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타결된 ‘공해생물다양성협약’···공해 30% 보호할 ‘역사적 사건’읽음

김기범 기자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유엔 국가관할권 이원 지역의 생물다양성(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이하 BBNJ) 협약’ 관련 회의가 개최된 미국 뉴욕 유엔본부 인근에서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촉구하는 프로젝션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유엔 국가관할권 이원 지역의 생물다양성(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이하 BBNJ) 협약’ 관련 회의가 개최된 미국 뉴욕 유엔본부 인근에서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촉구하는 프로젝션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지난 4일(현지시각) 38시간에 달하는 마라톤 회의 끝에 최종 타결된 ‘유엔 국가관할권 이원 지역의 생물다양성(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이하 BBNJ) 협약’의 골자는 공해(公海)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해양 자원을 공정하고, 지속가능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다량의 온실가스를 저장함으로써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공해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한 환경영향평가 제도 도입도 핵심적인 내용이다.

특히 세계 각국이 이번에 합의한 내용 가운데 ‘2030년까지 공해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해양환경보호에 있어 진일보한 내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구 바다 전체의 64%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임에도 별다른 제약없이 어업이나 채굴 등 다양한 인간활동에 노출되어온 공해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체계가 처음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 공해 가운데 현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면적은 2%에 불과하다. 이 같은 성격 때문에 BBNJ는 ‘공해생물다양성협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배타적경제수역(EEZ) 너머의 해역을 의미하는 공해는 영해나 EEZ처럼 국가 관할권이 미치는 해역과 달리 해양환경을 보호할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엔에서는 국가 간 구속력이 있는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공해의 해양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취지의 논의가 2004년 유엔 총회부터 시작된 바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유엔 국가관할권 이원 지역의 생물다양성(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이하 BBNJ) 협약’ 관련 회의가 개최된 미국 뉴욕 유엔본부 인근에서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촉구하는 프로젝션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유엔 국가관할권 이원 지역의 생물다양성(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이하 BBNJ) 협약’ 관련 회의가 개최된 미국 뉴욕 유엔본부 인근에서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촉구하는 프로젝션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환경단체와 과학자 들은 새 협약에 따라 공해의 30%가 보호구역이 되면 이 해역에 사는 생물들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캐나다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총회에서 세계 각국이 2030년까지 바다를 포함한 지구 전체 면적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서도 실현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지구상에서 가장 광대한 탄소흡수원인 공해 보호가 기후변화 완화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구체적으로 이번 협약에 해양자원 이용의 공정성과 해양 생물다양성 보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항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공정성 측면에서는 앞으로 선진국이 해양자원에서 파생되는 금전적·비금전적 이익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고, 기술 이전 등을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또 공해에 서식하는 고래, 바다거북 등 해양생물의 보호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어획과 심해 채굴 등 경제활동이 공해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 기준을 마련할 근거도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새로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어획, 심해 채굴, 선박 운항 등 활동에 있어 제한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협약 타결이 마라톤협상 끝에 극적으로 이뤄지다보니 협약에 담길 구체적인 문구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협약이 정식 발효되기까지는 회원국들의 비준 등 절차도 남아있다. 이날 회의는 당초 3일 끝날 예정이었지만 이해 당사국 사이의 의견이 갈리면서 장시간 진행됐다. 해양자원 발굴에서 나오는 이익 분배와 관련된 부국과 빈국의 마찰은 정부간 회의에서 이해 당사국들이 갈등해온 주요 사안이었다. 기존의 정부간 회의에서는 일부 국가들이 해양 보전보다는 해양 유전 자원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협약 체결을 이루는 데 실패해 왔다.

그린피스가 지난 2월 서울 한강공원에서 글로벌 해양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가 지난 2월 서울 한강공원에서 글로벌 해양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처음 논의가 시작된 지 19년 만에 타결된 이번 협약에 대해 국제환경단체와 전문가 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번 글로벌 해양조약 체결은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해양보호의 새로운 도약”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린피스의 로라 멜러는 “환경보존에 역사적인 날”며 “자연과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지정학을 압도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 협약의 채택을 위해 노력해 온 공해 보호 목적의 국제시민단체 연대체인 하이시스얼라이언스(High Seas Alliance) 회원단체 활동가들은 회의장 안팎에서 감격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국제환경법정책학 전문가인 박시원 강원대 교수는 “이 조약이 발효되면 공해에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된다”며 “공해를 보호하고,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체계를 갖추게 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협약 이전 국제사회가 합의한 가장 최근의 해양보호협약은 1982년 체결된 유엔 해양법 협약이었다. 그러나 이 협약에는 심해 채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포함돼 있지 않았고, 기후변화 관련 내용도 반영돼 있지 않았다.

BBNJ 관련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년 전인 2004년 유엔 총회 결의부터다. 이후 협약을 이뤄내기 위해 2006~2015년 사이 9차례의 작업반 회의, 2016~2017년 사이 4차례의 준비위원회, 2019년까지 총 3차례 정부간 회의가 열렸다. 제4차 정부간 회의는 2020년 3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해로 연기됐었다. 지난해 8월의 제5차 회의에서도 협약 타결이 무산된 뒤 유엔은 비상회의로 이번 제5.2차 정부간 회의를 소집했다. 막판 타결을 이뤄낸 최종 회의는 38시간 동안 이어졌다.

과거 한국 정부는 이 회의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국제환경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었지만 제4차 정부간 회의부터는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현지에서 협약 타결 소식을 전해온 김은희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정부간회의를 거치면서 과거 협약에 부정적이었던 한국 정부 대표단이 해양 생물다양성의 보전 목적과 취지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협상의 기조를 바뀐 것이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었다”며 한국 정부가 이 협약을 조속히 비준할 것을 촉구했다. 김연하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는 “공해에서 어업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국가인 한국이 이번 회의에서 협약 체결을 적극 지지하면서 기후위기와 해양보호의 중요성에 있어 세계 각국과 공감대를 이룬 것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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