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미래, 자율주행에 달렸다

주영재 기자

“저도 지금 전기차를 쓰고 있는데 만족도가 좋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좋습니다. 기술의 완성도가 중형차랑 비교가 안 돼요. 스포츠카 맛도 나고, 크루즈 기능을 켜놓으면 피로도 없어요. 알아서 속도, 간격 등 안전 유지를 하니까. 오히려 편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가니 힐링이 되죠. 드디어 우리나라 완성차들이 사용자경험(UX)에 신경을 정말 많이 쓰기 시작했구나 느낍니다.”

지난 11월 25일 서울 모빌리티쇼 언론 공개회에서 만난 송세경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최근 전기차로 갈아탄 후 만족감을 높이 평가했다. 개인 취향이 크게 좌우하겠지만 전기차 이용자들은 대체로 엔진소음과 진동이 없는 안락한 승차감, 낮은 유지비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탄소 배출이 내연기관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은 중요하게 고려한다.

탄소중립 이슈와 맞물려 시장의 관심사는 전기차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2020년 기준 전기차 누적 판매량은 1000만대를 돌파했다. 10억대에 이르는 전체 자동차 수와 비교하면 1%의 점유율이지만 증가 속도가 빠르다. 2020년 전년에 비해 41% 늘었고, 2030년에는 2억3000만대로 점유율이 12%로 올라갈 전망이다. 도로 위에선 아직 비주류이지만 소비자의 관심은 한가득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가 지난 10월 28일 공개한 ‘2021 전기 자동차 소비자 평가’ 조사결과에 따르면 다음 차로 전기차를 살 의향이 있는 사람은 42%에 달했다. 그중 의향이 ‘매우 높은’ 사람의 비율은 25%로 2년 전 11%에서 2배 이상 늘었다.

11월 2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1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차량을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2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1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차량을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한경쟁 막오른 전기차
전기차 신모델도 쏟아지고 있다. 2020년 전 세계적으로 약 370개의 전기차 모델이 출시됐다. 2019년 대비 40% 증가한 수치인데 2022년에는 500종 이상으로 전망된다. 최근 열린 서울 모빌리티쇼에서도 세계 최초 공개된 기아의 ‘니로’를 비롯한 20종의 신차 중 절반이 전기차였다. 주행거리와 충전시간 등 단점을 보완하면서 전기차에 냉소적인 이들의 마음을 바꾸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배터리 전기차의 평균 주행거리는 2015년 200㎞에서 2020년 약 350㎞로 증가했다. 최상위 전기차 모델은 휘발유차(약 650㎞)에 버금간다.

각국 정부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내연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판매 중지 시점을 공식 발표한 국가는 올해 4월 기준 22개국에 이른다.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은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신차 판매 전량을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무공해차량(전기차·수소전기차)으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2030년, 중국과 일본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만 장착한 차의 신규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한국은 아직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

자동차 회사들도 대세를 따라가고 있다. 볼보는 2030년부터 전기차만 판매하고, 포드는 2030년부터 유럽에서는 전기차만 판매할 예정이다. GM은 2035년까지 휘발유 승용차와 밴, SUV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현대차·기아도 2040년부터 내연차 생산을 중단한다. 김경원 현대차 연구개발전략팀장은 “전 세계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상황에서 전동화의 추세는 거스를 수 없다”면서 “현대차도 2045년까지 탄소 순배출을 제로로 한다는 목표 아래 제네시스의 경우 2025년부터 전동화 차량만 양산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첫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 기반해 출시한 아이오닉5를 비롯해 최근 공개된 전기차 신모델들은 거주공간으로서의 매력을 부각하고 있다. 핸들은 사라지거나 비행기 조종간처럼 간소하게 변한다. 최근 LA모터쇼에서 공개된 현대차의 대형 전기 SUV 콘셉트카 ‘세븐’의 경우 좌석을 이동시킬 수 있어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천장에 있는 ‘비전루프’는 디스플레이로 사용된다.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책을 보거나 영상을 촬영하는 등 집안에서 하던 행동을 차에서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동은 힘든 일이 아니라 쾌적하고, 즐거운 일이 된다.”(이청원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하지만 이런 미래상은 자율주행 상용화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모빌리티 변화의 한축에 자동차의 동력으로 전기를 쓰는 전동화가 있다면, 또 한축에 자율주행이 있다. 전동화로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기계공학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화학과 소재로 확대됐다면, 자율주행으로 자동차 산업은 하드웨어 산업에서 IT·서비스 산업으로 또 한 번 확장된다. 자동차는 동력의 전기화를 넘어 전자제품 그 자체가 된다.

