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빅스텝 시대 부동산 긴급 점검(상)

거래절벽에 드리운 하우스푸어 그림자

송진식 기자

매매시장 ‘한파’ 넘어 ‘빙하기’ 전망

금리 더 오르면 영끌족 타격 불가피

“없어요 없어. 앞으로 더 없겠네….”

지난 13일 찾아간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 A씨가 “매매가 좀 되냐”는 질문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날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한꺼번에 0.50%포인트 상향하는 ‘빅스텝’을 사상 처음으로 단행한 날이다. A씨 업소에는 몇달째 ‘매물 구함’ 팻말이 걸려 있다고 했다. 그는 “아파트값이 어찌될지 불확실하다 보니 팔려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그나마 대출이 나오는 소형 아파트가 거래되는데, 금리가 오르면 누가 대출을 받아 집을 사겠나”라고 말했다.

예고됐던 빅스텝이 현실화되면서 부동산 매매시장은 ‘한파’를 넘어 ‘빙하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빨라질 경우에는 하락 장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도 있다. 지금은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간 기싸움이 진행 중이지만, 금리가 더 오르면 빚내서 집을 산 집주인이 더 이상 이자를 감내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14일 한국도시연구소가 2006년 이후부터 지난 5월10일까지 신고된 주택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5월10일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총 5644건으로, 동기간 거래량이 가장 많던 2015년의 12.2% 수준에 불과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울 아파트 월별 거래량이 2021년 11월 이후 올 4월까지 6개월 동안 2000건 미만을 유지 중인데 이는 역대 최장기간·최저수준 거래량에 해당한다”며 “매매와 금리의 동조화가 매우 뚜렷하게 보이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급감하기 시작한 때는 한은이 0.5%였던 기준금리를 0.75%로 올리기 시작(2021년 8월)한 이후부터다.

거래가 급감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대출규제가 1차적 원인이다. 하지만 파는 사람은 고점 대비 손해를 보며 팔고 싶지 않고, 사는 사람은 지금의 높은 가격으로 살 의향이 적은 시장 심리도 최근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아파트를 구입한 직장인 이모씨(36)는 매달 이자로만 107만원을 내고 있다. 그는 “대출금의 원금은 전혀 갚지 못하고 이자로만 거의 버는 돈의 절반을 은행에 내고 있다”고 말했다.

■“매달 이자만 100만원 훌쩍, 집 팔지 고민”…내놔도 안 팔려

서울 아파트의 구매력지수
54.8로 역대 두 번째로 낮아
한은의 추가 빅스텝 조치 땐
집값 하락세 더 가팔라질 듯

이씨는 인근 공인중개소에 매도 의뢰도 해봤지만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없어 지금은 버티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했다. 그는 “이자에 원금까지 갚을 것을 생각하면 버겁긴 해도 아직은 감당할 수 있고, 재건축 이슈도 있는 단지라 좀 더 버티는 게 나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살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월급으로 집을 사기에는 집값이 너무 비싸졌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의 3월 기준 주택구매력지수(HAI) 집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의 HAI는 54.8로 역대 최저였던 지난해 12월(54.3)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HAI는 중위가구의 소득을 대출상환 가능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100 이하로 지수가 내려갈수록 소득에서 내야 하는 대출상환액 비중이 커진다. 예컨대 HAI가 54.8이라는 것은 중위가구가 대출을 받아 서울 아파트를 샀을 때 소득의 절반가량을 대출상환에 써야 함을 의미한다. 금융위기 여파로 하우스푸어 우려가 제기됐던 2012~2013년의 경우 서울 아파트 HAI는 70~80 정도로 지금보다 오히려 높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한동안 집값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떨어질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에서 높은 이자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출로 무리하게 집을 사는 의사결정은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며 “깊은 거래 관망 속 저조한 주택거래와 가격 약세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거래량 급감이 지속되면서 집값은 서서히 하락하고 있다. 서울의 3.3㎡(1평) 매매가격은 지난해 3250만원에서 올해 3198만원으로, 경기는 1708만원에서 1636만원으로 하락했다. 인천도 1219만원에서 1175만원으로 떨어졌다. 서울·경기·인천의 매매가가 동반 하락한 건 금융위기라는 외부 요인이 컸던 2009~2010년을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금리는 주택가격과 음(-)의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되고, 대체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금리 충격은 주택가격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은의 빅스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13일(현지시간)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9%를 넘어선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에서는 그레이트스텝(한 번에 금리를 1%포인트 올리는 것) 얘기가 나온다.

아파트 매매거래가 계속 침체되고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경우 ‘영끌’을 통해 주택을 매입한 구매자들의 금리 부담이 증가하면서 과거와 같은 ‘하우스푸어’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통상 인플레이션 시기에 부동산은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져왔지만 고인플레이션·고금리 상황이 계속되면 부동산 역시 구조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로는 국내 금리에 영향을 주는 미국 연준이 8~9월 중 금리를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주요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경기침체 여파에 따라 부동산 가격의 30~40%가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할 수도 있다”며 “특히 중저가 아파트, 영끌을 통한 구매자들이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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