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포럼

“AI시대, 노동자 권리 더 중요해지는데 노조는 20세기에 머물러 있어”

김상범 기자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저자 대니얼 서스킨드 영국 옥스퍼드대 선임연구원

대니얼 서스킨드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선임연구원이자 인공지능 윤리연구소(Institute for Ethics in AI)의 선임연구원이다. 그가 2020년 저술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는 뉴욕타임스로부터 ‘미래의 경제를 생각하는 대통령 후보라면 필히 읽어야 할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서스킨드는 과거 영국 정부 내 총리의 전략자문처, 정책분석처, 내각실에서 근무했다. 서스킨드 제공

대니얼 서스킨드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선임연구원이자 인공지능 윤리연구소(Institute for Ethics in AI)의 선임연구원이다. 그가 2020년 저술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는 뉴욕타임스로부터 ‘미래의 경제를 생각하는 대통령 후보라면 필히 읽어야 할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서스킨드는 과거 영국 정부 내 총리의 전략자문처, 정책분석처, 내각실에서 근무했다. 서스킨드 제공

팬데믹으로 기술 트렌드 가속화
자동화 위협, 전문직도 예외 아냐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지면, 인간의 일자리는 모두 사라지게 될까? 기술 혁신으로 수많은 직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와중에 이 같은 질문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우리는 어떤 일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오는 22일 열리는 ‘2022 경향포럼’의 강연자 대니얼 서스킨드 영국 옥스퍼드대 선임연구원은 14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어떤 직업이 미래에 중요해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그보다는 사람들이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작업을 가려내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에서 총리 정책자문관 등으로 일하기도 했던 서스킨드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등 기술과 일자리의 관계를 다룬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대부분 국내에서도 출간됐다.

서스킨드 연구원은 “놀라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술의) 위협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스킨드 연구원은 블루칼라 제조업 일자리뿐만 아니라 의사, 변호사, 건축가 같은 비교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여겨지는 전문직 일자리도 기술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이 같은 흐름의 속도는, 최근 2년여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노동, 원격 의료 등이 널리 자리잡으면서 훨씬 빨라졌다. 그렇다고 그가 예견하는 미래가 인간이 로봇에게 모든 일자리를 빼앗기고 실직자로 전락한 디스토피아의 모습만은 아니다.

서스킨드 연구원은 정부와 사회의 대응을 강조한다. 그는 기계가 아직 할 수 없는 일, 자동화 기술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 등을 끊임없이 노동자들에게 교육하고 훈련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술 대기업들의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도 강조했다.

LS산전 청주 1사업장 G동 2층에 설치된 ‘스마트 생산라인’의 모습. 데이터에 기반해 부품 공급부터 조립, 시험, 포장까지 자동화가 구축돼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LS산전 청주 1사업장 G동 2층에 설치된 ‘스마트 생산라인’의 모습. 데이터에 기반해 부품 공급부터 조립, 시험, 포장까지 자동화가 구축돼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음은 일문일답.

- 노동과 직업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계기는 무엇인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진료, 차량 운전, 계약서 작성, 작곡·작사 등을 이제는 시스템과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이상 유일한 소득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내가 일과 직업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 이러한 위협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에서는 고숙련 인력과 저숙련 인력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될 것이라고 했다. 어떤 직업이 미래에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보는가.

“어떤 직업이 미래에 중요해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 관리나 검색 엔진 최적화 등의 일을 할 것이라고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작업을 가려내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기계가 못하는 일을 수행하거나
자동화 기술을 설계·운영케 해야

-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를 펴낸 지 2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상이 얼마나 빠르게 가속화돼 왔다고 보는가.

“지난 2년 동안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코로나19였다. 팬데믹으로 인해 원격 의료, 온라인 교육 등이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팬데믹은 기술의 트렌드를 가속화시켰다.”

- 제조업뿐만 아니라 변호사, 의사 등 화이트칼라 전문직도 기술 발전과 자동화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나.

“많은 사람들은 자동화의 위험이 농부, 공장 노동자들에게만 닥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변호사·의사·교사·회계사·건축가·컨설턴트 등도 자동화의 위험에 점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하는 많은 활동과 작업은 생각보다 일상적이고 간단하다. 실제로 화이트칼라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화이트칼라가 하는 복잡한 업무, 의학적 진단을 내리는 시스템, 소송과 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프로세스, 아름다운 건물을 설계하는 창의성 등은 놀라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더 자동화의 위험에 처해 있다. 최근의 기술 발전은 우리가 ‘최첨단의 기술조차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활동을 모두 잠식하고 있다.”

기술과 로봇이 할 수 있는 업무를
노동자들에게 훈련시키는 정부
정책으로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

- 제조업 국가인 한국에는 자동화에 취약한 일자리가 많다. 현대·기아 자동차 공장에서의 로봇 도입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제조업 위주의 국가들은 어떤 일자리 해법을 찾아야 하는가.

“미래를 위해 노동자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첫째, 기계가 아직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을 수행하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아직까지 대인 관계의 기술이나 인간 고유의 판단력, 창의성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들이 있다. 두 번째로는 노동자들을 자동화 기술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시스템과 기계가 이미 할 수 있는 루틴한(단순·반복적인) 업무를 하도록 노동자를 훈련시키는 것을 피해야 한다. 제조업이 자동화로 인해 특히 큰 타격을 받는 이유는 반복적인 작업이 제조 부문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종종 정부는 기술과 로봇이 이미 수행하고 있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업무를 사람들에게 훈련시키곤 하는데, 이는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다.”

노조가 21세기에도 번성하려면
파업 등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적절한 기술로 목표 달성해내야

- 제조업 위주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등을 대변하지 못하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들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진행되고는 있지만, 기술 플랫폼의 우월적인 지위 아래 협상력을 잃고 파편화돼 가는 노동자들에게는 쉽지 않다.

“대기업과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강력해지면 노동조합이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대항하는 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직면한 문제는, 눈에 띄는 기술 발전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노동조합이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대개의 노동조합은 매우 구식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목표와 결과를 달성하려고 한다. 따라서 노조가 21세기에도 번성하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기술을 사용하는 21세기의 조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노동조합의 청년 조합원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노동조합이 현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많은 젊은이들은 노동조합을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고 있지 않다.”

- 노동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대안으로 ‘조건적 기본소득’을 제시했다.

“앞서 나의 책에서 기술 발전과 일자리 문제의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한 바 있다. 기본소득이 오늘날 당면 과제들의 직접적인 해결책은 될 수는 없지만, 이 아이디어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기술 발전으로) 사람들의 할 일이 부족해질 수 있고, 이들이 전혀 소득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십년 후에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미래에는 기술이 일종의 자원으로 취급될 것이다. 기술을 소유한 사람들은 놀라운 수입을 얻을 것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기술에서 발생하는) 수입을 어떻게 한 사회가 공유할지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다.”

- 지금까지 주로 일자리와 기술 발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요즘은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나.

“경제 성장의 역설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경제 성장은 물질적 번영을 창출하지만 한편으로 환경 파괴, 지역 사회의 황폐화, 직업과 정치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는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다. 이 같은 역설을 탐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21세기의 성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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