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 전남대 해양학과 교수 “3년째 라니냐…동남아 위쪽 건조해져”
[주간경향]“우리가 토양수분, 즉 땅이 얼마나 말라 있는지 그 정도를 갖고 가뭄 예측을 하는데요. 여기 갈색이 보이죠. 딱 (남부지역) 여기만 갈색이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거예요.” 지난 2월 20일 정지훈 전남대학교 해양학과 교수가 연구실 모니터 앞에서 가뭄 예측 자료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정 교수가 최근 3개월의 표층 토양수분을 조사한 결과 한반도 표층 이하(10㎝~1m)의 토양수분은 남부지방, 특히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지난 3개월 동안 평년 이하의 수준을 보였다. 가뭄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표층에서 깊이 내려갈수록 남부지방 쪽이 말라 있죠. 이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중국 남부지역과 연결된 현상이에요.”
기상청이 대기의 흐름을 컴퓨터에 집어넣어 가상의 대기를 구현해 기상예보를 하듯, 땅속 수분을 수치모델로 만들어 가뭄을 예측할 수 있다. 기상청이 6개월간 누적강수량을 보고 평년보다 적을 경우 기상가뭄으로 정의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뭄에 접근한다. 땅속 수분을 직접 관측하기도 하지만, 모든 곳을 파악할 순 없으니 미국의 그레이스(GRACE) 위성의 중력자료를 활용해 수자원변화량을 파악하고 있다. 지하수가 마르면 그 무게가 빠지면서 중력이 변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남부 가뭄, 초여름 돼야 해소될 듯
정 교수는 2015년 출범한 기상청 가뭄 특이기상연구센터의 센터장이다. 기상청의 가뭄 연구과제를 받아 전남대, 광주과학기술원, 세종대 등의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한반도 가뭄 발생의 원인을 파악하고, 기후예측기술을 적용해 가뭄을 장기예측할 수 있는 체계를 구현하는 게 목표다. 정 교수는 “지금 예측성은 3~4개월이 최대치이고, 엘니뇨나 라니냐의 경우 1년 전부터 예측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의 조사결과를 보면 호남지역의 표층 토양은 지난해 11월에서 올해 1월 25일에 약하게 강수가 내리면서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깊이 3m 깊이까지 고려한 전체 토양수분은 평년에 비해 최대 20% 가까이 낮은 상태를 보이고 있다. 중간에 비가 오면 잠시 평년 수준을 회복하지만, 곧 증발하거나 강으로 흘러가면서 다시 내려갔다. 정 교수는 최근 센터 자체 조사결과와 미국 기상청의 조사결과를 종합해 올해 3~6월 사이의 토양수분을 예측했다. 호남지역 표층 이하의 수분이 늘어난다면 가뭄이 해소된다는 뜻일 텐데 결과는 긍정적이지 않다.
“좋아질 줄 알았는데 지금 예측은 6월까지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요. 6월까지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토양 수분이 평년 이하를 보이고, 강수는 남해안 중심으로 평년보다 적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5~6월에 중부, 동부 지역에서는 토양수분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남부지방의 토양수분 건조화가 다시 심화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4월을 전후해 이동성 저기압이 들어오면서 비가 내려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도 있지만 확신하긴 어렵다.
기후예측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미국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국의 기상청은 기후예측 자료를 우리나라에 있는 APEC기후센터(APCC)에 보낸다. 이 자료의 전체 평균을 내서 미래 예측값으로 활용한다. 이 APCC 자료로 올해 6월까지 예측하면, 2월은 평년 이하의 강수, 3월 이후엔 평년과 유사한 강수가 예측된다. 그래서 5월 정도엔 평년 수준으로 회복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좀더 희망적인 시그널이죠. (APCC 자료로) 3~4월이 되면 평년으로 돌아가면서 가뭄이 해소되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우리 통계 모델로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결국 긍정적 시나리오로는 3월, 부정적 시나리오로는 5월은 지나야 어느 정도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트리플 딥’ 라니냐가 한 원인
남부 가뭄은 기후 현상을 다루는 관점에서는 너무나 지역의 크기가 작다. 지난해 여름 강우벨트가 너무 좁게 나타났는데 하필 남부지방 위쪽에만 머물면서 비가 오지 않았고, 태풍도 남부지방 오른편으로 비껴가면서 상대적으로 강수가 적었다. 남부 가뭄은 이런 불운이 겹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라니냐(La Nina)다.
라니냐는 엘니뇨(El Nino)와 반대되는 현상이다. 적도 태평양의 가운데 있는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의 온도가 3개월 평균 해수면의 온도보다 5℃ 이상 낮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 첫 달을 라니냐의 시작으로 본다. 엘니뇨는 5℃ 이상 높을 때를 뜻한다. 지난 2월 12~18일 해수면 온도 현황을 보면 열대 태평양의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의 해수면 온도가 26.2℃로 평년보다 0.5℃ 낮은 상태에 있다. 라니냐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라니냐가 나타나면 필리핀 등 동태평양은 수온이 올라가 비가 많이 내린다. 파키스탄에서 지난해 6월 기록적 폭우가 발생해 국토의 3분의 1이 홍수 피해를 입은 게 그 예다. 반면 스펀지를 짜면 양 끝으로 물이 빠지고 가운데는 마르듯이 라니냐로 비가 내리는 지역 위쪽으로는 건조해진다. 그런 건조벨트가 남부지방에 오랫동안 걸쳐 있다. 라니냐는 일반적으로 2~7년에 한 번씩 발생해 1년 이내에 끝나는데 이런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고 3년째를 맞았다.
