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가 좀 작거나 흠집이 생긴 과일은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맛과 당도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겉모습이 번지르한 과일보다 더 차지고 달콤한 경우도 있다.
이런 과일이나 야채를 흔히‘못난이 농산물’이라 부른다. 흠집이 나거나 형태가 좀 변했지만 맛과 영양이 빠지지 않는데다 가격도 정상과일보다 많게는 50%가량 저렴하게 팔리기도 한다.
‘파머스페이스’는 이 같은 못난이 농산물을 재배한 농가와 식품 가공업체를 연결해 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대표 서호정씨는 해외에서 이 같은 ‘B급 농산물’이 활발히 유통되는 것을 보고 2012년 못난이 농산물 유통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못난이 농산물로 주스를 만드는 카페 5곳을 운영했는데, SK그룹으로부터 사업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사회적 기업 관련 투자를 받기도 했다.
서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는 못난이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장과 가공업체를 직접 연결해주는 플랫폼(farmerspace.co.kr)을 구축해 못난이 농산물 유통업에도 뛰어들었다.
이 플랫폼은 ‘오픈 마켓’과 비슷한 전자상거래 웹사이트다. 농가는 재배한 못난이 농산물을 이 사이트에 등록하고, 주스 등을 가공하는 식품업체는 이 사이트를 통해 필요한 농작물을 찾는다. 한마디로 농장주와 가공업체를 매칭해주는 사이버 공간인 셈이다.
현재 파머스페이스 사이트에는 150개 가공업체와 450개 농가 등 600여 업체가 등록돼 있다. 취급하는 농산물은 사과와 배 콩, 고구마, 감자, 버섯 등 25종가량 된다. 못난이 과일 중에는 사과와 배가 인기가 높은데, 주로 주스나 잼 제조용으로 사용된다.
서 대표는 “크기가 다소 들쭉날쭉한 고구마나 감자는 스낵용으로 사용되며, 콩은 두유, 양파나 마늘, 당근은 식자재 업체로 빠진다”면서 “10월 중순 이후가 되면 가을 출하 제품이 입고돼 보유 농산물 가짓수와 물량이 좀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숭아나 포도 같은 즙이 많은 과일은 수확 즉시 물건을 유통시켜야 하는 특성 때문에 현재는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통상 농산물 거래는 첫거래만 선금을 받고 이후로는 어음으로 결제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납품을 하고도 대금을 못받아 어려움을 겪는 농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서 대표는 “농산물 유통은 중간수집상, 중간 도매상을 거쳐 식품제조업체에 판매되는 유통 구조가 대부분”이라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농가는 농산물 단가 같은 주요 정보를 알기 어렵고, 유통단계가 길어지고 대금을 늦게 받기도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파머스페이스는 이 같은 어려움을 덜기 위해 ‘빨리줘’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재배농가는 농산물을 넘긴 뒤 4일이면 납품대금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가공업체도 농산물을 받은 뒤 45일까지 대금 지불을 유예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가공업체와 농가는 신한금융지주 측에 각각 수수료(납품대금의 1.5%)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가공업체는 자금 운영에 여유가 생기고, 농가도 납품 대금을 떼일 염려가 없어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게 서 대표의 설명이다.
‘도와줘’라는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식품 가공업체가 원하는 과일이나 농산물 등을 파머스페이스가 직접 구매해 운송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파머스페이스는 이 과정에서 10%가량의 거래 수수료를 받는다. 통상 농가에서 농산물을 매입하는 중간상인들은 수수료로 납품가격의 20~30%를 받는다고 한다. 식품제조업체의 경우 총 제조원가 가운데 재료비가 70% 이상을 차지해 이를 절약할 경우 추가 기계 설비 구입이나 인력 채용도 가능하다.
서 대표는 “농산물의 복잡한 유통 경로는 제조 단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대부분의 중소 식품업체는 원료수급 담당자가 없어 재료를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구하기 어렵다”면서 “파머스페이스 같은 플랫폼을 통할 경우 식품가공업체는 재료비 절감을 할 수 있고, 농가는 판로에 어려움을 겪던 저상품성 농산물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