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이 ‘설국열차’를 현실로 만들지도 몰라읽음

이정호 기자
2019년 5월 스타링크 사업에 따라 처음 발사된 수십기의 소형 인공위성이 지구 궤도에서 방출을 기다리고 있다.  스페이스X 제공

2019년 5월 스타링크 사업에 따라 처음 발사된 수십기의 소형 인공위성이 지구 궤도에서 방출을 기다리고 있다. 스페이스X 제공

우주 인터넷 구축 위한 인공위성
스페이스X 소속만 1만2000여기
수명 다하면 대기권 추락하는데
연구 결과, 매일 ‘2톤’ 추락 예정

어두침침한 열차 안에서 피곤에 지친 듯한 한 남성이 퀭한 눈을 뜬 채 앉아 있다. 검은 제복과 정장을 입은 한 무리가 이 남성을 붙잡더니 옷의 소매를 가위로 잘라 팔을 어깨까지 노출한다. 이들은 곧바로 남성의 쭉 뻗은 팔을 달리는 열차 밖으로 강제로 내민다. 남성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고, 몇 분 뒤 확인한 그의 팔은 단단한 금속처럼 얼어붙어 있다. 둔기로 남성의 팔을 내리치는 만행을 저지른 무리는 피지배층인 열차 꼬리칸 탑승자가 지켜야 할 ‘복종의 규칙’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영화 <설국열차>의 배경은 전 지구가 극단적인 빙하기에 빠진 상황이다. 온난화를 누그러뜨리겠다며 인류가 대기에 뿌린 특수물질이 야외에서 그 무엇도 생존할 수 없는 강추위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과학계에서 지구 기온이 예기치 못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걱정이 나왔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설국열차>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어도 기후 시스템 전반을 흔들 수 있는 인공적인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 스타링크가 알루미늄 흩뿌려

과학계가 지목하는 ‘용의자’는 바로 인공위성이다. 지난달 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서 이른바 ‘우주 인터넷’ 구축을 위해 발사되는 인공위성이 지구 기후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주 인터넷은 대양이나 사막, 밀림 등 외딴곳을 포함해 지구 어디에서나 초고속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서비스이다. 기지국 역할을 하는 통신용 인공위성을 지구를 에워싸듯 수백㎞ 고도에 잔뜩 올려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개념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시작한 ‘스타링크’ 사업이 대표적이다. 스페이스X는 2027년까지 중량 260㎏짜리 소형위성 1만2000여기를 띄울 예정이다. 모두 합치면 3100t에 이른다. 현재까지 1700여기가 발사됐다. 그런데 모든 기계는 수명이 있다. 연구진 계산에 따르면 스타링크 사업에 속한 인공위성의 발사가 예정대로 끝나면 수명이 다한 위성 약 2t이 매일 대기권으로 추락한다. 문제는 위성 동체 대부분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 하늘에 거울 얹은 효과

2019년 6월 칠레에 소재한 유럽남방천문대 소속 초거대망원경(VLT) 위로 인공위성이 궤적을 그리며 이동하고 있다. 유럽남방천문대 제공

2019년 6월 칠레에 소재한 유럽남방천문대 소속 초거대망원경(VLT) 위로 인공위성이 궤적을 그리며 이동하고 있다. 유럽남방천문대 제공

위성 동체 대부분 알루미늄 제작
대기 마찰 과정서 다량 흩뿌려져
지구로 오는 햇빛, 거울처럼 반사
예기치 못한 온도 저하 만들 수도

‘사달’은 여기서 벌어진다. 인공위성이 대기와 마찰하는 과정에서 동체에 함유된 알루미늄이 하늘에 다량으로 흩뿌려진다. 알루미늄은 반짝이는 거울과 같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햇빛을 되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지구에 예기치 못한 온도 저하가 닥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사실 알루미늄 같은 물질을 대기권에 뿌리는 건 인위적으로 더위를 억누르려는 ‘지구공학’ 연구자들의 아이디어다. 탄소 감축 노력을 기울여도 온난화 속도를 충분히 늦추기 어려울 때를 대비한 최후의 카드로 논의된다. 하지만 복잡한 기후 시스템을 교란할 수 있고 지구를 구할 근본 처방도 아니어서 현실화는 불투명하다. 우주 인터넷용 인공위성이 잇따라 다량 추락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위험 가능성이 큰 지구공학적인 조치가 갑자기 실행되는 셈이다.

앞으로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사업에 따른 위성을 최대 3만기 더 발사할 예정이다. 원웹과 아마존 등 다른 기업도 이 사업에 가세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중대해질 수 있다. 최근까지 우주 인터넷 구축으로 인한 문제는 너무 많은 인공위성이 밤하늘을 떠다녀 천문학계의 별 관측을 방해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김한택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재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 처리 방법에 관한 구속력 있는 국제규칙은 없다”고 설명했다. 국제우주쓰레기조정위원회(IADC) 같은 조직이 있긴 하지만 인공위성 처리 방식을 강제로 규제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우주와 지구환경이 연결돼 있으며 한 행위자의 행동이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을 편하게 쓰려는 욕구가 지구 기후의 치명적인 교란이라는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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