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노트

개도국에 상수도 설치하고 탄소배출권 받는 글로리엔텍읽음

조미덥 기자
박순호 글로리엔텍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공덕동 서울창업허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박순호 글로리엔텍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공덕동 서울창업허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보면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이 깨끗하지 않은 물을 그냥 마시잖아요. 전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보니 실제로 그런 거예요. 물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사람들의 식수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개발도상국에 수도를 공급하는 수(水)처리 스타트업 글로리엔텍의 박순호 대표(46)가 지난 16일 서울 공덕동 서울창업허브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밝힌 회사 설립 계기다. 박 대표는 코웨이의 수처리 자회사 코웨이엔텍 연구팀에서 일하며 2009년부터 여러 아시아 국가를 다니다 창업 꿈을 키웠다.

회사를 세우자니 수익처가 문제였다. 박 대표는 “물을 끌어와 정수하고 시설 유지하는데 돈은 크게 들어가는데, 물 사용료를 받을 순 없고, 대기업도 누가 식수 사업에 투자를 하겠나”라며 “수익 구조 해결이 10년간의 숙제였다”고 말했다.

돌파구는 ‘탄소배출권’을 이용한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에서 나왔다. CDM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승인받은 시설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탄소배출권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깨끗한 물을 공급해 더러운 물을 끓여먹을 필요가 없어진 데 따른 온실가스 감축량을 인정받는 것이다.

캄보디아 ‘기쁨제자학교’에 글로리엔텍이 설치한 수도 시설. 글로리엔텍 제공

캄보디아 ‘기쁨제자학교’에 글로리엔텍이 설치한 수도 시설. 글로리엔텍 제공

이 사업을 하려면 다양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식수 설비를 운영한 경력이 필요했다. 글로리엔텍은 캄보디아에서 시작해 미얀마, 베트남, 몽골, 방글라데시 등 12개 국가에 70곳 넘는 수도를 설치했다. 학교·마을 단위의 대형 시설부터, 중형, 소규모 시설도 있었다. 코이카와 같은 정부 기관, 민간기업, 학교 등에서 지원을 받았다.

박 대표는 “아시아 지역 물은 한국과 달리 지하수도 오염이 많이 돼 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는 물이 짜고 비소가 많고 철, 망간 등이 있어 먹는 물로 바꾸는 데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로리엔텍에는 정수와 수도 시설 운영 노하우가 쌓였다. 박 대표는 국가별 맞춤형 정수 기술에선 “어느 기업도 따라가지 못할 기술 경쟁력을 가졌다”고 자부했다.

2018년 첫 CDM 사업을 할 국가로 방글라데시를 낙점했다. 처음인만큼 사업성이 큰 곳이어야 했다. 박 대표는 “방글라데시가 인구 밀도가 세계 1위고, 상수도 시설이 부족해 식수 수요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개발도상국 마을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글로리엔텍 박순호 대표. 우철훈 선임기자

개발도상국 마을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글로리엔텍 박순호 대표. 우철훈 선임기자

일이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방글라데시 정부와 UNFCCC에서 승인을 받는 데 2년이 걸렸다. 회사 재정은 점점 어려워졌다. 2019년 10월 박 대표가 뇌출혈로 쓰러지며 사경을 헤매는 일도 있었다. 박 대표는 “그때 8명의 본사 직원이 6개월 이상 월급을 반납하며 한 명의 이탈도 없이 자리를 지켰다”면서 “대기업도 충분히 갈만한 우수한 인재들인데 낙오 없이 버텨준 것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서울창업허브 사무실과 해외 시장 진출 지원금, 방글라데시 지사 설립 자금 등을 지원한 서울시에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난해부터는 UNFCCC의 승인과 한국전력 사업 수주, 에스오일의 지분 투자 등 일이 좀 풀렸다. 올해 2월엔 방글라시에서 2개의 큰 식수 시설이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올해 3월까지 운영한 결과로 얻은 탄소배출권이 얼마인지 UNFCCC의 정산을 기다리고 있다. 5년간 기다려온 첫 수입이다.

글로리엔텍이 방글라데시에서 운영 중인 식수 시설. 이 곳에서의 식수 사용량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인정받는다. 글로리엔텍 제공

글로리엔텍이 방글라데시에서 운영 중인 식수 시설. 이 곳에서의 식수 사용량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인정받는다. 글로리엔텍 제공

첫 1년간의 예상 수입은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으로 시설당 식수량 5000t, 탄소배출권 시세로는 1억5000만원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주민들 이동이 풀리면 한 시설당 1만3000t에 4억원 이상의 수입이 예상된다. 연말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막혀 있던 해외 출장도 가고, 방글라데시에 식수 시설을 하나 더 운영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예수의 오병이어(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를 생각하면서, 5000명에게만 깨끗한 물을 먹여도 좋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어느새 10만명을 넘었다”며 “탄소배출권으로 세계 굴지의 기업들에서 투자를 받아 식수로 고통받는 전 세계 10억명에게 깨끗한 물을 먹이는 것이 우리 회사의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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