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의 역사… 서울로 벼슬하러 온 퇴계 이황도 전셋집 살았다

조미덥·주영재 기자

▲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 가옥 임대차 방식”
조선총독부 보고서에 첫 공식 용어 등장
1910년 통상 계약기간 서울은 100일

▲ 대출 어렵던 때 집주인엔 목돈마련 기회
세입자엔 내집마련 ‘징검다리’ 역할

▲ 60,70년대 ‘집 없는 설움’ 기사 많아
1980년 자기 집 사는 사람 44.5%뿐
1981년에야 주택임대차보호법 마련

▲ 호황에, 외환위기 역풍에, 저금리에…
반복되는 전세난은 끝날 줄 모르고

미국·유럽은 물론 이웃 나라 일본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전세 제도’다. “어떻게 월세도 내지 않고 2년 동안 살다가 그 돈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집을 빌려 쓰면 매달 집세(rent)를 내는 것이 상식인 그들에겐 ‘전세’가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다. 전세는 영어 사전에도 한국 발음 그대로 ‘jeonse’로 등재돼 있다.

한국의 고유한 임대차 제도로 인정받는 ‘전세’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최근 ‘전세난’이 심각한데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겪은 전세살이의 설움은 어땠을까.

■ 퇴계 이황도 전셋집에 살았다

전세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목돈을 빌려주고 집을 빌려 쓰는 가사전당(家舍典當)제도가 있었다. 빚에 대한 담보로 논과 밭을 넘기는 ‘전당(典當)’제도가 집으로 확대된 것이다.

“한양의 셋집에 동산 뜰이 비었더니(漢陽賃屋園院空) 해마다 울긋불긋 온갖 꽃이 피어나네(年年雜樹開繁紅).” - <퇴계선생문집> 권2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이 어느 봄날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정원에 핀 살구꽃을 보고 쓴 시다. 이황처럼 지방에서 서울로 벼슬하러 온 정승도 재산을 모아 집을 사기 전까진 전셋집을 구해 살았다.

전세가 공식 문서에 등장한 첫 사례는 1910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관습조사보고서’다. 여기엔 전세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가옥 임대차 방식”이며 “차주가 가옥 가격의 반액 내지 7·8할을 소유자에게 기탁하며 별도의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반환 시 기탁금을 돌려받는다”고 설명돼 있다. 전세 계약 기간은 지방에서 통상 1년, 서울에서는 100일이었다. 방이 많은 한옥에서 방 한두 칸을 전세로 내놓기도 했다.

■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남는 장사’

광복 후엔 도시화·산업화 물결과 함께 전세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집을 살 여력이 커지면서 집값이 빠르게 뛰었다. 아파트는 분양만 받으면 몇 배를 남길 수 있는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했다. 정부는 산업 발전에 재정을 투입하기 위해 ‘개인 대출’을 억제하고, 대신 국민이 저축한 예금에 높은 이자를 줬다.

전세는 집주인들이 집을 살 때 모자란 목돈을 보충하는 통로였다. 전세 보증금이 이자 없는 은행 대출 역할을 한 것이다. 전세 보증금을 받아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가 연 10~20%에 육박해 월세보다 나았다. 전세 보증금은 불확실한 세입자의 신원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고, 집주인은 매달 월세를 걷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시골에서 집과 논을 팔아서 올라온 세입자도 매달 월세를 내기보다 목돈을 전세 보증금으로 맡겨두는 것이 편했다. 게다가 전세는 당장 가진 현금으로 살 수 있는 집보다 훨씬 넓고 좋은 집에 살 수 있게 해줬다. 전세는 목돈을 강제로 저축하게 해 나중에 집을 사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도 했다.

1976년 3월5일자 경향신문.

1976년 3월5일자 경향신문.

