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뛰어들 ‘인증 중고차’ 시장…이미 변화는 시작됐다읽음

고영득 기자
서울 성동구 장안평중고차매매시장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3월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 장안평중고차매매시장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3월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시범사업 기간엔 각 5000대 제한
국내 연 253만대 거래되는 시장
신차 구매 충성 고객 확보하려 진출
성능·시세 공유 플랫폼 활기 예상

렌터카 계열사 둔 대기업들 ‘눈독’
롯데렌탈 이어 SK도 재진입할 듯

“대기업 들어온다고 이렇게 환영받는 직종은 드물 거다.” 현대차·기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는 기사에 달린 한 누리꾼(네이버 mchu****)의 댓글이다.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를 향해 냉소를 날린 것이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마켓’(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으로 꼽힌다. 구매자는 물론 판매자도 문제점으로 ‘허위·미끼 매물’을 가장 많이 꼽을 정도(한국소비자원 조사)로 시장에는 불신이 팽배하다.

내년부터 현대차와 기아의 인증 중고차를 살 수 있게 됐다. 이미 현대차·기아는 사업을 개시할 채비를 갖췄지만 정부가 1년 유예기간을 뒀고 판매량도 2년간 제한했다. 완성차업계나 중고차 매매업계 모두 정부의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지만, 갈등이 일단락되면서 중고차 시장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 왜 진출하나

지난달 28일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사업조정심의회가 의결한 권고안을 보면 현대차·기아는 내년 1월부터 중고차를 거래할 수 있다. 시범사업 기간인 4월까지는 각각 5000대 넘게 판매할 수 없다. 사업이 본격화하는 5월부터도 2년 동안 전체 중고차의 최대 4.1%까지만 판매가 허용된다.

또 현대차·기아는 신차를 사려는 고객이 자사 브랜드의 중고차를 팔겠다고 할 경우에만 해당 중고차를 사들일 수 있다. 연식 5년, 주행거리 10만㎞ 미만의 인증 중고차로 판매하지 않는 물량은 경매 시장에 내놔야 한다. 정부 권고안에 대해 완성차 업체들의 단체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중고차 시장 선진화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열망을 외면한 결정인 데다 수입차 업체에는 없는 규제를 상당 기간 더 받게 됐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국내에선 연간 253만대의 중고차가 실거래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엔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신차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웃돈을 주고서라도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고차를 사려는 소비자들도 생겼다.

중고차 시장이 당장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이 진출하려는 건 ‘충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현대차·기아 모두 중고차 거래 고객에게 신차 가격을 할인해준다는 방침을 세웠다.

인증 중고차에 대한 신뢰도가 커지면 브랜드 가치 상승, 전체 실적 증가로 이어진다. 수입차 브랜드에선 처음으로 2005년부터 국내에서 중고차 거래를 시작한 BMW는 지난해까지 총 7만4167대의 인증 중고차를 판매했다. 지난해에만 전년보다 13.4% 늘어난 1만2305대를 팔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일찌감치 중고차 시장에 뛰어든 독일 브랜드는 인증 중고차 제도로 소비자의 불안감을 해소해주면서 중고차 경쟁력을 키웠고 신차 시장 점유율도 확대했다”고 말했다.

사업 확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고차 시장은 매력적이다. 생산과 판매 전략, 부품 수급 계획을 보다 세밀하게 짤 수 있다. 또 차량 생산부터 폐차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를 관리하면서 이동 경로, 소비 패턴 등 빅데이터가 축적된다. 이를 통해 차량 구독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같은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할 수 있다.

■ 무한경쟁 본격화

앞으로 중고차의 성능과 시세 정보를 비교하기 쉽고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활기를 띨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전국 주요 거점에 전시장을 구축하면서도 동시에 시설 확보와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고객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이번 권고는 중고차업계가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한 결론이어서 다른 대기업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앞서 중기부는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빗장이 풀리면서 렌터카 계열사를 둔 롯데그룹, SK그룹도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먼저 렌터카 업계 1위인 롯데렌탈이 올 하반기 롯데오토옥션을 통한 소비자 거래(B2C)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SK그룹도 중고차 시장에서 철수한 지 4년여 만에 SK렌터카를 통해 재진입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케이카 같은 중고차 거래 플랫폼도 반기고 있다. 이경록 삼성증권 연구원은 “차량을 직접 매입해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로 경쟁력을 확보한 케이카는 시장 점유율이 낮은 완성차 업체들, 모빌리티 사업을 확장하려는 다른 플랫폼 업체들과 제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고차 매매업계의 반발은 여전하다. 이들은 자사 중고차를 전량 사들일 자금력이 있는 현대차그룹이 ‘알짜배기’ 물량을 독차지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번 권고는 2025년 4월30일까지 적용된다. 이후 현대차·기아의 판매량 제한이 완전히 풀린다고 단언할 수 없다. 권고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다시 사업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심의회가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재심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번 권고안은 중소 업체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게끔 현대차·기아의 시장 진입을 늦추고 판매량을 제한한 것”이라며 “실태를 충분히 조사했고 예상되는 피해 규모를 산정해 내린 합당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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