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마세요

이길보라

기후위기를 대하는 방법

2019년 9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청소년들이 주최한 기후파업. “살기 좋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기후 파업”이라고 현수막에 적혀 있다.   이길보라 제공

2019년 9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청소년들이 주최한 기후파업. “살기 좋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기후 파업”이라고 현수막에 적혀 있다. 이길보라 제공

2018년 15세의 그레타 툰베리가 스웨덴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후위기를 핵심 의제로 올릴 것을 요구하며 결석 시위를 했다. 이로부터 전 세계 700만명 이상이 동참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파업이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기후파업(Climate Strike)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차를 잡아탔다. 문자 그대로 사뿐히 올라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자를 재활용해 만든 손팻말을 들고 타려는 초등학생부터 학교를 결석하고 나온 중·고등학생,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까지 모든 승객이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역에서 내렸다.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뭘 원하는가? 기후정의! 언제 원하는가? 지금!”

기후정의(Climate Justice)라는 단어가 어색해 한참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기후 변화의 원인과 영향이 초래하는 비윤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사회 운동을 기후정의라고 한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거나, 기후 변화에 대처할 재정이나 기술이 없는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것으로 자신과 가족, 지인 등의 작은 단위를 넘어 초국가적 연대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다. 기후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후정의를 요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라는 걸 떠올리며 구호를 외쳤다.

영화 ‘그레타 툰베리’ 의 그레타 툰베리

영화 ‘그레타 툰베리’ 의 그레타 툰베리

시위대의 행진을 쫓아 도심을 돌았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북을 치고 심벌즈를 맞부딪치는 연주단을 쫓아 사람들이 춤을 췄다. 긴 막대기 끝에 북극곰 인형을 달아 들고 나온 소년과 그의 엄마가 눈앞으로 지나갔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들, 아이를 어깨 위에 태워 시위 현장을 보여주는 아빠, 히잡을 쓴 청소년이 10대가 직접 기획하고 주도한 기후파업에 동참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이런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니! 반가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뛰어다녔다.

길어진 장마에 이례적 폭염
이젠 코로나 대유행까지
대멸종 시대가 두려운 아이들

‘그레타 툰베리’는 말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음 세대가 바꿀 순 없어요
우리에겐 미래가 없어요”

무책임한 어른이 안 되려면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을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일상에서라도 함께 노력하자

그러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절대 세상을 구할 수 없으니
누가 기후위기에 맞서는지
곧 다가올 대선을 지켜보자

그때였다. 누군가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청소년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계란을 맞은 것이다. 많아야 열여덟, 열아홉 살로 보이는 그는 억울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손수건을 건넸다. 어떤 이는 화가 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위에 건물이 있었으니 누군가 고의로 떨어뜨린 것일 테다. ‘세상에나. 기후정의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고층 빌딩의 유리창 사이로 팔짱 낀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금요일 오후, 업무 시간에 일을 하다 큰 소리가 들려 구경하러 나온 이들이었다. 양복을 입고 선 어른들을 바라봤다. 행진하는 대다수의 청년, 청소년과 사뭇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누군가는 ‘기후정의’라는 단어를 목이 터져라 외쳤고, 누군가는 계란을 던졌다. 어떤 이는 파업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데려가 줄 보호자가 없어 그러지 못했다. 파업 신청을 미처 하지 못한 이들은 창문을 열고 환호하며 지지의 함성을 보냈다. 그 사이로 종종 싸늘한 표정을 마주했다. 치기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것 같은 그 얼굴을 기억한다.

지난 1일(현지시간) 북극곰 한 마리가 그린랜드의 눈 덮인 빙상 위에 홀로 외롭게 서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곰의 서식지인 빙상은 점점 더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북극곰 한 마리가 그린랜드의 눈 덮인 빙상 위에 홀로 외롭게 서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곰의 서식지인 빙상은 점점 더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끔은 모두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었으면 해요

다큐멘터리 영화 <그레타 툰베리>에서 그 표정을 다시 만났다. 기후정의를 지금 당장 원한다며 학교를 결석하고 의회 앞에서 시위를 하는 그레타에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반응하거나 화를 낸다. 누군가는 귀엽다고 말하며 어깨를 쓰다듬고, 몇몇 이들은 사진을 찍자며 다가온다. 그 순간 그레타는 ‘이상한 사람’이 되거나 ‘영웅’이 된다. 지금 열심히 배워야 미래도 바꿀 수 있다며 학교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어른에게 그는 반문한다.

“미래가 없는데 배워서 뭐해요?”

그레타는 기후위기 운동의 아이콘이 된다. 사람들은 세상을 구할 영웅이자 다음 세대의 대표로 그를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로, 유럽 의회로, 그린피스 시위로 부른다. 우리에게는 기후정의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하여 그는 스스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를 택한다.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지하철, 버스, 기차 등의 대중교통과 전기차를 탄다. 채식을 하며 탄소 배출을 줄인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그레타와 같은 다음 세대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그런 어른들에게 그레타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한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기후위기로 인한 대멸종이 시작되면 그럴 수 없다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음 세대가 바꿀 수는 없다고 말이다.