■ 집 없는 세입자의 설움

하지만 세입자의 ‘집 없는 설움’도 컸다. 1958년 민법에 전세 세입자의 권리가 명시됐지만 말뿐인 권리였다. 전세 계약을 6개월마다 맺어 세입자들은 집주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어머니는 밤이면 ‘주인집에 혼날까’ 봐 우는 아기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1963년 7월10일자 경향신문은 “다섯 식구를 거느린 실직 운전사가 돈이 없어 셋방을 비워주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부인, 세 자녀와 함께 집단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연을 전했다. 이 운전사는 불과 6개월 전에 월세로 이 셋방을 얻었지만,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세를 줘 10일 전부터 새로운 세입자가 마루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급격한 도시화로 서울에 많은 인구가 몰려들었지만 서울에는 집이 부족했다. 변두리 구릉지와 제방, 하천변 등에 무허가 주택이 들어섰다. 1980년 서울에서 반 이상은 남의 집에 살았다.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은 44.5%뿐이었다. 1976년 3월5일자 경향신문은 “서울 도봉구에 저소득층이 몰려 방 1칸이 작년보다 5만원 이상 오른 20만~30만원씩 나와도 방이 나오기가 무섭게 나가 방을 구하기가 힘들다”,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 일대의 셋방값이 지난해에 비해 20~30% 크게 올랐으나 전세나 월세로 내놓은 집이 없을 정도로 셋방의 인기가 크게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의 전세난은 ‘전세’가 부족한 것이지만, 당시는 ‘셋방’ 자체가 부족한 절대적 전세난이었다.

정부는 1981년에야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만들었다. 주택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서 전세 보증금을 떼이는 일이 다반사였던 때, 새 집주인에게도 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또 계약 기간을 최소 1년으로 정해 세입자의 숨통을 틔웠다.

현대식 다가구 주택과 초가집이 함께 있는 1981년 서울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 사진

현대식 다가구 주택과 초가집이 함께 있는 1981년 서울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 사진

■ 10~15년 주기 전세난, 이번엔 다르다

한국엔 1987년 이후 세 차례 전세난이 있었다. 1987~1990년은 경제 호황형 전세난이었다. 3저 호황으로 경제성장률이 10%를 웃돌면서 여유 자금이 부동산에 몰려 집값이 폭등했고, 전셋값이 그에 따라 뛰었다. 주택보급률이 70%로 여전히 낮았는데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입주를 준비하는 전세 수요가 늘었다. 전국 평균 전세가는 3년 만에 3300만원에서 5800만원으로 뛰었다. 갑자기 뛰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 외곽, 지하방으로 밀려나는 서울 시민들의 불만이 컸다. 게다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1990년부터 계약 기간을 2년으로 늘리면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렸다. 1990년 봄에는 전셋값 파동으로 17명의 세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다가구주택’ 건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지금 서울의 골목마다 늘어선 빨간 벽돌의 3~4층짜리 다가구주택이 그 유산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집값이 폭락하면서 전셋값도 떨어져 세입자들이 집주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逆) 전세대란’이 일어났다. 집주인이 빚을 내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자 1999년부터 다시 전세가가 급상승했다. 외환위기 때문에 주택 공급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실직·파산한 집주인들도 집을 날리고 전세로 몰렸다. 1999년 7000만원을 밑돌았던 전국 평균 전세가가 2002년엔 1억원을 돌파했다.

세 번째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한 후 찾아온 지금의 전세난이다. 현재의 전세난은 과거의 전세난과 양상이 다르다. 주택 재고가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빠르게 전환하고, 세입자가 전세(가급적 새집과 아파트)를 고집하면서 발생하는 상대적 전세난이다. 집값이 정체되고, 기준금리가 1%대에 다다를 정도로 낮으니 집주인은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다. 세입자는 전세의 주거비가 자가 주택, 월세보다 낮으니 전세 보증금이 집값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뛰어도 전세를 선호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세난은 저성장·저금리라는 장기 추세에 따른 구조적인 변화라서 단시간에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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