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메모리 시장, 1년은 버텨야 ‘훈풍’

이재덕 기자

반도체 수요 감소에 미국 제재까지

‘혹한기’ 메모리 시장, 1년은 버텨야 ‘훈풍’

“향후 3년 안에 스마트폰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겠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이 지난해 8월 신작 스마트폰 발표회에서 한 말은 당시만 해도 공염불이 아니었다. 중국 내수 시장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었다. 그해 6월 샤오미는 월간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삼성과 애플을 제치고 ‘반짝 1위’에 올랐다. 중국 시장 점유율이 1%로 급락한 삼성전자는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이 6%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샤오미·오포·비보 등 중국 업체들은 출하량이 20~30% 늘어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렸다.

중국 업체의 급성장 이면에서 돈을 챙긴 건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전자였다. 샤오미·오포·비보가 스마트폰을 팔 때마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LPDDR D램과 128단 낸드플래시 등 삼성전자의 메모리 수익도 함께 늘어났다. 덕분에 지난해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으로만 역대 세 번째로 많은 51조6300억원을 벌어들였다. 절반 이상이 반도체에서 나왔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메모리 호황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다.

중국 스마트폰 내수 침체 심화
데이터센터 서버 투자도 위축

그러나 올해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올 1~7월 중국 내 스마트폰 출하량은 1억562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3% 줄었다. 샤오미는 1분기 매출과 2분기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각각 4.6%, 20%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중국 도시들이 봉쇄돼 생산 차질을 빚은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등으로 경기가 급랭하면서 스마트폰 수요도 줄었다. 그나마 중국에서 애플의 아이폰이 선전하고 있지만, 애플마저 최근 아이폰14의 증산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침체로 메모리 재고가 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삼성전자도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7% 하락했다. 스마트폰발 ‘메모리 한파’에 한국 경제도 올해 최대 규모의 무역수지 적자를 맞게 됐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327억1400만 달러로, 무역 통계를 낸 1956년 이래 최대 규모다.

12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에 이어 메모리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서버’마저도 최근 투자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용 서버는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등 기업 수요가 늘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인텔의 서버용 CPU인 사파이어 래피즈의 양산이 계속 연기되면서 기업들의 서버 투자가 늦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2~3분기가 돼야 메모리 업황이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업황 부진의 원인인 고객사 재고 조정이 올 연말·내년 연초 중에 정점을 지나 내년 1분기를 지나면서 마무리 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하반기부터는 클라우드에 기반한 데이터센터 수요가 회복되며 (메모리) 업황의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메모리 한파가 1년 정도 이어진다는 뜻이다.

주요 업체들은 감산과 투자 축소로 대응에 나섰다. D램 3위 마이크론은 애초 계획한 장비 투자안에서 30%를 삭감하고, 웨이퍼(반도체 원판) 제조 장비 투자도 50% 줄여 생산량을 조절하기로 했다. 낸드 2위 키옥시아는 이달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30% 줄여 감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난야테크놀로지 등도 4분기부터 감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는 한번 가동을 멈추면 재가동까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감산 결정은 ‘극약 처방’으로 평가받는다.

업체들 감산·투자 축소와 달리
삼성은 “예정대로 생산” 돌파 뜻

반면 메모리 1위 삼성전자는 기존 생산·투자 계획을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한진만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삼성 테크데이 2022’에서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게 기조”라며 “우리는 당장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예정된 경로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내년에는 5세대 10나노급 D램 양산을 시작하고, 2030년까지 1000단 낸드플래시 등을 내놓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위기 상황을 버티면서 투자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신치킨게임’이 시작됐다는 평가까지 내놓았다. 2000년대 후반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방식의 치킨게임을 벌여 경쟁자들을 도태시킨 일을 빗댄 것이다. 삼성전자가 생산량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메모리 가격 상승을 방해하고 경쟁 업체와의 격차를 키우려한다는 해석이다. 독일 인피니온의 자회사 키몬다(2009년 파산)와 일본 엘피다(2012년 파산) 등은 치킨게임에서 밀려서 사라진 대표적인 메모리 업체다.

다만 유진투자증권은 11일 보고서에서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삼성전자의) 원칙론적 태도는 시장과 수많은 주주의 기대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시장 친화적이지 않은 모습”이라며 “2022년의 반도체 산업의 판세는 과거와 같은 치킨게임을 통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경쟁자 도태, 치킨게임’ 평가 속
미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등
시장 현실은 녹록지 않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미 상무부가 지난 7일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수출 통제 방침을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미 상무부가 12일(현지시간)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공장 등에는 해당 지침을 1년 유예해주기로 했지만, 향후 중국 생산시설에 대한 추가 투자는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 주도의 기술 견제가 지속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의 추격에 대응하는 시간은 벌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중국에 대한 불확실성이 누적되면서 현지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점점 어려워지고 중국 시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문제도 겪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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