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렸던 호랑이 아종, 전체 게놈 분석해 “6종이 맞다” 결론읽음

김기범 기자

국제공동연구진 “멸종위기종 보호 도움”…호랑이의 역사 첫 규명

한반도 호랑이 포함 ‘아무르’ 등 현존 아종 조상 11만년 전부터 서식

엇갈렸던 호랑이 아종, 전체 게놈 분석해 “6종이 맞다” 결론

호랑이는 민화, 전설, 동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경로로 접할 만큼 친숙한 동물인 동시에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국제적인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개체 수가 4000마리 안팎으로 유지되면서 급감하던 추세는 잠시 멈춘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서식지 파괴, 밀렵 등의 위협을 받으면서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동물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은 2017년 2월 기준으로 야생 호랑이는 약 3890마리가 남아 있으며 99% 정도인 3846마리가 아시아에 서식하고 있다고 집계한 바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아직까지 호랑이의 아종이 몇 종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종은 종을 다시 세분한 생물 분류 단위를 말한다. 종으로 나눌 만큼 다르지는 않지만, 형태나 크기 등에서 서로 차이가 많고, 사는 곳도 다른 경우를 가리킨다.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보호 정책을 수립할 때는 아종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종이 몇 종인지 밝히는 것은 기본적이자 필수적인 요소이다. 서로 다른 종인 생물의 경우 번식이 불가능하지만 아종끼리는 번식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현재 살아남은 호랑이의 아종은 6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학계에는 2종으로만 구분해야 한다는 이견도 존재했다.

2015년 독일 라이프니츠동물원 및 야생동물조사연구소, 영국 스코틀랜드국립박물관, 덴마크 국립자연사박물관 등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어드밴스에 호랑이의 아종을 순다 호랑이와 대륙 호랑이 2종으로만 구분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 국제 공동연구진은 200마리 이상의 호랑이 두개골과 100마리 이상 호랑이 가죽의 색상과 줄무늬, 분자유전학 데이터, 생태학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 베이징대, 미국 야생동물보전협회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게놈(유전체) 분석을 통해 호랑이의 아종은 6종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국제학술지 ‘커런트바이올로지’ 25일자에 발표했다. 게놈은 유전정보의 총합을 말하며 연구진은 분석이 완료된 32마리의 호랑이 게놈 전체를 비교, 분석했다.

호랑이 아종이 6종이라는 유전학적 연구 결과가 처음 나온 것은 2004년이다. 25일 발표된 논문의 저자이기도 한 뤄수진 베이징대 교수를 포함한 미국 메릴랜드 국가암연구소 게놈다양성실험실 등 연구진은 당시 인도차이나 아종은 인도차이나 아종과 말레이 아종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구 결과는 러시아 동부, 중국, 인도, 동남아 국가들에 서식하는 호랑이 130마리의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것이었다. 이 내용이 발표되기 전까지 호랑이 아종은 형태적 특징과 지리적 분포 등을 기반으로 8종으로 여겨져 왔다. 여기에는 이미 멸종한 호랑이 아종 3가지도 포함돼 있었다.

아종이 두 종이냐 여섯 종이냐는 과학적인 의미뿐 아니라, 현재 야생에 남아 있는 호랑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말레이 호랑이와 인도차이나 호랑이를 각각 다른 아종으로 보는 것과 같은 아종으로 보는 것은 멸종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동물이 멸종하지 않고 번식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개체 수 이상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아종으로 보고 관리할 경우 각각 이 개체 수 아래로 내려가 멸종의 길을 걸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를 ‘최소 존속개최군’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종 복원이 진행 중인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최소 존속개체군은 50마리로 여겨진다. 연구진은 “학계의 호랑이 아종에 대한의견 불일치는 이 동물을 보호하고, 멸종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포획 후 번식을 통한 개체 수 보전, 야생의 개체 수 조절 등 보존·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이견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호랑이 아종 가운데 벵골 호랑이는 주로 인도에 서식하며 약 2500개체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의 호랑이도 포함되는 아무르 호랑이는 주로 중국과 러시아 등에 서식하며 수백마리 정도만 남아 있다. 남중국 호랑이는 최근 25년 동안 야생에서 발견되지 않은 탓에 거의 멸종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동물원에만 존재한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만 서식하며 남은 개체 수는 400마리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차이나 호랑이는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며 수백마리 정도 남은 것으로 추산된다. 주요 서식지는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다. 말레이 호랑이는 2004년 인도차이나 호랑이와 구분되는 아종으로 밝혀진 호랑이로 역시 동남아시아에만 서식하는 아종이다.

이미 멸종한 아종 가운데 발리 호랑이는 1940년, 카스피 호랑이는 1970년대, 자바 호랑이는 198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아종은 형태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무르 호랑이는 다른 아종에 비해 털 빛깔이 옅은 편이고, 수마트라 호랑이는 진하고, 두꺼운 줄무늬를 지니고 있다. 열대지방 호랑이는 대체로 온대, 한대지방 호랑이보다 작은 경향이 있다. 이미 멸종한 자바 호랑이 수컷의 몸무게는 아무르 호랑이의 3분의 1가량인 100㎏ 정도였다.

연구진은 또 호랑이가 공통 조상으로부터 어떻게 나뉘어 진화해왔는지도 알아냈다고 밝혔다. 화석 연구에 따르면 호랑이 조상이 처음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약 200만~300만년 전이다. 연구진은 현존하는 호랑이 아종들의 공통조상은 약 11만년 전 중국 남부와 인도차이나 반도에 서식하고 있었고 아종들이 본격적으로 분기한 것은 약 6만년 전에서 3만년 전 사이라고 설명했다.

약 6만7300년 전 이들 일부가 인도네시아 쪽으로 남하해 수마트라 호랑이로 갈라졌다. 또 약 5만2920년 전 서쪽인 인도 방향으로 이동한 집단이 나왔고, 이들이 벵골 호랑이로 갈라졌다. 이어 약 3만3830년 전 북상한 집단은 남중국 호랑이와 아무르 호랑이로 분기했다. 인도차이나 호랑이와 말레이 호랑이가 서로 다른 아종으로 갈라진 것은 가장 최근인 2만76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각 호랑이 아종의 게놈 전체를 분석해 호랑이의 자연사를 밝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야생에서 멸종한 탓에 한 마리만 분석 대상에 포함된 남중국 호랑이와 이미 멸종한 아종들의 표본으로부터 게놈 정보를 확보해 추가 연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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