토양이 건조한 상태를 고동색으로 표시한 예측 지도에 정 교수의 손이 갔다. 그 아래는 파란색이다. “지금 라니냐 현상으로 해수면 온도가 높은데 기후역학적으로 그 위 지역은 건조하게 돼 있어요. 하필이면 그 가장자리에 남부지방이 딱 걸쳐 있는 거예요. 작년 내내 그랬어요. 재작년에도 그랬고요. 라니냐가 지금 트리플 딥을 보이고 있습니다. 3년 연속 이어지는 건데 한 세기에 한두 번 정도 있는 드문 현상입니다.”
“라니냐는 올여름부터 비활성 상태가 되고 그 이후 소멸할 것이라고 전 세계 기관들이 비슷하게 예측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죠. 평년으로 돌아가면 상황은 끝날 것 같은데 문제는 4~5월에 물이 제일 많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에 끝나야 좋은 거죠. 괜찮을 것 같다가도 전체적으로 말라 있어서 산불 등 여러 가지로 걱정입니다.”
라니냐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강해질 수 있다는 학설도 있다. 라니냐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면, 앞으로 이런 형태의 가뭄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해 2월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는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해 해류 흐름의 변화가 강화되고 라니냐 현상이 점차 증가해갈 것”이라면서 잦은 라니냐 현상으로 20세기에 비해 가뭄 발생이 10배 정도 증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폭염과 가뭄 동시 발생 가능성 높아
정지훈 교수는 2020년 11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동아시아 내륙 지역에서 지난 20년 동안 전례 없이 나타난 폭염·가뭄 동시 발생 현상을 분석한 논문이다. 관측 기록이 없는 과거를 분석하기 위해 지난 260년 동안의 나이테를 분석해 폭염의 정도와 토양수분의 변화를 파악했다. “과거엔 더워지면 비가 많이 오는 형태였습니다. 땅에서 증발이 일어나면서 더위를 상쇄했죠. 그런데 강한 더위가 연달아 몇 년 지속되면, 그 지역의 토양이 쫙 말라버립니다. 어느 정도 이상 말라서 사막처럼 되면 더 뜨거워지는 거죠. 최근 이 지역 고기압이 엄청나게 강해진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정 교수는 폭염이 가뭄을 부르고, 가뭄이 다시 폭염을 부르는 이런 되먹임 현상으로 동아시아의 폭염·가뭄 동시 발생 추세가 이미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매년 군을 동원해 이곳 사막 지역에 나무를 심지만 한 해만 지나면 다 말라 죽는다고 했다. “내륙의 극한 가뭄은 아직 우리가 겪지 않았을 뿐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위험입니다. 조금만 확장되면 한반도를 덮치니까요. 이런 메커니즘은 기후변화에 의해 더 강해질 것 같고요. 결국 동아시아 내륙에서 폭염·가뭄을 일으키는 힘과 라니냐에 의한 가뭄의 가능성이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인 거죠.”
한반도와 같이 삼면이 바다인 곳은 원래 지구온난화가 되면 대기 중에 수증기가 많아지면서 비가 더 많이 내린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하지만 남부 가뭄처럼 좁은 지역에서 극한 가뭄이 발생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우리나라의 온난화 시나리오를 보면 비가 많아지는 쪽으로 예측하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가뭄을 대비 안 해도 되잖아요. 그래선 안 되는 이유는 이런 극한 현상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에요. 요즘 기상예측의 핵심 주제가 이 극값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폭염과 가뭄, 산불까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클라이밋 컴파운드’ 현상도 우려스럽다. “전 세계가 연결돼 있잖아요. 유럽에서 폭염이 일어나면 일주일 있다가 동아시아에도 폭염이 일어나곤 하죠. 그래서 이런 걸 예측하는 작업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폭염형 급성 가뭄도 지난 10년 사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8년 서울을 보면 온도가 40℃까지 올라간 후 한 달 만에 급성 가뭄으로 토양 수분이 쫙 마릅니다. 원래 여름에는 산불이 안 나는데 급성 가뭄이 늘면 여름철 산불이 나타납니다.”
몽골의 사막화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찬란했던 문명도 기후의 변화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정 교수는 “옛 기록을 보면 중동지역도 엄청나게 비옥할 때가 있었어요. 기후변화로 완전히 사막화가 됐죠. 돌이킬 수 있는 메커니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는 동안에는 올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가뭄의 가능성을 늘 잊지 않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남 가뭄도 봄철에 이동성 저기압이 들어와 비가 많이 한두 번만 와도 해결되거든요. 그럼 또 관심이 싹 사라집니다. 홍수 대비로 물을 다 빼놓을 수도 있죠. 물관리 측면에서도 기후 예측은 더 관심을 두고 보강해야 할 분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