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따뜻한 겨울 탓 배·꿀 흉작…이상기후, 더 자주 더 세져 더 암울

김한솔 기자·영상 최유진 PD

이상기후 시대의 농사

[기후변화의 증인들]③따뜻한 겨울 탓 배·꿀 흉작…이상기후, 더 자주 더 세져 더 암울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는 노봉주씨가 냉해로 인해 크기가 골프공보다 작고 모양이 찌그러진 기형 배들을 보여주고 있다(위 사진). 노봉주씨가 자신의 배밭에서 냉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유진PD yujinchoi@kyunghyang.com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는 노봉주씨가 냉해로 인해 크기가 골프공보다 작고 모양이 찌그러진 기형 배들을 보여주고 있다(위 사진). 노봉주씨가 자신의 배밭에서 냉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유진PD yujinchoi@kyunghyang.com

빨라진 개화기에 꽃샘추위, 배꽃 고사로 착과 안 되고 기형 많아
“꽃이 피었는데 꿀벌 굶어 죽는 건 처음” 저온 탓 꿀 생산량 급감
농업 재해 세계적 현상…농작물값 폭등 땐 국내 식량 안보 타격
“사후 복구식 위기관리 한계, 사전경보 등 예방 패러다임 전환을”

한때 농사는 단순하고 정직한 일이었다. 베테랑 농부든, 초보 농부든 계절의 변화에 맞춰 매 달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땅 고르기와 비료 주기 같은 그 티 나지 않는 일들을 얼마나 성실하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졌다.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원리가 여전히 작동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이 한 차례도 내리지 않는 따뜻한 겨울과,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고온건조한 봄, 한 해에 태풍이 갑자기 7번이나 몰아치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농사는 더 이상 단순한 일도,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일도 아니다. 농사는 복잡하고, 또 운에 기대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26년차 배 농부 노봉주씨(55)도 올해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농사는 크게 망쳤다. 그는 전라남도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5월 중순, 노씨의 배 밭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밭에는 골프공보다 작은 크기의 열매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질척이는 땅에 처박혀 있었다. 푸릇푸릇한 배나무에는 나뭇잎만 무성했다. 처음엔 그렇게 보였다. 배나무에 달려있는 열매의 크기가 워낙 작아, 나뭇잎에 다 가려졌기 때문이다. 나무에 달려있는 열매의 크기도 바닥에 떨어진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떤 가지에는 검게 말라 비틀어진, 언뜻 보면 얇은 나뭇가지 같은 배꽃도 붙어 있었다. 노씨는 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배나무 가지에 달려있는 열매를 툭 땄다. “이런 배들은… 이렇게 (모양이) 비틀어진 것들은 돈이 안 돼요.” 그는 가지의 나뭇잎들을 들추며 말했다. “원래는 이런 꼭지 하나하나에 배(열매)가 5개, 6개씩 달려있어야 해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열매가 3, 4개씩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모양이 찌그러진 것들이 많았다. 노씨가 아직 새파란 열매 하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다 자신의 엄지 손가락에 갖다댔다. “이때쯤이면 이것보다 열매 크기가 1.5배, 2배는 돼야 하는데…. 제 엄지손가락 정도는 돼야 해요.”

배꽃이 말라죽은 채로 가지에 매달려 있다. 올해 개화기에도 꽃샘추위가 몰아쳐 얼어붙은 암술 씨방이 까맣게 고사하는 저온 피해를 입었다. 최유진PD

배꽃이 말라죽은 채로 가지에 매달려 있다. 올해 개화기에도 꽃샘추위가 몰아쳐 얼어붙은 암술 씨방이 까맣게 고사하는 저온 피해를 입었다. 최유진PD

[기후변화의 증인들]③따뜻한 겨울 탓 배·꿀 흉작…이상기후, 더 자주 더 세져 더 암울

노씨의 배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올해는 유독 무엇이 빨리 시작됐다는 소식이 많았다. 1월23일 지리산국립공원 구룡계곡에 사는 북방산개구리가 산란을 했다. 봄에 산란을 하는 북방산개구리가 1월에 산란한 것은 관찰을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독 따뜻했던 겨울 기온 때문이다. 지난겨울(2019년 12월~2020년 2월) 전국의 평균기온은 3.1도, 특히 북방산개구리가 이른 산란을 한 1월은 전국에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1월의 평균기온은 2.8도, 한파 일수는 0일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2월에 짧은 추위가 있었지만 대부분 기간은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3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7.9도를 기록했고, 4월2일에는 소백산국립공원의 박새가 산란을 했다. 9년 만에 가장 빠른 산란이었다. 노씨 배밭의 배꽃들도 이때 일제히 피었다. 원래 4월 중순쯤에 피어야 하는 꽃들이었다.