전기차의 미래, 자율주행에 달렸다

모빌리티 경쟁은 AI 경쟁
자율주행이 가능하려면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해 제동·조향장치, 모터 등을 이용해 차량을 제어해야 한다. 로봇, 도심형 항공교통에도 자율주행의 요소 기술이 다 들어간다. 모빌리티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자동차 회사는 이동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자, 전동화에 쓰일 에너지 인프라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자율주행의 미래는 ‘TaaS (Transportation as a Service)’를 향하고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동 서비스를 강조한 ‘Mass(Mobility as a Service)’를 넘어 물류를 포함한 모든 이동을 서비스화하는 개념이다. 완전 자율주행으로 인간 운전자가 필요 없게 된다면 물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중대 교통사고의 94%는 사람의 실수로 일어난다. 완전 자율주행은 이런 실수를 90%까지 줄여 연간 약 1900억달러(약 223조원)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차량의 실내 공간 활용도 달라진다. 표정과 눈빛, 목소리 톤과 제스처를 통해 탑승자의 감정을 파악해 그에 맞는 자극(콘텐츠)을 줄 수 있다.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을 미리 프로그래밍해 대응할 순 없다. 상황 판단을 위해서는 인간 같은 인지와 판단 능력을 뜻하는 인공지능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신경망을 모방한 딥러닝 기반의 상황판단 시스템이 자율주행차의 핵심기술이다. 가령 컴퓨터가 고양이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을 고양이라고 판단할 때까지 오류를 줄이는 과정을 반복해 판단 능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인공지능 경쟁력이 중요해지면서 현대차의 경우 최근 개발자 콘퍼런스를 열고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 설계나 제작 능력도 강조된다. 김경원 팀장은 “공용화된 반도체를 쓸 경우 최근 같은 공급 부족 사태를 겪을 수 있고,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면서 “빅테크 기업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회사도 반도체 설계와 제작 능력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1980년대 자율주행 연구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를 막고, 최적의 운행으로 연비를 개선해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2020년대 초반이면 자율주행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자율주행 상용화는 기술적으로도, 법과 제도의 측면에서도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요즘 대다수 전문가들은 운전자가 필요 없는 완전자율주행(레벨5) 상용화 시점을 2030년 무렵으로 잡고 있다.

현재 자율주행 기술 개발의 선두 주자는 웨이모와 테슬라로 평가받는다. 웨이모는 2000만마일 이상을 주행하며 자율주행차를 시험하는 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부족한 주행거리를 보완하고 있다. 테슬라는 2014년부터 오토파일럿 모드에서 30억마일 이상을 주행했다. 기계가 운전을 책임지고, 인간은 특정 상황에서만 개입하는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차는 올해부터 상용화되고 있다. 혼다가 가장 먼저 레벨3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차에 적용했고, 현대차도 내년 최상위 모델에 레벨3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11월 29일 서울 마포구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 챌린지에 참가한 각 대학팀의 자율주행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공동취재

11월 29일 서울 마포구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 챌린지에 참가한 각 대학팀의 자율주행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공동취재

자율주행 상용화 막 올라
자율주행 상용화의 마중물이 될 시범사업은 이미 여러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과 LG유플러스 등은 경기도 시흥 배곧동에서 2020년 5월부터 올해 12월 말까지 ‘마중’이라는 이름의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 7대의 자율차를 제작해 전용 앱 ‘마중’으로 예약을 받는 수요응답형 서비스이다.

