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더 깊어진 기후위기에 청소년들도 거리로···“더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김기범 기자
2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한 청소년들의 모습. 김기범기자.

2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한 청소년들의 모습. 김기범기자.

“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두렵다는 것이 오늘 제가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한 이유인 것 같아요. 미래에 기후위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죽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3년 만에 열린 24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해 본집회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푸른꿈고등학교 최민희양(18·2학년)이 밝힌 이날 행진에 동참한 이유다. 최양을 포함해 이날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한 어린이·청소년들이 말한 참석 이유는 바로 정부로 대표되는 어른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상황을 이대로 두고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린이·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뭔가를 해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서울 시청역·숭례문 인근에서는 시민단체·정당·노동조합 등 각계각층의 400여개 단체가 모여만든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가 주최한 기후정의행진이 개최됐다.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주제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주최측 추산으로 약 3만5000명가량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이날 집회는 국내에서 열린 환경 분야 집회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로, 3년 전인 2019년 열린 기후정의행진 때는 약 5000명가량이 참석했었다. 이처럼 참가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에 대해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는 3년이 지나는 동안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넓고, 깊어졌으며 위기감도 높아졌기 때문으로 해석하면서 이번 기후정의행진이 “한국의 기후운동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참석 인원이 크게 늘어난 점 외에 3년 전 행진 때와 올해 기후정의행진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환경단체뿐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와 정당, 지역모임, 노동조합 등이 대거 참여한 점이다. 장애인단체,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단체 등 얼핏 기후위기와는 관계가 적어보이는 단체들도 다수 참석한 이날 행사의 참석자들은 시청광장 인근부터 숭례문까지 도로를 가득 메웠다.

2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는 푸른꿈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청소년들과 교직원들. 김기범기자

2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는 푸른꿈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청소년들과 교직원들. 김기범기자

3년 전에 비해 어린이·청소년 참가자들이 많이 참석한 것도 눈에 띄는 점이었다. 전북 무주의 대안학교인 푸른꿈고등학교의 경우 전교생 60여명 중 사정이 있는 10여명을 제외한 50여명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최양은 “학교에서 다같이 행진에 참석하면 좋은 경험이 되겠다고 뜻이 모아져서 참석하게 됐다”며 “청소년들은 지금 당장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지역별로 학교 단위나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단체로 참석하거나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청소년들도 많았다. 서울 은평구에서 친구들과 함께 행진에 참석한 김진하군(15·가명)은 “뉴스를 통해서, 날씨를 통해서 매년 지구가 계속 더워지는 것을 실감하고 있고 지구가 아무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가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정부가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모여서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최군은 “이렇게 많은 이들이 뜻을 같이 한다는 것에 놀랐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여서 기후정의를 주장하면 정부도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활동에 계속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기후위기에 대해 잘 몰랐는데 중학교에 들어와 환경 교육을 받으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2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서 발언하고 있는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김보림씨(앞줄 왼쪽 첫번째)와 공공운수노조 금화PSC지부 소속의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박종현씨(앞줄 가운데). 김기범기자

2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서 발언하고 있는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김보림씨(앞줄 왼쪽 첫번째)와 공공운수노조 금화PSC지부 소속의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박종현씨(앞줄 가운데). 김기범기자

이날 오후 3시부터 열린 기후정의행진 본집회에서는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청소년과 청년 대표로 나선 청소년기후행동 소속의 김보림씨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사회 말고는 우리가 안전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면서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임을 우리 모두가 외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착취와 불평등을 강화해온 경제 시스템이 아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을 대표해 참석한 공공운수노조 금화PSC지부 소속의 박종현씨는 “10년째 발전소 유지·보수 업무를 하면서 밤낮없이 발전소가 차질 없이 굴러가도록 일해온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기후위기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2030년 내에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 예정이 되었지만 정부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며 “정의로운 전환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지만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10년 넘게 일한 곳을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발전소 폐쇄 후 일자리에 대한 걱정으로 노동자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되고, 제대로 된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년 전 행진 때와 이날 기후정의행진에서 달라진 또다른 점은 참가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참가자들이 든 피켓과 유인물에는 ‘기후재난은 불평등으로 인한 재난’, ‘불평등 해소가 기후위기’ 등 국가 내의 빈부 격차, 지역 차별, 빈국과 부국 간의 격차, 에너지 불평등 등 성장을 위주로 삼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인한 다양한 불평등이 기후재난의 원인이자 결과임을 지적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본집회 이전 실시된 사전 자유발언대에서는 ‘녹색성장’이라는 용어 역시 녹색을 빙자한 성장 위주의 정책이기에 기후위기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발언들도 나왔다.

이날 본집회의 ‘기후재난 최전선 당사자 발언’에서 젠더·장애·인권 분야 대표로 나선 문예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얼핏 생각하면 기후재난과 장애인 상관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코로나나 메르스, 사스 등 환경 문제로 인한 국가적 질병 상황 때 장애인들이 죽어나가도 국가와 사회는 전혀 눈여겨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일어났을 때 국가가 한 행동은 장애인이 감옥 같은 수용시설, 병원에 격리·방치한 것이었다”며 “이로 인해 실제 청도의 정신병원 같은 곳에서는 수십명의 장애인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말했다. 문씨는 “지난 8월 대홍수 속에서는 발달장애 장애인과 가족들이 처참하게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며 “국가와 사회는 이렇게 누구나 누려야 하는 안전에 대한 권리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장받지 못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문예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왼쪽에서 세번째). 김기범기자

2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문예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왼쪽에서 세번째). 김기범기자

본집회를 마친 후 3만5000여명의 참가자들은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은 시청역에서 출발해 광화문, 종각, 을지로1가를 거쳐 다시 시청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진행될 예정이다. 행진에 이어 6시에는 다시 시청역·숭례문 부근에서 문화제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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