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경쟁자인 대만 TSMC, ‘지정학적 리스크’에 발목 잡힐까

카레라(필명)

중국에 대만은 ‘미국의 불침 항모’
본격적인 열전 벌이긴 부담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긴 아쉬워
대만 봉쇄작전 현실화 가능성 충분

인근 영해 훈련이 정례화될 경우
TSMC 등 대만 기업 물류 막힐 것
기술집약적 반도체 기업의 운명도
정치적 이슈를 벗어날 수는 없어

지난 2~3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후, 중국은 대만 인근에서 수일 동안 군사훈련을 하며 대만을 실질적으로 봉쇄했다. 이를 보고 필자는 냉전 당시의 ‘베를린 봉쇄’가 겹쳐 보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연합국에 의해 분단됐다. 하지만 소련군 점령지에 있던 베를린은 소련이 단독으로 차지하기에는 너무 중요했고, 결국 미국·영국과 베를린을 나눠 가졌다. 소련은 이 상황이 불편했지만, 2차 대전이 끝난 후였기에 서방 국가들과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피하고자 했다. 결국 소련은 애매한 봉쇄를 선택했다.

중국 입장에서 대만은 미국의 ‘불침 항모’이다. 이 항모는 이름 그대로 절대로 침몰하지도 않으면서, 중국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더군다나 이 항모는 군기지만을 겨냥하지도 않는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이 함포의 이름은 TSMC이다. 중국은 지금 전쟁을 하기 어려운 상태이지만, 대만을 꼭 영향권에 넣어야만 미국과 자웅을 겨룰 수 있다. 서베를린이 불편하던 소련과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만을 열전을 통해 얻는 것은 하책이다. 열전이 일어날 경우, 중국도 대만을 편하게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1999년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홍콩, 상하이, 난징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허세가 아니라 대만의 슝펑 순항미사일을 이용한 타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만약 대만이 중국과 본격적인 전쟁으로 돌입할 경우 대만에서는 중국의 주요 도시나 산샤댐 등을 타격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정말로 열전이 일어난 후 산샤댐 타격이 성공할 경우 지형상 이창시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중부 핵심 도시와 주요 군사기지들은 전부 영향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중국 입장에서 대만과의 전쟁은 상륙전이 될 공산이 크다. 상륙전은 언제나 공격자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법이며, 전력의 차가 꽤 나더라도 쉽지 않다. 만약 상륙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더라도, 대만 국토의 상당 부분은 산이다. 산지 지형에서 점령전을 펼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몸소 보여준 바 있다. 이 모든 것은 일본이나 미국 등의 개입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시나리오이다. 현실적으로는 훨씬 어려울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즉 중국 입장에서도 본격적인 열전은 꽤나 부담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대만을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아쉽고 위험하다. 적어도, 대만의 스탠스가 지금보다는 훨씬 친중적이어야 좋을 것이다. 베를린 봉쇄의 소련과 굉장히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처음으로 대만 인근에 대한 군사훈련을 실행했다. 결과는 중국 입장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우선 미국은 어떠한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사실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중국 영해인 대만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냥 자국 영해에서 훈련을 한 것이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하기 애매하다. 이는 이전의 베를린 봉쇄 때와도 동일하다. 심지어 지금은 베를린 봉쇄 때처럼 기약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군사훈련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만의 물류는 영향을 받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도, 이유도 충분하다. 베를린 봉쇄 때는 미국과 영국의 대대적인 공수작전으로 봉쇄를 무력화시키며 서베를린을 구원했는데, 이번에는 어떨까? 대만은 가장 가까운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서 중간 기착지 없이 700㎞ 이상 떨어져 있다. 베를린 봉쇄 때 평균적인 편도 비행 거리는 250㎞였고, 이때는 아무런 소련 측의 군사적 행동이 없었으며 영국이 물동량의 3분의 1가량을 도맡았다. 이번에는 훨씬 더 어려운 작전이 될 것이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서, 위와 같은 상황이 정례화된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곳은 TSMC 같은 대만의 기업들이 될 것이다. 훈련이 허구한 날 발생하는데 과연 물건이 제대로 오고갈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만이 천천히 고사한다면 어떨까. 대만이 결기 넘치는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현 반중적인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있을 수 있고, 이는 대만 내 친중세력에게 대단히 유리한 일이 된다. 중국 입장에서는 1차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상상대로 흘러간다고 보면, 시스템 반도체의 TSMC, 메모리 반도체의 삼성전자의 구도는 삼성전자에 크게 유리하게 바뀐다. 자고로, 경쟁사를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가 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TSMC가 기술적으로는 우위에 있는 것으로 점쳐지지만, 그 기술적 우위도 대만에서 칩이 나올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또한 만약 대만이 지금보다 더 친중적으로 돌아선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TSMC 칩을 쓰는 것을 안보 위협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반도체 같은 기술집약적 사업에서 정상적으로 기술 경쟁을 이겨야 하는 어려운 게임에서, 상대편이 기술 외적인 요소로 발목 잡히게 되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바라볼 때, 현재 평택항의 불야성은 정말 반갑게 받아들여진다.

애초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팹 회사들이 서방 국가들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의 최전선 국가들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절대 우연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정학적으로 세계가 재편될 때, 반도체 시장 또한 정치적인 이슈를 벗어날 수 없으며, 현대의 투자자라면 어느정도는 이러한 부분 또한 고려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Today`s HOT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개전 200일, 침묵시위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5연승한 넬리 코르다, 연못에 풍덩! 황폐해진 칸 유니스
화려한 의상 입고 자전거 타는 마닐라 주민들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