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포럼

팬데믹 이후 한국 사회의 불평등…확장적 재정·사회안전망 등 정부 대처 중요

구인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고

구인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구인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종식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팬데믹과 함께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도 가라앉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회복의 길로 나아갈 방도를 생각할 때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과거 우리 사회가 겪은 어느 경제위기보다 취약층에 가혹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에서는 제조업과 금융산업의 대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중장년 남성 가장들이 희생양이 됐다. 2008년 서구 국가들을 강타한 금융위기 때에는 자영업자들이 자금난으로 고통을 겪었다. 한편, 2020년 팬데믹은 한두 달 만에 100만명 가까이 취업자를 감소시켰는데, 대면접촉이 많은 서비스산업에서 자영업자와 저숙련 근로자, 청년, 여성 등 고용불안정 취약층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교육, 돌봄 등 공공서비스 기관의 폐쇄로 인해 아동 양육의 부담을 진 여성들은 경제활동에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한국은 성공적인 방역 조치로 인해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도 경제위기 악화를 막는 데 역할을 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러 차례 실시된 재난지원금은 취약계층의 경제적 어려움과 계층 격차 확대를 완화하는 데 효과를 거뒀다. 2020년 세계 경제는 -3.5%의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였지만 한국 경제는 -0.9% 축소에 그쳤다. 2021년에는 4.9% 성장을 이뤘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와 같이 심각한 피해를 겪고 정부 지원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취약층이 있지만, 전반적인 분배 악화는 피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평등을 한층 악화시킨 결과로 바로 이어지지 않은 점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안도하고 있을 형편도 아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이미 한 세대에 걸쳐 놀라울 정도의 불평등 악화를 경험했다. 1990년대 전반까지 우리 사회는 유럽과 비슷하게 평등한 분배상태를 유지했으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가장 불평등한 나라인 미국을 넘어설 정도이다. 2022년 세계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전체 소득 중 상위 10% 계층이 차지한 비중은 1990년대 전반 35%를 밑돌다가 2021년까지 46%로 늘어 미국의 45%를 넘어섰다. 같은 시기 국민 중 빈곤층이 차지한 비율은 두 배나 늘어 국제적으로 최악의 수준에 속한다.

고속의 양극화 과정에서 기폭제가 된 것은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제한 긴축정책으로 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저소득층은 10년이 지나서야 위기 이전의 소득 수준을 회복했다. 봇물 터지듯 진행된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급증했고 임금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2010년대에 들어 불평등 악화가 진정세를 보였지만, 양극화는 움직일 수 없는 현실처럼 굳어졌다.

팬데믹 또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경제위기 동안 고용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일자리의 양극화가 진척되고 있다. 재택근무 확산, 디지털 전환과 함께 고급인력의 일자리는 늘어나는데, 중간층의 괜찮은 일자리들은 사라지고 고용이 불안정한 저숙련 노무직으로 대체되고 있다. 학교 폐쇄로 벌어진 학력 격차는 소득 격차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팬데믹 기간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주택가격이 치솟았고 자산 격차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세계불평등보고서는 한국에서 1990년대 이후 자산불평등이 증가하여 2021년에는 상위 10% 계층이 자산의 58%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보고했다. 한국은 1950년대 농지개혁의 성과로 매우 평등한 자산 분배를 이루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부동산 자산 격차가 늘면서 이제 선진 산업국가의 자산불평등을 추월할 지경이 됐다.

고용과 교육, 소득과 자산의 격차가 증대하는 상황에서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사회안전망 확충 등 정부의 적극적 대처가 더욱 중요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급한 긴축 재정으로 위기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서구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또 한 번의 양극화 시대로 이어질지는 지금부터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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