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안전사고 근절 대책 ‘늑장·재탕’

박상영 기자

2016년에 ‘퇴출’ 약속했던 고압선 ‘직접활선’

5년 지났는데, 또 폐지 약속…

‘간접활선’ 도입 후 사망 줄었지만

현장선 여전히 ‘죽음의 공법’ 만연

한국전력이 지난 9일 발표한 안전사고 근절 대책을 두고 사실상 늑장·재탕 방안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전은 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을 작업자가 접촉하는 ‘직접활선’ 작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폐지를 약속했음에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특히 산업재해 피해자 대부분이 하도급업체의 미숙련 노동자인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10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의 안전 대책은 이미 발표했던 것이거나 시기를 앞당기는 허울뿐인 대책이었다”고 비판했다. 실제 한전은 직접활선 작업을 즉시 퇴출시키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2016년 6월부터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는 2021년부터 ‘간접활선’ 공법 적용률을 10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직접활선은 2만2900V 전력이 흐르는 상태에서 전선 교체 작업을 손으로 하는 것으로, 현장에서는 ‘죽음의 공법’으로 불린다. 대안으로 전력선을 직접 접촉하지 않는 간접활선 공법을 도입하면서 2016년 21명이던 감전사고 희생자는 2020년 13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관련 장비가 무거워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활선 공법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노조 측은 간접활선 도입 이후, 몸에 맞지 않는 장비나 무거운 도구를 반복적으로 장시간 이용하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 발생률도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열린 ‘배전 활선 작업 안전관리 강화 토론회’에서 이용철 건설노조 광주전남전기지부장은 “한전이 배전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관련 연구용역 추진과 함께 현장에 맞는 공구 개발을 위해 노동자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활선 작업의 전면 폐지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11월 경기 여주시의 한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한전 하청업체 소속 김다운씨는 2만2900V의 고압 전기를 인근 공사장에 연결하는 작업을 하던 중 감전사고로 숨졌다. 당시 2인1조 작업 수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활선차(고소절연 작업차) 등 장비도 없었다. 엄인수 건설노조 강원전기지부장은 “2020년까지 해당 작업은 원래 한전 정규직 노동자가 하던 일이었다”면서 “갑작스레 준비가 부족한 하도급업체로 관련 업무를 넘기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업체로선 수익이 나지 않지만 한전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작업인력을 최소화하는 점도 사고 원인이란 주장이 나온다.

건설노조는 “배전 협력업체 평균 인력은 13명이지만 실제 전봇대를 오르내리며 일하는 사람은 3~4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다”며 “2인1조 등이 지켜지기 어려운 노동환경”이라고 주장했다.

한전이 지난달 작성한 ‘2022년 국가안전관리 세부집행계획’을 보면 도급업체 직원이 주로 산업재해를 입었다. 2016~2020년 산업재해 피해자 384명 중 351명(91.4%)이 도급업체 직원이었다. 사망자도 35명 중 34명이 도급업체 소속이었다. 입사 연차도 3년차 이하가 74%로 저숙련 노동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연령별로는 30대 이하가 89%에 달했다.

엄 지부장은 “작업 자체가 위험하고 업체도 영세하다 보니 상시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제대로 된 교육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한전이 이들 현장인력을 직접 고용한다면 기능인력 부족 현상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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