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하는 정부…“준공 후, 옥석 가려야”읽음

주영재 기자

공공임대 예산으로 고가 매입 땐 공급량 감소

“건설사에 미분양 책임 명확히 물어야” 지적

[주간경향] 부동산 경기가 차갑게 식으면서 미분양 주택이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발 금리 인상의 여파로 주택 구입 부담이 커진 데다 집값 하락으로 분양가가 비싸게 느껴지면서 아파트 청약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미분양이 늘면 자금력이 약한 건설사는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지난 1월 2일 준공 전 미분양 주택에 대해 5조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보증상품을 신설해 업계 지원에 나섰다. 추가로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 매입도 검토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3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시장에 나온 미분양 주택을 정부와 공공기관이 매입하거나 임차해 취약계층에 다시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밝힌 뒤의 움직임이다.

부동산 경기 조절을 위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고, 이를 취약계층에 임대한다는 방안은 나름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세금을 투입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더군다나 지난해 대비 약 5조원이나 삭감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상대적으로 비싼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 사용하면 전체 매입임대주택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공적자금 투입에 준해 미분양 건설사의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 매입임대주택 목적에 맞는 아파트를 선별해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1월 8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단지

지난 1월 8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단지

분양가보다 15% 낮아도 특혜 논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5만8027호다. 전월 대비 22.89% 증가했다. 미분양은 대구·경북지역이 가장 심각하다. 수도권도 적지 않다. 대구가 1만1700호로 가장 많고, 경북 7667호, 경기 7037호, 인천 2471호다. 지금 추세라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년 만에 6만 호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분양 위험선을 6만2000호로 보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건물이 완성된 후에도 계약자가 나타나지 않아 준공 후 미분양이 발생한다.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1월 말 기준 7110호다. 서울의 민간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994호로 이중 준공 후 미분양은 340호에 이른다.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가 서울에서 준공 후 미분양을 기록한 대표 단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12월 21일 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19~24㎡ 36채를 79억5000만원(1호당 평균 약 2억2000만원)에 매입했다. 1호당 평균 분양가인 2억5000만원보다 약 15% 낮아진 금액이다. 이 아파트는 4호선 수유역 8번 출구에서 직선거리로 400m 떨어진 역세권에 속한다. 분양가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2월 분양 이후 9월까지 무려 7차례나 무순위 공고를 냈는데도 전체 216가구 중 절반 가까이가 미분양으로 남았다.

LH는 이 주택을 청년용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다만 LH는 이번 주택 매입은 최근 정부가 검토에 들어간 미분양 주택 매입과는 관련이 없으며, 지난해 책정된 매입목표 물량에 따라 매입했다고 밝혔다. LH 관계자는 “청년 매입임대는 시세의 40~50% 수준으로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며 “주 수요층인 청년들을 고려해 직주(학주)근접한 곳으로 교통과 생활편의시설을 이용하기 편한 역세권 중심으로 매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LH 측은 “매입임대주택을 매입할 때 주택의 미분양 여부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아니며, 임대수요와 교통·생활편의, 주택의 품질 등이 매입 의사결정에 있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지난 1월 18일 발표한 논평에서 “최초 분양가보다 15% 할인해도 수차례 미분양된 주택을 LH공사가 추가 할인없이 매입하는 것은 사업을 잘못한 건설사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조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LH 측은 “매입임대사업은 객관적 가치판정을 위해 관련 규정에 따라 공인된 감정평가기관에서 평가한 감정평가금액으로 매입하고 있다”면서 “미분양 여부나 부동산 경기는 감정평가기관이 평가 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지 LH가 이를 근거로 감정평가금액을 조정해줄 것을 임의로 요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안 하는 게 최선, 매입해도 준공 후 미분양만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경기 조절을 위해 미분양 아파트 매입은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것은 건설 분야 기업의 도산 방지에 효과가 있고 공공임대 재고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가 매입을 해선 안 되고, 미분양 건설사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인 이강훈 변호사는 “과거 은행이 부실해졌을 때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항상 책임을 물었다”면서 “최근에 미분양된 곳의 건축비를 계산해보면 상당히 비싸게 책정했다. 이런 걸 그대로 인정해 고가로 사줘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말도 안 되는 지원이지만 지금처럼 미분양 사태로 인한 위기가 금융시장으로 전이되면 국가경제 전반에 주름살이 생길 수 있으니 조금은 예외적인 선택이 필요하긴 하다”면서도 “사업자로서의 선택에 대한 리스크는 건설사가 책임지도록 하는 구도는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도 수요가 있는 곳을 골라 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매입임대주택은 20년 이상 임대를 해야 하는데, 매입하고도 공실이 계속되면 LH의 손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를 ‘우량주’로 꼽았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저평가된 우량주식을 사는 것처럼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싸게 사서 사회적 약자에게 임대로 전환하면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제값을 주고 사면 건설업계만 이익을 보게 된다. 미분양이 났다는 건 그 값으로는 시장에서 사지 않겠다는 것이니 당연히 그 값에 사면 안 되는 게 상식이다.”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하는 정부…“준공 후, 옥석 가려야”

