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버리면 재앙

이정호 기자
잔반으로 버려지는 음식들. 먹지도 않을 음식물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기후변화가 촉진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제공 그래픽 | 성덕환 기자

잔반으로 버려지는 음식들. 먹지도 않을 음식물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기후변화가 촉진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제공 그래픽 | 성덕환 기자

지구 온실가스 8~10%, 버려진 음식서 발생
먹을 수 있는 음식 17% ‘쓰레기통으로’
40t 트럭 2300만대분…일렬로 지구 7바퀴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이 찾는 백반집, 식판에 스스로 밥과 반찬을 퍼담는 학교의 구내식당, 코스 요리를 즐기는 고급 레스토랑이 갖는 평범한 공통점은 뭘까. 어떤 식으로든 식사 뒤 남은 음식, 즉 잔반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먹성이 좋은 손님이라도 차려진 음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고 나오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밥과 반찬, 국을 아무리 먹을 만큼만 조금씩 담아도 남는 음식물은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바짝 건조하거나 미생물로 분해하는 처리 기기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만큼 버리는 음식이 꽤 많다는 증거다.

■40t 화물차 2300만대분 폐기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유엔개발계획(UNEP)이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2019년 기준 음식물 쓰레기 실태를 조사해 이달 초 발표한 ‘식품 폐기물 지수 보고서’를 보면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문제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물 가운데 17%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이렇게 사라진 음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9억3100만t에 이르렀다. 음식물 쓰레기만으로 적재량을 가득 채운 40t 화물차 2300만대분이다. 화물차를 일렬로 줄지어 세운다면 지구 7바퀴를 돌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의 주된 발생원은 집이었다.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 61%가 쏟아졌고, 식당(26%)과 식품 판매점(13%)이 뒤따랐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일들 때문이다.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이 가정의 주방이나 식탁에서 조리과정 또는 식사 뒤 버려진다. 판매업체나 소비자는 섭취에 문제가 없는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폐기한다. 예쁘지 않거나 약간의 흠집이 난 형태의 농산물은 공급망에서 제외되는 일도 일어난다.

눈에 띄는 점은 음식물 쓰레기가 선진국에서 두드러지게 많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도 음식물을 많이 버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UNEP도 이 대목을 강조하며 “음식물 쓰레기는 세계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를 보면 가정에서 한 해 동안 버리는 음식물은 호주에선 1인당 102㎏, 일본에선 64㎏, 뉴질랜드에선 61㎏이었다. 이들 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선 112㎏, 방글라데시에선 74㎏ 등을 버렸다. 경제적인 부유함이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의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기후변화까지 일으키는 원흉

음식물 쓰레기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기도 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는 버린 음식물에서 나온다. 특히 문제는 육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따르면 육류가 전체 음식물 쓰레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이다.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육류를 포함한 음식물 쓰레기가 기후변화에 특히 악영향을 주는 이유는 뭘까. 바로 커다란 ‘탄소 발자국’이 찍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식탁에 고기가 오르기까지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소고기로 1000㎉의 열량을 공급받으려면 이산화탄소 13.8㎏을 대기에 내뿜어야 한다. 사료를 먹여 기르고, 분뇨를 처리하고, 도축한 뒤 운송·가공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계속 배출된다. 먹지도 않을 음식물을 수확하고, 가공하고, 조리까지 해 버리는 일이 이어진다면 지구가 병드는 속도가 빨라지는 건 자명하다.

UNEP는 2030년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음식물 쓰레기를 감소시키면 오염을 통한 자연 파괴는 물론 경제불황기를 맞아 늘고 있는 기아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 세계 정부와 기업, 시민들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식생활 정보 뉴스레터 🍉 ‘끼니로그’를 매주 금요일 아침 메일함으로 받아보세요. 음식에 대한 요긴한 정보와 잘 지은 밥 같은 글을 보내드립니다. 링크가 클릭되지 않는다면 주소창에 다음 주소를 입력해 구독을 신청하시면 됩니다.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22110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