기록적 폭염이 덮친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캠루프스에서 지난달 30일 대형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br />캠루프스 | AFP연합뉴스

기록적 폭염이 덮친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캠루프스에서 지난달 30일 대형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캠루프스 | AFP연합뉴스

이제는 그레타 툰베리를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신문 기사, 영상 매체, SNS 등에 관련 정보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영화 <그레타 툰베리>를 봐야 하는 이유는 그의 표정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가 연기에 능하다고 말한다. 부모가 사상을 주입해서, 환경 단체에서 가르쳐줘서, 스타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한다고 비방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이 사진 한번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밀면 입가에 힘을 주고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그레타가 등장한다. 반면 가족이나 반려견과 함께 있을 때면 이런 모습까지 다 보여줘도 괜찮나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절망과 무력감이 찾아올 때면 그는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울거나 춤을 춘다. 그레타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다. 기자 하나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정확히 말한다.

“앓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이죠.”

그레타는 결석 시위를 시작하기 전, 1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3년 동안 가족 이외의 그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회성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전반적 발달 장애의 일종인데 자신만의 규칙을 강박적으로 지키거나 사물을 전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특정 부분에 집착하는 등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그레타를 두고 누군가는 기후에 집착하는 발달 장애인이라 비방한다. 그런데 기후에 집착하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기후위기와 기후정의는 전 개체의 멸종이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 그를 보고 아버지는 말한다. 그레타는 이 세상 정치인의 97%보다 기후위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아는 것 같다고. 그레타는 말한다.

“가끔은 모두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었으면 해요. 적어도 기후위기 문제에 있어서는요.”

영화는 2019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태양열로 구동되는 친환경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그레타를 담는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그들은 해낸다.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과 뉴욕을 9시간 만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대멸종의 시대가 오면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그레타가 마주친 것은 그리움이다. 평범하고 규칙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 마음. 그러나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 그는 세계 정상들 앞에서 똑똑히 말한다.

“당신들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구하러 옵니다. 염치도 없나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우리 모두가 그레타가 되자

영화 속 기후행동 활동가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할 수 있는 어른들에게 요청한다.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라고. 이 영화는 그렇게 내게 왔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한국 청(소)년들의 시민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에서 영화를 보고 기후정치 캠페인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에게는 그레타 같은 한 명의 아이콘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맞서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기후위기를 정치적 의제로 끌어올리고 기후위기에 맞서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캠페인의 목표다.

기성세대는 쉽게 말한다. 다음 세대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무언가를 바꾸거나 결정할 수 있다고.

그러나 끊이지 않는 장마와 전례 없는 폭염, 이상하게 따뜻했던 겨울,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몸으로 겪은 세대에게 미래란 없다. 2030년, 2040년까지 살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들은 기후정의를 정치적 의제로 선정하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알려줄 어른들에게 절박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들은 결정권이 없는 다음 세대이자 청(소)년이어야 하나? 대멸종의 시대를 살아갈지도 모르는 이들이 권력을 가지고 의제를 선정하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 문제에 있어 그 누구보다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그레타가 환경부 장관이거나 대통령이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들은 손으로 만든 팻말을 들고 등교를 거부하고 파업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와야 할까? 다음 세대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그 말은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판에서도 들을 수 있다. 청년세대, MZ세대, 90년생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그러니 너희들이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내놓으라고. 그런데 왜 다음 세대만 세상을 구해야 하나?

그런 무책임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영화 <그레타 툰베리>를 보자. 시대의 아이콘이지만 그 누구보다 평범한 시민인 그레타가 짊어진 부담감을 나눠지자. “차 한 잔 줄까?”라고 묻는 어른에게 “아뇨, 물 있어요”라고 말하며 빨간색 물통을 꺼내는 그레타처럼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 컵을 사용하자. 완전한 비건이 되지 못한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육식을 줄이는 비건 지향인이 되자. 그레타를 보고 ‘영웅’이라고 엄지를 세우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그레타가 되자. 배달 음식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에어컨을 끄고,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레타가 될 수 있다. 일상에서의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기후위기를 뜨겁고 멋진 정책적 의제로 만들 수 있을지 상상해보자.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며 일상과 정치, 사회적 의제를 촘촘히 엮어보자. 곧 다가올 대선에서 누가 기후위기에 맞서는 정치인일지 날카롭게 들여다보자.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다음 세대가 절대 구할 수 없다.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⑦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마세요

▶이길보라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길은 학교다>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이 있다. 2021년 네덜란드 정부가 세계 각국의 여성 리더에게 수여하는 젠더 챔피언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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