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산호 60.5%가 ‘백화 현상’
바닷물 30도 이상 고수온이 원인
지구 기후변화에 엘니뇨 겹친 탓
산호 서식지 소멸 땐 생태계 황폐화
어획량 감소 등 먹거리에 악영향
미 해양대기청 “지구촌에 경각심”
#. 호주 해안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라고 불리는 수역으로 수중 카메라가 천천히 들어간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산호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카메라가 수면 아래로 잠기자 렌즈에는 자그마한 나무처럼 생긴 물체들이 잔뜩 잡힌다. 산호다. 식물처럼 보이지만, 동물이다. 산호는 전 세계 열대와 아열대 바다에 2500여종이 분포한다.
그런데 이 산호들, 색깔이 심상찮다. 전부 하얀색이다. 산호는 본래 몸통 안에 ‘조류’, 즉 바닷속 미생물을 품어 알록달록한 색을 내야 하는데 이상한 일이다. 이 모습은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올해 풍경이다. 이렇게 산호가 하얗게 변한 것을 두고 ‘백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백화 현상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지난 1년간 전 세계 산호의 약 3분의 2가 백화 현상을 겪었다. 이렇게 광범위한 백화 현상은 사상 처음이다. 바닷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 조류 이탈하며 ‘60.5%’ 백화
로이터통신과 에코워치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이달 중순 개최한 월간 브리핑을 통해 “지난 1년간 전 세계 산호의 60.5%가 백화 현상을 겪었으며, 이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국 연안에서 백화 현상이 생긴 국가만 62개국에 이른다.
백화 현상은 말 그대로 산호 몸통이 하얘지는 일이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산호와 바닷속 조류의 공생 관계 때문이다.
산호 몸속에는 매우 작은 단세포 생물체인 조류가 산다. 산호는 살 터전을 주고, 조류는 그 대가로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을 내놓는다. 조류는 색깔이 알록달록하기 때문에 산호 특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바닷물 수온이 너무 높으면 조류는 산호에게 독이 되는 물질을 뿜는다. 그러면 산호는 조류를 자신의 몸 밖으로 퇴출시킨다. 공생 관계의 파탄이다. 이러면 산호는 색을 잃고 하얗게 변한다. 바로 백화 현상이다.
높은 수온이 유지돼 조류 없이 홀로 버티는 상태가 지속되면 산호는 결국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는다.
백화 현상은 자주 있었다. 전 지구적인 대규모 피해만 추려도 벌써 4번째다. 1998년에는 전 세계 산호의 20.0%, 2010년에는 35.0%, 2014~2017년에는 56.1%가 백화 현상에 노출됐다.
그런데 올해(60.5%)는 이미 과거 기록을 뛰어넘었다. 전 지구 산호의 3분의 2 가까이가 백화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 생태계 파괴·어획량 감소 우려
도대체 산호가 사는 바다 수온이 얼마나 높아진 것일까. 30도를 넘었다. 산호는 28도 이하 바다에서 조류와 정상적으로 공생할 수 있고, 30도부터는 백화 현상을 일으킨다. 목욕물과 별로 다르지 않은 ‘뜨거운 바다’에 산호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고수온이 나타난 이유는 뭘까. 날로 세지는 기후변화에 더해 올해에는 태평양 바다 수온이 오르는 기상현상인 ‘엘니뇨’가 겹친 탓이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대서양이다. 산호의 99.7%가 백화 현상을 겪었다. 이 수역에서는 산호의 소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백화 현상을 주목해야 하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산호가 자라는 전 세계 바다 면적은 겨우 1%이지만, 여기에 해양 생물의 25%가 모여 산다. 산호 주변에는 은신할 곳과 먹을거리가 많아서다. 사람으로 따지면 인프라를 잘 갖춘 대도시다.
이번 백화 현상이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전 세계 바다 생태계는 황폐화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당장 어획량 감소로 인한 혼란이 예상된다. 전 세계 어획량의 9~12%를 산호 주변 바다가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NOAA는 2014~2017년 백화 현상이 무려 3년간 이어졌다는 점 등을 고려해 올해 백화 현상에 ‘사상 최악’이라는 도장을 찍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광범위한 피해가 지속되면 조만간 그 판단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NOAA는 “이번 백화 현상은 지구촌에 경각심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