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포럼

비대면 시대의 역설, ‘오프라인 노동’ 존재감 부각…노동의 변화, 우린 준비됐나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고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코로나19의 끝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기후환경 위기로 생태계가 교란돼 언제든지 새로운 역병이 창궐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결국 불안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나타난 변화들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많은 변화들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따라 재택근무와 플랫폼노동이 빠르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재택근무는 주춤하고 있지만, 플랫폼노동의 확산세는 그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향후 완급이 조절될 수는 있지만 이미 굳어진 대세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욱 주목할 것은 지난해 6월 페이스북의 메타버스(Metaverse) 집중 육성 발표를 계기로 메타버스와 연관된 블록체인, 5G,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테이터 등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융합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메타버스는 앞으로 10년 내에 원격근무, 문화 콘텐츠, 소셜 네트워크, 온라인 교육, 온라인 의료, 핀테크, 스마트도시, 스마트팩토리, 산업인터넷, 공급체인 관리 등의 분야에서 놀라운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궁극에는 옥스퍼드 대학의 대니얼 서스킨드(Daniel Susskind)가 전망하듯이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의 세계조차 탈숙련화로 몰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첨단기술의 발달로 인간 노동의 위상은 추락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코로나19와 같은 역병 위기는 이를 계속 부추길 것인가? 대답은 반드시 ‘예스’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역설적으로 ‘필수노동’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온라인으로만 세상은 굴러가지 않았다. 간호와 요양, 음식배달과 택배, 환경미화 등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 속에서 ‘사회적 연결하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오프라인 노동의 존재감이 확인됐다.

메타버스가 본격화되더라도 누군가는 실제 세계를 지키고 다듬어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필수노동의 중요성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다시 대니얼 서스킨드의 대안이 주목된다. 그는 AI 등 신기술의 발달에 의해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앞으로는 노동을 통한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없으므로 오락활동과 정치활동 이외에 가사, 돌봄, 교육 활동 등 공동체가 이들에게 요구하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스킨드는 이러한 공동체 유지 활동에 참가한 대가로 기본소득을 주자고 제안하며, 이를 “조건적 기본 소득”이라고 부른다. 보편적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현실감 있고, 공동체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발상이다.

하지만 첨단기술과 관련해 흔히 우리가 범하는 실수는 그 기술이 실현되는 ‘시간’에 대한 고려를 빠뜨린다는 점이다. 메타버스는 10년 내 널리 확산될 수 있다고 하지만, AI가 전문직 일자리까지 대체하게 되기까지는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공동체의 유지와 인간 노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끝없이 기술을 재평가하고, 적용 과정에서 발언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에 유용하게 적용됐을 때 가치가 높은 것이다. 슘페터가 규정한 대로 파괴적 혁신이 필요할 수는 있으나, 이것이 사회에 대한 파괴적 영향까지 그대로 두라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아마존, 애플, 구글 등 소수의 빅테크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독점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은 왜 우리가 조건부 기본소득과 더불어 공동체주의를 다시 소환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방증이다.

서스킨드는 빅테크를 제어하기 위한 큰 정부의 역할, 그리고 노동자에게 되도록 “평탄한 여정”을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정부와 노동운동은 이러한 시대 흐름에 대한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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