12월 1일 체험한 마중 서비스는 자율주행의 이미지에서 ‘거품’을 덜어냈다. 자율주행의 미래상에서 보여주는 매끈한 실내외 디자인 대신 자율주행 차량의 내외부는 레이저빛을 이용해 사방의 물체를 감지하는 라이다와 전파를 이용한 레이더 등 자율주행을 위한 센서와 컴퓨터, 통신장비로 가득해 좌석 외에 빈 공간을 찾기 어렵다. 조수석 앞에는 라이다 등 센서가 인식한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모니터가 달려 있다. 운전대 없는 무인차도 아직은 먼 일이다. 자율주행차법에 따라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반드시 안전요원을 둬야 한다. 기상이 좋지 않은 날 등 시스템이 이해하고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오이도역을 출발해 편도 약 20분 정도의 구간을 갈 때도 안전요원은 몇차례 핸들을 잡았다. 역을 지나 배곧신도시로 가는 사이에 교통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교통 흐름과 안전을 고려했다. 좌회전 구간에서 건설장비가 길 한켠을 막고, 옆과 후미에서 차량이 따라오고 있었을 때도 안전요원이 운전대를 잡았다. 이날 동행한 한승호 서울대 미래모빌리티기술센터 연구원은 “공사 중이라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됐고, 뒤에 차도 있어서 교통량을 고려해 개입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보조석 모니터에선 라이다가 잡아낸 차량의 형태가 보인다. 우측 차선의 차량은 파란색으로 주행 차선의 차량은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차는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뀔 때 속도를 내 통과하거나 빨간불이 되기 전 정지선 앞에서 멈췄다. 카메라로 신호등을 인식하기도 하지만 안전을 위해 더 정확한 교통신호를 통신으로 주고받는다. 이따금 신호등 앞에서 울컥거리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급가속·급정거가 없었고, 핸들은 저 혼자 부드럽게 움직였다.

안전요원이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고생이다.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배성훈씨는 “일반 차량을 운전할 때에 비해 오히려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데이터 구축을 위한 사업이니만큼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위험 상황이 분명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늘 긴장한 상태로 상황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한승호 연구원은 마중 서비스의 자율주행 수준을 ‘레벨3.5’로 평가했다. 흔히 통용되는 자율주행 단계에는 없는 것이다. 한 연구원은 “레벨4는 운전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개입할 필요가 없는 수준인데, 지금처럼 안전을 위해 개입하려면 3.5 정도라고 말하는 게 맞아 보인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챌린지에서 우승한 카이스트팀이 서로 축하하고 있다(위). 서울대 미리모빌리티기술센터가 주도하는 자율주행 시범서비스 ‘마중’이 시흥 배곧신도시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다. 주영재 기자

자율주행 챌린지에서 우승한 카이스트팀이 서로 축하하고 있다(위). 서울대 미리모빌리티기술센터가 주도하는 자율주행 시범서비스 ‘마중’이 시흥 배곧신도시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다. 주영재 기자

문제제시·연구·상용화 선순환 이뤄야
지난 11월 30일에는 서울 상암동에서 국내 최초로 실도로 자율주행 경주대회가 열렸다. 자율주행 연구를 독려하기 위한 행사였다. 결승선에 먼저 통과해야 이기는 일반 경주대회와 달리 자율주행 챌린지 대회에서는 자율주행 모드의 정상 작동과 운전자 개입 여부, 신호·규정 속도 위반 등 교통법규를 지키는지 등을 중요하게 본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최대 3분까지 벌점을 받을 수 있다. 이날 23개 팀 중 6개 대학팀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우승은 카이스트가 차지했다. 총 4㎞의 구간을 11분을 조금 넘겨 통과했다. 로봇공학 연구자로 카이스트팀에 속한 성현기씨(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박사과정)는 “다른 차를 추월해 랩 타임을 빠르게 가져간다는 전략대로 돼 다행이고, 신호등 운도 있었다”면서 “차량 사고는 크게 날 수 있는데 실 도로에서 차량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알고리즘 테스트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2022년에도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는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 서울 강남에서 자율주행차로 개조한 아이오닉5를 이용한 ‘로보라이드’ 시범 서비스를 선보인다. 내년부터 서울 청계천에서 자율주행 버스가 운행되고, 2025년이 되면 제설차와 소방차, 순찰차 등 50대 정도가 서울에서 자율주행을 하면서 학습 데이터를 쌓게 된다. 서울에서 자율주행 유상운송도 시작된다. 지난 11월 30일 포티투닷(42dot)과 에스더블유엠(SWM)이 각각 1·2호 사업자로 면허를 받아 내년 1월 중 유상운송에 나선다.

국내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27년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 교통물류 자율주행 기본 계획을 수립해 그에 맞춰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현재 7곳)를 확대할 계획이다”면서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 시점에 맞춰 법과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을 비롯한 모빌리티 산업이 발전하려면 학계와 산업계의 융합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산업계가 현장의 문제점을 제시하면, 대학 연구팀이 이를 해결하고, 그 기술을 다시 산업체가 상용화하는 사이클이 더 원활해져야 한다. 송세경 교수는 “상용화할 기업과 연계가 되지 않으면 대학의 연구는 논문과 특허에 머물고 만다”면서 “기업이 기술을 내재화하기 위한 투자와 인력 채용도 어려워져 협력의 간극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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