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한라산 구상나무, 열매가 안 열린다...도대체 왜?읽음

윤희일 선임기자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인근의 구상나무 열매가 2016년 조사 때는 풍성했지만, 2021년 조사 때는 아주 적었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인근의 구상나무 열매가 2016년 조사 때는 풍성했지만, 2021년 조사 때는 아주 적었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구상나무는 한국에만 있는 멸종위기 나무다. 이 나무의 서식면적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주요 서식지인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열매를 잘 맺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잦아지고 있는 ‘이상기후’가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한라산 구상나무의 열매 결실량을 조사한 결과 열매가 달린 나무가 3그루 중 1그루에 불과하고, 그나마 해충 피해를 심각하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24일 밝혔다.

2016년 조사 때 한라산  영실지역 구상나무의 열매(위)는 풍성했지만, 2021년 조사 때는 열매가 크게 줄어든데다 그나마 해충피해를 입어 기형인 경우가 많았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2016년 조사 때 한라산 영실지역 구상나무의 열매(위)는 풍성했지만, 2021년 조사 때는 열매가 크게 줄어든데다 그나마 해충피해를 입어 기형인 경우가 많았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과학원이 한라산 영실 지역의 구상나무 45그루(높이 1.5m 이상)를 선정해 심층 조사한 결과, 15그루만이 평균 34.8개(1∼123)의 열매를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조사에서는 27그루 중 26그루가 평균 69개(8∼272)의 열매를 맺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열매를 맺은 나무의 수는 물론 나무 한 그루당 열매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또 10그루에서 열매 3개씩 모두 30개를 채취해 정밀 분석한 결과, 단 1개만 제대로 된 열매 형태를 보였고, 나머지는 기형이거나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는 최근 극심해지고 있는 이상기후가 꼽힌다.

지난 5월 초 한라산에서는 기온이 급강하하고 상고대가 맺히는 등의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했다. 이후 구상나무 열매 결실이 최악의 상황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이상기후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영실 지역의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4월 26일부터 5월 10일까지 하루 평균기온을 비교한 결과, 열매가 잘 맺힌 2016·2017·2020년에는 5.0∼18.1도를 유지하는 등 안정적인 기후를 보였다.

반면 열매가 잘 맺히지 않은 2018·2019·2021년에는 하루 평균 기온이 10도 안팎으로 유지되다 3.6∼4.5도로 급강하한 뒤 다시 회복되는 등 이상기후를 보였다. 특히 2018·2019·2021년에는 공통적으로 5월 초 상고대가 나타나고 최저기온이 0.1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임은영 연구사는 “구상나무는 암수 한 그루로 암꽃은 대개 5월에 달리고 수분 후 열매가 맺히면 10월까지 익는다”면서 “개화기의 급격한 기온 변화가 구상나무의 결실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상기후가 발생한 해에는 어김없이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 현상을 보였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풍매화인 구상나무의 꽃가루 날림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는데, 개화와 결실로 이행되는 단계에서 기온이 급강하면서 결실량이 감소한 것으로보인다”고 덧붙였다.

2016년 조사 때 채취된 구상나무의 열매(위)의 단면은 정상적인 모양이었지만, 2021년 조사 때 채취한 구상나무 열매의 단면은 해충 피해를 입어 기형적인 모습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2016년 조사 때 채취된 구상나무의 열매(위)의 단면은 정상적인 모양이었지만, 2021년 조사 때 채취한 구상나무 열매의 단면은 해충 피해를 입어 기형적인 모습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특히 각종 해충이 줄어든 구상나무 열매로 달려들어 경쟁적으로 갉아먹으면서 제 모양을 한 열매는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구상나무의 열매가 잘 맺히지 않고, 기형 열매가 많은 현상은 그동안 열매가 가장 잘 맺히는 것으로 알려졌던 백록담은 물론 Y계곡, 백록샘, 남벽분기점, 장구목, 진달래밭 등 전 지역에서 거의 비슷하고 나타나고 있다고 과학원은 밝혔다.

이임균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은 “구상나무 열매 감소의 원인을 보다 명확하게 규명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구상나무 숲의 면적은 1997년부터 2016년까지 20년 사이에 33.3% 줄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2011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 구상나무를 ‘위기종’으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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