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전기차 폐배터리…처리 애물단지? 차세대 먹거리!

고영득 기자

최첨단 전자·정보기술(IT) 제품으로 가득한 전시장에서 아담한 ‘숲’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았다. SK그룹 계열사들이 지난 5~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 조성한 부스였다. 탄소중립 의지를 나무 등으로 꾸민 공간에 녹여낸 것이다.

이 자리에서 SK이노베이션은 2030년부터 매년 탄소 1100만t 감축에 기여할 기술들을 선보였다. 1100만t 중 배터리 재활용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36만t에 이른다. SK이노베이션은 폐배터리에서 수산화리5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 차세대 먹거리 된 폐배터리

2025년 국내 3만여개로 급증
매립이나 소각 땐 환경 오염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 속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커져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덩달아 늘어나는 폐배터리를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원료 가격이 급등하자 배터리·자동차 업체들이 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잇따라 뛰어들면서 시장 선점 경쟁도 치열해졌다.

차량용 배터리는 니켈, 리튬, 코발트, 망간 등의 금속류와 전해질로 구성돼 있다. 매립하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소각하면 폭발하거나 유해가스를 방출해 세계 각국이 폐배터리 활용처를 찾는 데 분주하다. 기업들로선 배터리 재활용으로 원자재 공급망 교란에 대응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020년 275개에 불과했던 국내 전기차 폐배터리는 2025년 3만1696개, 2030년엔 10만7520개로 늘어날 것으로 환경부는 전망했다. 에너지 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는 2019년 1조6500억원이던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2030년 20조2000억원, 2050년엔 600조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사용 주기는 보통 7~10년이다. 성능이 초기 대비 70% 밑으로 떨어지면 주행거리가 줄어들고 충전 속도까지 느려져 교체가 필요하다. 사용 후 배터리는 가치가 떨어진 것일 뿐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와 독일 재생에너지협회는 초기 용량의 70~80% 수준인 사용 후 배터리를 다른 곳에 활용하면 최대 1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폐배터리 이용 방식은 크게 재사용과 재활용으로 나뉜다. 검수를 거쳐 농업용 초소형 전기차의 배터리로 쓰거나 전기 자전거, 캠핑용 충전기 등 소형 기기에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재사용이 힘들 만큼 성능이 떨어졌다면 배터리 원재료를 추출해 새 배터리를 만드는 데 쓸 수 있다.

폐배터리는 리튬이 니켈, 코발트, 망간 등과 화학적으로 강하게 결합해 있다. 리튬을 먼저 제거하면 나머지 원료를 추출하기도 쉬워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버려지는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광산이나 염호에서 금속을 채굴할 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70% 낮출 수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현재 폐배터리 재활용은 초기 단계지만, 2040년에는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금속을 활용해 배터리를 만드는 비중이 광산을 통한 제작 비중을 뛰어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수산화리튬 추출 기술을 검증하고 올해부터 대전 환경과학기술원에서 시범공장을 가동한다. 이곳에서 생산성을 파악해 2025년에는 3000억원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LG화학과 배터리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 ‘라이사이클(Li-Cycle)’에 6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했다. 삼성SDI도 배터리 재활용업체와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약 6조원을 투자해 배터리 재활용 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초 현대차 울산공장에 설치된 에너지저장장치(ESS). 여기에 들어간 배터리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사용한 것이다.    현대차 제공

지난해 초 현대차 울산공장에 설치된 에너지저장장치(ESS). 여기에 들어간 배터리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사용한 것이다. 현대차 제공

■ 자동차 업체도 재활용에 분주

에너지저장장치로도 활용
국내외 완성차 업체도 잰걸음

전기차에서 임무를 다한 배터리는 에너지저장장치(ESS)로도 활용할 수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전기차 폐배터리를 ESS로 재활용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완성차 업체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폐배터리로 ESS를 만드는 ‘UBESS 로드맵’을 수립했고, 배터리의 성능과 수명을 평가하고 예측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지난해 초 폐배터리를 재사용한 ESS를 설치하고, 태양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현대차는 국내에 대규모 폐배터리 회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유럽·미국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지난해 8월 전략보고서를 통해 자체 기술로 폐배터리 소재의 92%를 회수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독일 폭스바겐은 연간 최대 3600개의 배터리를 재활용할 수 있는 공장을 설립했고, 일본 혼다는 미국 업체와 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맺었다. 프랑스 르노는 2030년까지 연간 2만개의 배터리를 재생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시장이 활기를 띠자 폐배터리 운송 산업도 등장했다. 폐배터리를 규격이 맞지 않는 용기에 보관하거나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옮기면 사고 위험이 크다. 이에 현대글로비스는 ‘플랫폼 용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특허를 취득했다. 이 용기는 절연 소재로 누전을 막고 조절형 고정 장치로 다양한 크기의 폐배터리를 담을 수 있어 기존보다 3배 이상의 운송 효율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현대글로비스는 용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도 도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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