“4월11일쯤에 꽃이 피어야 하는데 4월3~4일, (빠르게는) 1일에 꽃이 피어버린 거예요.” 그는 배꽃의 개화가 그전부터 조금씩 빨라지고 있는 걸 느끼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나주의 신고배 꽃의 만개일은 4월15일이라고 했는데, 몇년 전부터 나주는 4월10일 정도에 피었어요. 올해 같은 경우는 생각지도 않게 기온이 너무 높았죠. 그래서 1주일 이상 빨리 피었어요.” 그런데 꽃이 피자마자 내내 따뜻하던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4월5~6일에 기온이 영하 4도, 5도로 내려가서 배 꽃눈이 고사했어요. 그 이후에도 날씨가 안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는데, 70~80%는 배가 안 달렸고, 배가 달렸다고 해도 상품으로 쓸 수 있는 배가 아니에요.” 노씨는 배의 개수를 배 한 알을 포장하는 데 드는 종이 ‘장수’로 말했다. “(이 밭에선) 3만3000장 정도 싸요. 올해는 1000장은 쌀는지 모르겠어요. 싸 봤자 시중에는 가공품으로 나가요.” 배숙 같은 것으로 ‘가공’해야만 팔 수 있는 배는 그냥 과일로 파는 배보다 값이 훨씬 싸다. “가공배는 사각상자 하나에 45~50개 들어가는데, 그 가격이 ‘1만원’이에요.”

전국적으로도 올해 4월은 추웠다. 4월 전국 평균기온은 10.9도로, 평년(12.2도)보다 낮았고, 강수량은 40.3㎜로 평년(51.1~89.8㎜)보다 적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온이 떨어진 다음에는 강풍이 불었다. 4월 말 전국에 태풍 수준의 강풍이 불면서 안 그래도 적게 달린 배 열매들이 그대로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노씨는 내년을 위해 배밭에 간단하게 약만 쳤다. 그리고 냉해 대책을 촉구하는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에 돌입했다. 현행 농작물 재해보험의 냉해 보상률은 50%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의 증인들]③따뜻한 겨울 탓 배·꿀 흉작…이상기후, 더 자주 더 세져 더 암울
꽃에 꿀이 사라진 탓에 말라버린 판 형태의 벌집 위에 꿀벌들이 앉아 있다(위 사진).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들이 꿀 작황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최유진PD

꽃에 꿀이 사라진 탓에 말라버린 판 형태의 벌집 위에 꿀벌들이 앉아 있다(위 사진).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들이 꿀 작황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최유진PD

노씨가 밭에서 땀 흘리는 일을 멈추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무렵, 강원도 철원에 사는 양봉업자 임송빈씨(64)는 벌 110군을 이끌고 아카시아 꽃을 따라 전국을 돌고 있었다. 그는 이동양봉을 한다. 이동양봉은 아카시아 꽃이 피는 지역을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꿀을 따는 것이다. 보통 5월8일쯤 꽃이 가장 먼저 피는 남부지방에서 1차 채밀을 시작한 후 5월 중순쯤 중부지방에서 2차, 5월 말 북부지방에서 3차 채밀을 한다. 한 지역에만 머물며 채밀을 해서는 소득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양봉농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동하면서 양봉을 한다. 이런 작업 형태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꽃이 정해진 개화시기에 맞춰 남부지방에서부터 북부지방으로 올라오면서 필 것, 비가 내리지 않을 것. 올해는 그 조건이 모두 갖춰지지 않았고, 임씨도 노씨처럼 한 해 농사를 크게 망쳤다.

양봉업 경력 40여년의 임씨가 올해 6월 말까지 딴 아카시아 꿀은 2드럼에 불과하다. 그는 보통 5월 말쯤이면 아카시아 꿀만 20~30드럼씩 땄었다. “(올해 딴 꿀은) 그것도 좋은 꿀이 아니라, 수분이 많이 함유된 ‘물꿀’이에요.” 그는 올해 1차지로 경상북도 구미, 2차지로 세종시 조치원을 찾았고, 3차지로 자신이 양봉을 하는 강원도 철원으로 돌아왔다. 모든 지역에서 꿀이 부족했다. “(과거엔) 경상도 지역에서 날씨가 나빠도 충청도에 가면 꿀이 있고, 또 거기서 안 되면 강원도로 오면 됐고 그랬는데, 올해는 어느 지역에 가도 꿀이 나오는 곳이 없었어요.”

