼 9월 충당금 적립분부터 상향된 기준이 적용될 계획이었으나, 이번 개정안 변경 예고로 2026년 1월 시행으로 1년6개월 미뤄지게 됐다. 이에 따라 대손충당금 적립은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9월부터 저축은행은 다중채무자 대상 가계대출에 대해 20∼30%의 대손충당금을 추가 적립해야 한다.

업계선 “본질 개선 안 돼”

당장 9월부터 최대 50% 늘려야 했던 원안에 비해 충당금 적립 부담이 완화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축은행들은 대출을 더 내줄 여력이 생긴다.

당국은 저축은행의 주요 고객인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에 대한 자금 지원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일정을 연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금융위는 “최근 저축은행의 리스크 관리 강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건전성 관리 노력에 따른 대손충당금 부담 등으로 서민금융 공급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공급이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다중채무자 가계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 상향을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났을 가능성은 있다. 저축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신규 취급액도 2021년 21조70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6조8000억원까지 줄었다. 불법 사금융 피해를 호소한 신고·상담 접수 건은 2021년 9238건에서 지난해 1만2884건으로 늘었다.

다만 이는 최근 당국의 대출규제 강화 흐름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가계대출 관리에는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충당금 적립을 늦춰달라고 저축은행업계가 요구해 오긴 했지만, 7월 이미 시행된 이후 갑자기 반영 시점을 늦춘 것”이라며 “그러나 금융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몰리는 건 고정된 최고금리 탓이기에 본질은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은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라 대출 금리가 연 최고 20%로 정해져 있는데, 고금리 속에 조달비용이 커지다 보니 저축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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