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 500%로 완화에…“리모델링 접자” “극소수 아파트만 해당”

류인하 기자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이후 리모델링 아파트단지 내홍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 아파트 내부에 리모델링에 찬성하는 현수막과 재건축에 찬성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나부끼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 아파트 내부에 리모델링에 찬성하는 현수막과 재건축에 찬성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나부끼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임대주택·기여금 등 ‘조건’에도 일부 주민들 “재건축 선회” 요구
대부분 추진 단지는 요건 해당 안 돼 건설업계 “리모델링이 최선”

‘서울형 리모델링 1호’ 서울 송파구 문정동 문정시영아파트에서는 최근 재건축 설명회가 열렸다. 지난 3일 기자가 방문한 단지 내에는 ‘동굴 같은 리모델링 설계 결사 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18년 6월부터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리모델링 ‘5부 능선’으로 불리는 건축심의를 앞둔 상황에서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지금이라도 재건축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회 주최자들은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한 만큼 안전진단 통과는 물론 용적률 상향조정으로 사업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 특별법 발표에 리모델링 단지 내홍

문정시영의 용적률은 216%다. 재건축 사업성을 가르는 용적률(180%)을 상회한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 선수 숙소 용도로 지어져 전체 1316가구 중 가장 큰 평형이 전용 46.26㎡(13.9평)로 전 가구 초소형 평형 단지다.

각 동별로 휠체어 장애인 경사로와 건물 복도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 재건축을 하더라도 가구당 대지지분을 16.5~29.7㎡(5~9평) 이상 가져가기 어렵다. 비행안전구역에도 포함돼 있어 용적률 상향도 쉽지 않다. 바로 옆에 공사 중인 ‘문정136재건축’ 단지 역시 층고제한으로 최고층 높이가 18층(평균 14층)이다. 사실상 재건축 실익이 없는 단지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최근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표하면서 서울지역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내홍’을 겪고 있다. 전국에서 리모델링이 추진 중인 단지는 138곳으로 이 중 절반인 68곳이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발표로 현실적으로 리모델링 외에는 대안이 없는 노후단지들까지도 재건축으로 돌아서려는 분위기다.

한 리모델링주택조합 관계자는 “일부 리모델링 추진 아파트는 조합이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항의·민원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정부의 용적률 500% 완화 이야기만 듣고 현실적으로 재건축이 불가능한 단지조차 ‘리모델링을 엎고 재건축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리모델링주택조합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매일 사무실로 찾아와 ‘나라에서 용적률 500%를 준다는데 재건축을 했어야지 우리 돈만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다’고 화를 내고 돌아가신다”라고 말했다. 2021년부터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온 송파구 거여1단지는 이달 11일 리모델링 사업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투표 결과에 따라 2년간 진행해온 리모델링 사업은 중단될 수도 있다.

■ ‘용적률 500%’ 현실적으로 어려워

현재 리모델링 사업을 중단하고 재건축으로 선회하려는 조합원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용적률 500%’다. 최대 500%까지 용적률을 높이면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이 사업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리모델링 단지들은 용적률이 200%를 넘는다.

문제는 정부와 서울시가 모든 단지에 종상향(용도지역 변경)을 통한 용적률 완화를 허용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특별법에 따르면 정부는 용적률 완화혜택을 받은 단지에 대해서는 용적률 상향분의 절반을 임대주택 공급, 도로·상하수도 등 생활사회간접자본(SOC) 확충, 기여금 납부 등으로 돌려받기로 했다. 그러나 리모델링 추진단지들은 대부분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메인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공공시설 기부채납으로 내놓을 대지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용적률 상향분의 절반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 역시 주민들의 저항이 크다. 역세권 종상향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단지도 많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관계자는 “모든 도시는 계획에 맞춰서 용적률이 정해지는 것인데 기존의 상하수도, 의료, 도로교통, 교육, 행정 등을 모두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모든 단지들이 종상향으로 500%가 가능할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표퓰리즘’일 뿐”이라며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은 엄밀히 1기 신도시 지원법으로 봐야 한다. 현재 서울에서 진행 중인 리모델링 단지들은 리모델링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정부의 노후계획도시 특별법과 관계없이 기존 서울시 계획대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안에 따르면 특별정비구역 설정 등은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명시돼 있다. 리모델링 업계에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리모델링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는 리모델링 관련 규제 완화 방안이 가구 수 증가 범위 확대(15→20%) 외에는 담겨 있지 않다.

리모델링업계에서는 조합원 동의서 징구절차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 절차는 조합설립→안전진단→건축심의→행위허가→이주·착공→입주 순이다. 이 과정에서 조합설립 전·건축심의 후 총 2차례에 걸쳐 조합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를 1번으로 줄여달라는 것이다. 서정태 서울시리모델링주택조합 협의회 회장은 “동일한 동의서를 2차례 요구함으로써 비용 및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오는 4월 발표 예정인 리모델링 내력벽 철거 관련 연구용역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내력벽은 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기둥’에 해당하는 벽이다. 현재도 가구 내 내력벽 철거는 일부 허용되지만 가구 간 내력벽 철거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내력벽 철거기준이 완화될 경우 리모델링 활성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연구용역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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