꿀이 말라버린 아카시아꽃에 벌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올해 4월 급격한 저온 현상으로 아카시아 나무 꽃대 발육이 예년 대비 50% 수준에 그쳤다. 최유진PD

꿀이 말라버린 아카시아꽃에 벌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올해 4월 급격한 저온 현상으로 아카시아 나무 꽃대 발육이 예년 대비 50% 수준에 그쳤다. 최유진PD

[기후변화의 증인들]③따뜻한 겨울 탓 배·꿀 흉작…이상기후, 더 자주 더 세져 더 암울

아카시아 꽃은 국내 양봉농가의 주 밀원이다. “원래 아까시(아카시아)는 기적 같은 나무예요. 큰 나무들은 한 나무에서도 꿀이 많게는 3말(54ℓ)이 나온다고 그래요.” 한국양봉농업협동조합의 ‘2020년 벌꿀 생산 흉작 원인 분석 및 작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는 이 ‘기적 같은 나무’에 일어난 일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보고서는 올해 흉작의 원인으로 4월에 발생한 급격한 저온 현상을 꼽았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이 아카시아 나무 꽃대 생성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연달아 몰아친 태풍으로 많이 부러지고 잎이 떨어진 아카시아 나무들의 발육은 이미 저조한 상태로, 꽃송이 숫자 자체도 줄었다. 이동양봉이 시작되는 5월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결국 그나마 있던 꽃송이에서 나온 꿀도 물이 잔뜩 섞인 물꿀이 됐다. 보고서는 “아카시아 나무 꽃대 발육이 예년 대비 50% 수준”이라며 “최근 지구온난화 등 이상기후로 인해 벌꿀 생산을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임씨는 양봉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월 아카시아 철이 지나면 잡화꿀과 밤꿀의 채밀시기가 돌아온다. 그는 “딴 해는 아카시아가 (꿀이) 안 나와도 잡화, 찔레도 있고 때죽도 있었는데, 아카시아에서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꽃에서 꿀이 분비가 안 되는 상태”라며 “양봉을 40년 했는데, 2004년 외국에서 벌레가 들어와 아카시아 나무가 병들었을 때 빼고 이건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잡화꿀과 밤꿀을 합해서 겨우 반 드럼을 채웠다.

올해처럼 모든 지역에서, 모든 종류의 꿀이 안 나는 흉년이 오면 복구를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황협주 한국양봉협회장은 “꽃이 피었는데도 벌이 굶어 죽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는 “꽃밭에서 벌이 아사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면서 “벌에게 먹이는 설탕을 긴급히 구해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봉농가의 흉년은 2018년에도 있었지만, 올해는 그때와 비교해도 더 상황이 좋지 않다. 황 회장은 “그때는 안동, 예천, 이런 내륙지방은 괜찮았어요. 그래도 꿀이 한 3만t 이상은 생산됐는데, 올해가 사상 유례없는 해”라고 했다.

사실 노씨와 임씨의 농사는 배꽃과 아카시아 꽃이 ‘원래 피던 때’에만 피었어도, 망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생태과의 심교문 연구관은 “겨울철이 따뜻하다보니 월동작물과 과수의 생육시기가 빨라졌는데, 그 뒤 4월쯤 온도가 떨어졌다”며 “평상시 같았으면 개화기가 아니어서 피해를 보지 않을 상황에서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서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심 연구관은 “폭염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데, 최근에 그 강도가 강화되고 빈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반대로 2000년 초반에는 길고 강한 한파가 발생했다. 강수량도, 단기간에 지역적 집중호우가 빈번해지고 있지만, 2015~2017년에는 장기적인 가뭄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런 이상기후 현상이 국내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3월 브라질 남동부에서는 폭우로 8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일본 도쿄에서는 32년 만에 1㎝ 이상의 눈이 왔다. 국내 농가들이 냉해를 입었던 지난 4월, 중국 북동부에서는 37년 만에 최대 폭설이 내렸고, 기온이 하루에 20도씩 하강했다. 심 연구관은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24%에 불과한 세계 10위권의 식량 수입국이기 때문에 식량안보가 대외적 생산여건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이상기후를 동반한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농작물 가격의 폭등으로 일반 물가도 상승하는 것)을 발생시키고 식량부족 현상을 심화시켜서 식량 수입가격이 폭등하게 되면, 국내 식량안보에도 많은 어려움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은 앞으로도 더 자주, 더 큰 폭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심 연구관은 “농업 부문의 재해관리도 사후복구 중심의 위기관리에서 사전 예방으로 피해를 줄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조기경보를 통해 개별 농장 작물의 생육 상황을 관리하고, 재해 위험 여부를 사전에 판정할 수 있는 기상예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25년간 “오직 배만” 키웠다는 노씨는 이번 농사를 끝으로 사실상 배를 포기했다. 한달 반째 정부에 냉해 대책을 호소하고 있는 그는 대규모 집회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저는 오직 배만 했거든요. 그런데 배는 희망이 안 보여요. 작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샤인 머스캣’을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늦었다해도, 가능성이 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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