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나의 문제"... 한국의 툰베리들이 대선주자에게 제안하는 기후공약들읽음

강한들 기자
서울 동작구 성남고등학교 1학년 7반 학생들이 지난 1일 성대골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일일 강사로 나선 기후위기(탄소중립) 수업 중 모둠별로 대선 후보에게 제안할 정책 3가지를 만들어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서울 동작구 성남고등학교 1학년 7반 학생들이 지난 1일 성대골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일일 강사로 나선 기후위기(탄소중립) 수업 중 모둠별로 대선 후보에게 제안할 정책 3가지를 만들어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내연기관 자동차를 2035년까지 퇴출하고, 그 이후 기업의 판매 건수 당 1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겠습니다. 이상 포도당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었다. ‘바른환경당’, ‘자연이당’, ‘탄소배출감소를원한당’ 등의 이름을 붙인 정당들이 나와 탄소중립과 관련한 정책 발표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건당 1억원’이라는 말을 듣고 환호하며 박수를 치고, 분리배출이 힘든 제품은 힘든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눠 생산을 규제하자는 정책을 발표한 학생에게는 “국회로 보내자”는 연호가 쏟아졌다.

지난 1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성남고등학교의 한 교실 풍경이다. 성남고는 이날 1·2학년 총 24개 학급, 662명을 대상으로 수업 시간에 ‘기후 위기’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선 후보에게 정책 제안을 하는 활동을 했다. 에너지 전환 마을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성대골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의 에너지기후강사 12명이 각 학급에 들어가 기후위기의 현 상황에 대해 강의하고, 학생들이 조별로 당을 만들어 대선 후보에게 제안할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만들었다.

■기후 위기는 ‘내 문제’

애초 성대골 ‘에너지기후강사’들은 강의 내용이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다. 강사들은 ‘내일이 오길 바란다면 바로 오늘 과감한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호소한 투발루 외무장관의 사진을 시작으로 파리협약,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탄소중립, 탄소국경세 등 학생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내용들을 강의했다.

하지만 강사들의 걱정은 이내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학생들은 탄소중립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탄소의 배출과 흡수량을 합쳐서 총 0으로 맞추는 것”이라 답하고, 탄소 흡수원을 묻는 질문에도 “나무” “땅” 등 각기 다른 흡수원을 대답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방식도 수력, 조력, 지열, 태양광, 풍력을 읊었다. 한 강사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있다”며 놀랐다.

학생들은 기후위기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부가 탄소중립 달성 목표연도로 잡은 2050년이 멀다고 느끼지 않았고, 위기감도 느끼고 있었다. 엄모군(16)은 2018년 40도에 달하는 폭염 때 기후위기라는 것을 처음 체감했다고 했다. 엄군은 “2050년이면 제가 45살이고, 아빠 나이보다도 훨씬 어린 거라 한창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라며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면 인생의 절반 정도를 그런 심각한 위기 속에서 살아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성남고등학교 1학년 7반 학생들이 1일 성대골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일일 강사로 나선 기후위기(탄소중립) 수업 중 모둠별로 대선 후보에게 제안할 정책들에 투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서울 동작구 성남고등학교 1학년 7반 학생들이 1일 성대골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일일 강사로 나선 기후위기(탄소중립) 수업 중 모둠별로 대선 후보에게 제안할 정책들에 투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불 붙은 성남고 기후위기 ‘싱크탱크’

학생들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했다. 내연기관차를 2035년까지 퇴출하고, 그 이후에는 건당 1억의 벌금을 기업에 부과하자는 정책에 관해 이야기하며 한 학생이 “1억은 너무 과하지 않냐”고 하자 다른 학생이 “그러니까 팔지 말라는 거지, 모닝 하나 팔고 1억 내라고 하면 안 팔겠지”라고 했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해 “2030년 기한은 너무 빠른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자 다른 학생이 “그렇게 생각하다가 2021년까지 밀린 것”이라며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급진적일 필요가 있다”며 논쟁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는 수송 분야였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퇴출하고, 전기·수소차를 활성화하자’거나 ‘자전거 도로를 확대하자’는 등의 공약이 총 295개의 공약 중 105개를 차지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국내선 항공편을 폐지하자, 불필요한 공항을 없애자는 제안도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퇴출하자는 에너지 체제 전환도 학생들의 관심사였다. 2028년까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30%, 2040년까지 8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자는 정책을 낸 학생도 있었다. 일회용품 규제 등 자원 순환과 관련한 정책도 많았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플라스틱에 1㎏당 2200원의 세금을 부과하자, 분리배출이 힘든 정도에 따라 등급으로 나눠 생산 금지, 생산 시 탄소세 부과 등 조치를 하자는 제안도 보였다.

엄군은 5년 단위로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명시하고,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하자는 정책을 냈다. 5년은 대통령 임기와 같은 기간으로, 감축 목표를 취임 시 밝히고 3년 차에 중간 점검을 하는 식이다. 수업 도중 엄군은 유럽에서 2035년까지 내연기관 퇴출을 하기로 한 것을 보고 놀랐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대응은 미흡하다. 엄군은 “유럽에도 차가 많았을텐데 짧은 기간 안에 자동차를 퇴출하겠다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나라 정책 중에 기후위기 대응을 엄청 급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성대골과 같은 에너지 전환 마을을 확대하자는 정책을 낸 한준영군(17)은 학교에서 제공한 성대골 에너지전환 마을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성대골 전통시장의 제로웨이스트 가게에는 곳곳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가로등에도 작은 패널이 달려 있어 낮에 흡수한 에너지로 밤거리를 밝혔다. 한군은 “에너지 전환 마을이 늘어나면 그 마을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도 저희학교처럼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 “함께 기후위기 대응해봅시다”

학생들은 대선 후보들에게 정책 제안이 전달돼 검토되길 바랐다. 환경 교육을 통해 환경을 생각하는 세대를 길러야 한다는 정책을 낸 김현빈군(16)은 “(후보들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이 있구나하고 한 번은 신경 쓰고 고려해보지 않겠나”고 말했다. 한준영군은 “불가능해보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 의견을 보고 공약을 내걸 때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학생들도 탄소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니 탄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좀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때로 너무 거대한 문제로 보여, 기성세대들은 ‘기후 위기 대응을 우리가 할 수 있겠냐’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의심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 함께 해보자’고 말했다. 엄지섭군은 “이제 30년도 채 남지 않았다”며 “나이가 엄청 많지 않은 이상 본인에게도 확실히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바꿔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군 역시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기성세대도 노력해 기후위기 인식 교육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제안한 정책은 다음 달 중순 이후 성대골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을 통해 각 대선 주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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