정부 당국은 미분양 주택 매입을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단 제일 좋은 건 미분양 주택 매입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이 정상화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정책의 우선순위에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도 업계의 자구 노력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고분양가로 미분양이 난 건, 어떻게 보면 건설사가 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걸 분양가대로 다 주고 살 순 없다. 건설사가 본인들의 책임을 일정 정도 함께 져야 한다”고 말했다.

매입 대상도 준공 후 미분양으로 좁힌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준공 전 미분양으로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으니 PF보증상품으로 자금 조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일단 준공 전 미분양은 유동성 공급으로 접근하고, 직접 매입은 준공 후 미분양만 보고 있다. 이것도 모든 걸 다 사준다는 게 아니라 수요가 충분한 양질의 주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비 대폭 삭감된 공공임대 예산을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 사용할 경우 전체 임대주택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토부 측은 충분히 예산 범위에서 맞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에서도 옥석을 가려 산다. 업계 자구 노력을 전제로 한다는 건 분양가 할인이 대폭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현재 있는 예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둔촌주공도 (나중에 준공 후 미분양이 될 경우) 검토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나 생각은 있지만,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건설사가 수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우린 오히려 지방의 중대형 평형에서 미분양이 많이 날 것으로 보고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주택비축은행 통한 공적 매입”

업계에선 2009~2010년 부동산 침체기 때 이명박 정부가 활용했던 구조조정리츠를 사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LH가 분양가의 60% 부근에서 매입을 약속하면 이를 바탕으로 분양가의 70% 수준에서 민간투자자가 사들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9개 리츠가 3343세대의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했고, 모두 LH의 매입 확약 가격보다 높은 분양가의 81% 수준에서 매각했다. 다만 이런 방식을 지금처럼 매입임대주택(공공단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기존의 주택을 건물주로부터 매입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임대를 하는 주택)용으로 도입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강훈 변호사는 “민간자본을 투입하면 수익률을 맞춰줘야 해서 저렴한 가격에 임대주택을 내는 건 쉽지 않다”면서 “매입임대주택은 법적으로 20년간 임대용으로 묶여 있어야 하는데, 어떤 민간자본도 그럴 의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으로 주택도시기금으로 ‘토지주택비축은행’을 설립해, 매입하는 방식을 마련하자고 그는 제안했다. 이 변호사는 “경기조절 측면에서 공공임대주택이나 매각 용도로 공공이 주택을 갖고 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 제도가 없으면 LH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공공임대사업을 하면 할수록 부채가 늘어나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토지주택비축은행 같은 공공펀드가 주택을 매입해주면 LH나 SH가 돈이 묶이지 않고, 다음 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공공임대 건설에 따른 부채를 사업손실에 따른 부채와 별도로 처리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 회계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은 의무임대기간이 끝나면 원칙적으로 매각도 가능한 자산인데, 현재 상태의 임대수익으로만 자산을 평가하니, 적자가 큰 것처럼 표시된다. 이 변호사는 “지금은 이런 기관들이 공공임대를 늘리려고 해도 채권발행 한도 때문에 매번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해서 사업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분양 시장을 선분양에서 후분양 위주로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팀장은 “선분양제하에서는 소비자가 모델하우스만 보고 주택을 사기 때문에 중간에 부실공사가 있어도 따질 수 없고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 건설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라면서 “그래서 건설 경기가 좋으면 한탕주의로 우후죽순 건설하면서 지금 같은 미분양 사태가 난다. 선분양을 해소하고 70~80% 이상 건물을 지은 후 분양하도록 하면 건설사도 함부로 지을 수 없고 자기자본으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단기 이익을 노린 건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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